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이 먼저 알아보고 천재를 호출한다

[2.0]희정 & 천재론2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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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희정: 동료들이 먼저 알아보고 천재를 호출한다

그런데 동료의 범위를 넓히자면 재즈 피아노 전공자인 저로서는 아직 그를 호출하는 않은 거죠. 댄스뮤직 바깥으로 나섰을 때 아직 다른 장르 음악 동료들은 서태지를 얼마나 호출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죠. 그런 면에서 아직은 작은 공동체의 댄스음악계의 천재로 볼 수 있을 텐데, 이때 단순히 기여자 정도로 보아야 할지 천재로 보아야 할지 앞선 몇 가지 점 때문에 여전히 유보하는 거겠죠.

천재란 동료들이 호출하는 것인데, 이때 동료들은 사회적 필요를 반영한다기보다는 자기들의 고민을 반영하기 마련이고, 그건 예술적인 재능만을 생각하는 거니까요. 대체로 테크닉과 패러다임의 관점에서 혁신적인가 하는 점이겠죠.

그런 천재들이 동료 앞에서 정신적 리더가 된다고 해야 할까요? 전체 사회의 강력한 영향력에 맞서 작은 집단의 리더가 그 집단의 특성을 압축하는 방식으로 동료에게 호출되곤 하기에, 동료들이 좋아하는 가치를 준수하는 경우가 많겠죠. 동료들이 호출하는 빈도가 잦을수록 천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인용지수가 높은 논문처럼요. 그들은 보편적 주류에서 탈주하는 듯하면서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다원적으로 보편적 주류에 편입되려는 야심가들이죠.

소위 인디 그룹이라고 할까요? 이러한 그룹들은 보통 작은 범위이자 외곽이긴 하죠. 즉 다원적인 대안으로 기능하면서도 보편적 주류에 속하려는 야심가들의 집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심지어 어떤 천재들은 인디 그룹의 핵심에서도 멀어져 있을 수도 있어요. 그들은 그 작은 세계의 문법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파도에 떠밀려버린 고집불통의 존재들이어서 동료들의 호출을 받지 못한 천재들도 있겠지만, 대개는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했기에 사회에 타격을 줄 야심가로 성장하지 못한 상태겠죠. 여기선 잠시 논외로 해야겠고요.


보편적 주류에서 벗어난 천재에 대해선 저번에 말했으니, 이번엔 ‘천재 집단’에 대해서 말하려고요. 동료들이 서로 호출해주는 천재라면, 이미 자신들의 분명한 지향점과 가치 체계가 합의된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전문가끼리는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 있는 천재들인데, 이들은 한 명일 수도 있지만 여러 명일 수도 있죠. 한 명보단 여러 명일 때 덜 외로운 법이죠. 그중에서도 리더 격이 있기 마련인데 1940년대에 등장한 모던 재즈인 비밥에선 찰리 파커와 디지 길레스피가 이러한 존재로 추앙을 받았어요. 한 명으로 줄이자면 버드로 불리던 찰리 파커로 압축되어, 비밥 하면 찰리 파커를 떠올려요. 그를 중심으로 연주자가 주도하는 음악 장르를 창조하기 위해 어느 정도 공유된 방법론을 구축하는 거죠. 이미 핵심 줄기는 빅밴드 시대에 확립이 되었죠. 그 뼈대에 조금 더 과감하게 자신들이 덧붙이고 싶은 연주를 선보였고요. 매일 똑같은 곡을 연주하는 게 아니었어요. 마치 같은 풍경을 고흐가 매순간 느끼는 대로 포착해서 계속 다르게 그리며 자신의 주관을 이입하듯이요. 그렇게 자기만의 개성이 실린 임프로비제이션을 섞으면서 자유분방한 소규모 악단의 연주 관습이 확립된 거예요. 그들은 각자가 소속된 악단에서 연주를 한 뒤 퇴근해서는 민튼즈플레이하우스에 모였죠. 찰리 크리스천, 버드 파웰, 셀로니오스 몽크, 마일즈 데이비스 등등 수많은 젊은 천재들이 세기의 음악 장르를 정착시킨 것이죠. 클래식 음악에 대비되는 즉흥의 미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이제는 재즈의 주요한 방법론이 된 전설적인 장르를 말이죠.


대개 천재라고 하면 철저하게 개인적인 사건으로 여기는데 사회적으로나 소집단적으로도 다른 이들과 협력하지 않고 홀로 무언가를 도모하기란 쉽지 않죠. 문학이라면 그냥 역사적인 시 원고를 써두고는 묻혀서 빛을 볼 때까지 견디면서 반전을 기다릴 수도 있는데, 재즈는 그러기 어려우니까요.

앞서 말했듯이 과학도 마찬가지죠. 실험이 중요해진 요즘이라면 이론적으로 증명하고 나서는 반드시 엘리트 과학자 집단이 머리를 맞대고 객관적인 검증 방법을 찾아내야죠. 돈도 많이 드니, 단순히 연구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고요. 오케스트라 지휘자나 축구감독, 영화감독, 경영자 등도 마찬가지에요. 각종 사회 반응을 계산하면서 자신이 관리한 소속원의 능력까지 살펴가면서 그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내야 하죠. 그런 공감 능력과 통찰력과 리더십을 동시에 갖춘다는 것 자체가 고난도 테크닉일 수 있지만, 초절기교의 재주를 기술적으로 완숙한 걸로 연상하기 마련이면 공감 능력이나 리더십은 아무래도 그것과는 다른 재능 같아요.

공감 능력도 테크니컬 부분일 수도 있지만, 상대를 배려하고 겸손하게 인내하며 목표로 향하게 한 덕분에 세계적인 소속원들의 마음을 얻었다면 보편성의 천재로도 볼 수 있겠어요. 엄청 인기가 있어서 단결력을 발휘하여 최대치의 역량을 끌어낼 테니까요. 어쨌든 이들이 성공하려면 이미 비슷한 역량의 존재들과 힘을 합쳐야겠죠. 당대에 묻혀 있기가 어렵죠. 그래선 최고의 오케스트라, 축구팀 등으로 이끌 수 없을 테니까요. 또 지속적으로 이들을 발굴하고 만나려면, 서로가 서로를 호출하는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을 갖추게 하죠. 사회가 호응하지 않으면 그렇게 되기 어렵고요.

결국 동료가 호출하는 천재는 개인이 소집단에서 도드라지는 역량이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가 호응하거나 주도적으로 천재를 이끌어내기도 하죠. 둘은 어느 한 쪽이 완전히 압도하지는 않지만, 공통으로 개인이 순전히 홀로 일어서는 것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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