[1.4]민규 & 천재론2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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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민규: 서태지는 천재일까
그래도 지금 시점에서 생각을 밝히자면, 서태지를 두 가지 유형의 천재 영역에서 검토해요. 보편성의 천재와 패러다임의 천재 영역에서요. 수재라고 해도 되지만, 그 정도로 놓자니 1990년대 한국대중음악사에서 그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수재로 국한하기엔 부족하죠. 세기의 행운아이거나 최고의 기여자로 봐야 할 거예요.
그런 점에서 천재나 거장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그의 2000년대 이후는 1990년대만큼은 아니니 일단 오랜 시간에 걸쳐 업적을 쌓았다기보다는, 문화대통령으로 불리던 시절인 1990년대에 집중되어 있죠. 저는 그 시기의 업적을 중심으로 천재인지 검토하곤 했어요. 이른 나이에 데뷔해서 발군의 성과를 일구어냈다는 점, 그 파괴력이 상당했다는 점에서 일단 천재인지 따질 때 기본 요건으로는 그럴 듯해보였거든요. 심지어 그 영향력이 끊어지지 않고 SM의 HOT로 이어지고 지금의 BTS에 이르니까요. 서태지를 오마주한 리메이크 앨범도 나오기도 했고요. 그 영향력이 후대의 아이돌 댄스음악 분야에서 분명하다는 것을 직접 후배들이 입증해준 것이죠.
즉 1990년대에 압도적인 판매량으로 보편성의 천재라는 걸 입증했는데, 그가 지닌 선율의 개성이 후대 한국대중음악에 정서적 혁신으로 영향을 끼쳤다면, 네, 전 그만큼 지금 들어도 서태지의 선율이 낡았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건데, 그러한 점에서 패러다임의 천재 영역에서도 검토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죠. 객관적으로도 아이돌 댄스음악에 큰 영향을 준 것도 주요한 성과지만요.
다양한 장르 문법을 적용하면서도 자기만의 선율을 낙관처럼 새겨 넣었다는 점에서 테크닉의 장점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역시 제가 팬심으로 서태지를 과하게 높이 평가한다는 비판도 듣고 있어서 여기서 멈출게요. (웃음) 일반적으로 테크닉의 관점에선 이미 있는 것의 재조합이니까요. 그걸 자기 선율과 조화로운 감각은 좋았지만요. 그가 테크닉의 면에서 확실한 낙점을 받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진 못했어요.
또한 보편성의 천재라는 건 당대의 인기가수라는 의미이기도 한데 이런 경우 조용필이나 나훈아 정도 되는 존재가 압도적인 성과를 장기간에 걸쳐 낼 때 가능하겠죠. 그랬다면 그 자체로 이미 거장이고요. 그만큼 보편성의 천재란 건 일단 대중음악이 상술로 치부되는 것에 반감을 지닌 이들로서는 남용될까 봐 꺼리고 깐깐하게 검토하고 일시적인 유행의 산물이 아닌지 의심부터 하는 표현이죠. 결국 시간이 지나 보면 알게 될 부분이죠.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건대 서태지는 1990년대 한국 사회가 호출한 천재라고 생각해요. 서태지보다 더 나아보이는 누군가였다면 이만큼 해내지 못했을 것 같으니까요. 만일에 테크닉적인 실력으로만 따지고 본다면 유명 클래식 아티스트, 또는 해외음악 학습기를 벗어난 일부 독창적인 전위적 록밴드 쪽이 더 나았겠지만, 이들은 대중에게 그만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어요. 인기가 어느 정도도 없다면 아무런 영향력도 얻지 못하잖아요. 사회에서 그 필요를 반영하여 호출하지 못하죠. 당시 대중음악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는 테크닉적으로 뛰어난 인물들이 아니었으니까요.
반면 서태지는 호출될 최소 요건을 충족한 거예요. 그 요건이 아티스트를 생각하는 것과 다른 면이 있어서 논란이 있었지만, 여러 논란에도 그는 1990년대 필요했던 존재였어요. 그는 놀라운 성과로 대중음악의 흐름을 바꾸어놓았어요. 너무도 짧은 기간에 말이죠. 본인도 예상치 못했겠죠. 그건 마침 사회에서 필요했던 어떤 재능을 그가 갖추고 있었을 뿐이니까요.
만일 세계 유통망의 중심에 90년대의 대한민국이 속해 있었다면, 서태지 유형의 천재는 탄생하지 않았겠죠. 서태지는 단 한 번도 세계 범위에서는 천재로 볼 만한 조건을 충족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평범한 음악가라고 봐야겠죠.
그런데 한국 사회의 필요성에 따라 그는 ‘한국이라는 범위 내에서’ 천재로 호출되었죠. 당시 국내로 정체된 대중음악의 정서를 바깥으로 펼치기 위해선 반드시 해외음악을 답습하여 국내에 확산시킬 공로자가 필요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반드시 한 번은 탄생할 유형의 천재라고 해야 할까. 이럴 때 누군가는 수재와 같은 역할이라고 그 기여의 의미를 축소하려 하겠지만, 그 당시 많은 실력자들이 있었음에도 서태지는 현격히 차별화된 센세이션을 일으켰어요. 쉽사리 설명하기 어려운 사회적 현상이었죠. 패러다임의 천재가 보편성과 결합하기란 쉽지 않고, 사실은 부가적인 외부 기회 요인들이 많아야 하는데, 서태지는 정말 서태지가 없고서는 과연 그렇게 되었을까 싶은 많은 변화의 중심에 있었죠. 자신의 영향력을 전술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서 그랬을까요? 그것까지야 저도 알 수 없지만, 이처럼 드물고도 파괴력 높은 조합이 90년대 이 땅에 있었죠.
이건 여담인데 1990년대의 서태지가 여기서 쟁점이지만, 정작 저는 5, 6, 7집으로 이어지는 2000년대의 솔로 서태지를 더 좋아해요. (웃음) 그 뒤로 인간 서태지가 어떻게 변모할지도 궁금한 편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