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희정 & 천재론2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 목차 상세보기)
※ 「등장 인물의 관점 & 소개글」 보시려면 → 목차 상세보기
[1.5] 희정: 서태지에 거부감이 드는 네 가지 이유
서태지요? 음, 저는 서태지에 대해 솔직히 조심스러워요. 개인적으로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재즈를 연주하면서 남의 작품을 오마주하거나 변주하는 일은 흔하고, 1940~50년대의 모던재즈 시절처럼 남의 작품을 도용하는 것에 그다지 심각히 여기지 않았던 때에 다양한 임프로비제이션이라든지 스탠더드 넘버를 통하여 실력을 판가름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 그런 시대를 지나서 지금은 표절을 조심하는 시대로 진입했어요. 힙합 역시 그런 과정을 겪었고요.
그렇다면 서태지도 용인해야 마땅하겠지만, 지금 시대엔 지금의 관점으로 보아야 할 텐데, 복합적인 이유로 어쩐지 감정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서태지에 관해서는 심각하게 깊이 생각해본 적이 많지 않아요. 그렇게 된 데에는, 글쎄요, 이번에 감독님께 질문을 받아서 정리해보기는 했어요. 제공해주신 인터뷰 영상을 보고는 도움이 되었고요. 그걸 보고 제가 무엇 때문에 심리적으로 거부감이 있었는지 이해된 부분이 많았어요. 그걸 네 가지 정도로 분류해보았죠. 네, 네 가지나 되더라고요. (웃음)
우선 누구나 서태지에게 거부감이 있다면 손쉽게 떠올릴 만한 논란, 바로 표절 혐의 때문이죠. 서태지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했죠. 과연 그럴지 지켜볼 일이지만, 혐의 중 대부분은 무리한 트집 잡기란 것에 동의해요. 일부는 여전히 그 혐의가 있은 채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는데, 서태지의 의미를 재평가하려 한다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죠.
이 부분을 극복하려면 논란이 있었음에도 압도적인 성과를 인정해야 하는지 하는 쟁점으로 초점이 좁힐 수 있죠. 시간이 흘러봐야 알 거예요. 아주 희박하지만 표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어떤 패러다임의 놀라운 전환을 통하여 희석된다고 해도, 그러니까 지금은 표절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생산적인 의미로 재평가하는 시절이 온다면, 서태지로선 좋을 일이겠죠. 어쨌든 이런 논란은 음악가에겐 좋을 리 없고, 스스로도 8, 9집 등의 행보에선 표절 논란, 혹은 표절 트집의 출발점이 될 만한 장르 참고의 습관을 많이 지웠다고 알고 있어요.
둘째, 표절 논란의 출발점이 되었던 해외음악 수입상이라는 오명이에요. 본인은 이것을 그리 나쁘게 여기지 않는다고도 했었죠. 우리나라에 먼저 좋은 음악을 소개해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고 하니까요. 하기야 록 뮤지션이라면 다양한 록 장르가 한국에서도 인기 있길 바랐을 테니까요. 6집의 뉴메탈 형식이 대표적인 예죠. 댄스뮤지션으로서 4집의 갱스터랩 인용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혐의를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 대목에선 유보적이에요. 재즈를 들여온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한국 재즈에선 모험적인 장르가 흥했다고 보긴 어렵죠. 너무도 마이너 장르라 대중과 교감하는 것 자체를 고민해도 버거운 것 같아요. 개성은 그 맥락 안에서 이루어지더라도 너무 안 팔려요. 가난하죠. 미국에서도 가난한 장르가 재즈라는데, 우리는 정말 말 다했죠.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접근을 해서 의미 있는 사조를 일으키고 싶지만, 그 전에 재즈를 이 땅에 더 깊이 뿌리내리는 것도 중요해요. 아직은 해외의 앞선 다양한 사조를 흡수하는 것에 더 부지런한 상황이라고 해야겠죠.
그런 면에서 해외음악 수입상이란 타이틀 자체로 비난받을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게 표절 혐의로 이어진 것이 유감이었어요. 오히려 전 번역의 천재란 표현을 곱씹곤 해요. 서태지가 자기의 선율로 어떤 형식에도 눌리지 않은 자기만의 정서를 표현한다는 점은 장점으로 보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각 장르를 번역해서 우리나라에 발표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편이지만, 아직 번역의 천재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죠.
번역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목의 천재라고 해야 할까요. 세상의 흐름과 균열을 정확하게 읽는다는 점에서 탁월한 편집가나 번역가도 세상을 바꿀 정서적 감각적 지적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보는 편이에요. 서태지도 그런 일을 해낸 것으로 볼 수도 있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적기에 번역해서 소개하는 기획자와 같은 존재라고 해야 할까요?
역시 이러한 유형의 천재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변화, 이 정도 혁신도 전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보거든요. ‘예술 창작’과 ‘예술 선별 및 소개’를 동등한 수준으로 놓고 보는 거니까요. 그러한 사건이 벌어진다면, 그가 1990년대에 우리의 대중음악 발전에 혁혁하게 도움을 준 인물로 평가하게 될지도 모르죠. 진정한 문화대통령이 되는 거죠. 혹은 해외음악 수입상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영향이 훨씬 더 크다고 판단하게 될 시점에 이르면 입을 모아 서태지를 천재로 추앙할지도 모르죠.
셋째, 여기서 표절 논란이나 해외음악 수입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가 영향을 준 지점이 나오죠. 바로 댄스음악의 공헌, 지금의 K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데에 첫 시작점이었다는 업적 말이에요. 그런데 이걸 업적이라고 해야 할지 어색해하는 사람들로선 여전히 의심을 거둘 수 없기에 서태지에 대한 평가는 박해진다고 봐요. 솔직히 그 전에 TV에선 정말 다양한 음악적 경향을 발견해낼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아이돌의 댄스음악 일변도니까요. 그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여기서도 변화가 생겼죠. K팝이 흥하고 있다는 점 말이에요. 그만큼 다시 그 분야의 중요한 기여를 했던 서태지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요. 만일 K팝이 과연 장기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면, 다시금 서태지를 재주목하려는 시도는 드물어질 거예요. 시간이 지나보면 알 수 있을 일이라고 봐요.
10년 뒤? 아니면 20년쯤 지나서 알 수 있을까요? 만일 댄스음악이 더 다양화되어 살아남고, 기업 위주의 상업음악 일변도에서 벗어나 아티스트의 음악이면서 어느 나라에서도 선취하지 못했던 독특한 사조가 생겨난다든가, 그도 아니면 다른 인디 음악과 상호 영향 속에서 세계로 우리 음악을 소개하는 창구 역할을 제대로 한다든가 하는 순기능이 성공할지도 모르죠.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희망적이지 않고 절망적이지 않다는 의미예요.
넷째, 보상이 불공평했다는 의심이 드는 거죠. 당시 고군분투한 이들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을 얻어갔으니까요. 인디에서 고군분투하는 음악인들 말이에요. 1990년대 당시엔 홍대 음악인들이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다양화에 기여한 게 아닐까 싶고요. 그런 면에서 서태지에게 거부감이 들죠. 서태지 자신이 이룩한 업적이 좋은 건지도 저로선 동의하기 어려운데, 경제적 보상이든 문화적 명성으로든 음악적 인기로든 분에 넘치는 보상을 받았다고 보니까요. 그래요, 부당한 비난일 수 있어요. 저는 그가 행운아라고 생각하는 것이지만, 반박이 있겠죠. 그의 천재적인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의견이겠죠. 그냥 저만의 정서적 반감이라고 해두죠.
지금 섣부르게 그를 천재다 아니다 말할 건 아니지만,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그는 댄스음악의 발전에 공헌했고 그 분야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게 맞죠. 아무나 할 수 없는 공헌을 1990년대에 짧은 활동만으로 했다는 점에서 대단하죠. 심지어 24살 전에 한국사회를 뒤흔들었고 그 영향력이 지금도 지속되고요. 그 영향이 긍정적이었느냐 하는 논쟁은 뒤로 물리고, 그는 현 시점에서 돌아볼 때 그 분야의 천재는 맞아요. 전 동료들이 호출하는 천재를 인정하는 편인데, 그 분야의 세계적 아이돌들이 그를 호출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