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수준 이상으로 타격해야 비로소 존재감을 얻는다

[2.3]희정 & 천재론2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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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희정: 일정 수준 이상으로 타격해야 비로소 존재감을 얻는다

당연히 사회라고 호락호락하지 않죠. 천재들이 기획서를 들고 찾아올 때만 봐도 알 수 있죠. 이 녀석이 정말 창의적인가 어디서 미처 깨닫지 못한 누군가의 아류에 불과한가, 아니면 새롭긴 하더라도 실용적이지 않거나 불필요한 것인가 하는 면밀히 검토해보면 대개는 사회의 내공을 당해낼 수 없죠.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한 집단지성이 사회에 축적되었으니까요. 그때 그냥 탁, 이거다 싶은 것을 딱 보여주었다면 사회에서도 무릎을 치면서 열렬히 호응하겠지만, 이미 선수 중에서도 선수인 사회의 내공을 생각하자면 하품이나 안 나오게 하면 다행이죠. 차라리 그보다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걸 잘해내는 편이 칭찬받는 길이겠죠. 원래 사회를 이겨보겠다는 사람을 보면 의심부터 들고, 또 실패하는 부랑자 하나 나올 거라는 식의 별 기대 없는 지루함이 앞서기 마련이죠. 이걸 시간 들여 검토해줘야 한다는 귀찮음도 들 거고요. 가끔은 사회도 예의고 뭐고 다 필요 없다며 기획서를 허공에 던져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 수도 있어요. 이건 20년 전에 어떤 놈이 보낸 거랑 맥락이 거의 같다면서요. (웃음)


웬만큼 예상을 깨는 기획서가 아니라면 사회를 설득하기 어렵죠. 단순화해서 말하면 사회는 거의 모든 요소로 저장소를 구축하고 있으니, 그것에 균열 내며 원칙을 깨는 수준, 사회가 미처 지니지 못한 아이디어, 그런 정도로 새로운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운 좋게 그런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예를 들어 사회의 철갑옷 비늘 하나를 뒤집을 정도라도 있다면 실로 대단한 성취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으로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에요. 사회가 충격을 느낄 정도가 되려면 이미 어느 정도 그것을 받아들일 근거가 있어야 하니까요. 그 근거란 다시 사회적으로 무르익은 분위기부터 들어야겠네요. 언더그라운드라 방치했는데, 그 분야가 무르익어 수용자층이 생기고 공감대도 형성되어서, 이제는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경우겠어요. 이때 이 분야의 존재를 공인하기 위해 모두에게 내놓을 만큼 대표적인 존재를 선호하겠죠. 그때 그 계열의 동료들도 인정하여 호출하는 존재를 사회적으로 호출해내죠. 다른 누군가로 대체하기는 어려운 존재로서, 그가 바로 천재 혹은 거장으로 불리고요.

아무나 될 수 있었다면 언제든 쉽게 그 언더그라운드 분야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겠지만, 대중적으로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묘하게도 어떤 천재의 작품은 통하거든요. 때로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죠. 그런 자가 등장하면 사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붙죠. 칸 영화제에서 어떤 지역의 영화를 호출해낼 때 그런 식으로 대표하는 존재들을 호명하잖아요. 한국영화를 인정하는 순간에 개인이 아닌 작은 공동체를 상징할 만한 감독에게 상을 주는 것으로요.


이러한 존재, 천재 혹은 천재 집단은 세상에 균열을 내기 위해 사회의 예상을 깨고 사회를 압도할 만큼 독보적인 작은 파괴자를 기다린다고 생각해요. 그에게 동료가 있을수록 성공 확률은 높아지죠. 사회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천재가 호명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결국 그 천재가 출현해야만 출현하는 거죠. 천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는 어렵기 때문에 천재가 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잔치상이 마련되어도 잔치 음식을 먹을 사람이 나타나야 비로소 잔치가 시작되듯이요.

그 천재는 사회에 어정쩡하게 타격을 주는 존재를 넘어서야 해요. 어정쩡하다면 다른 동료들처럼 사회로 호출되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겠죠. 한 번 정도는 대중적으로 큰 반향을 이끌어내야 그 분야 전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니까요.


그 티핑포인트? 임계치가 있을 텐데, 그냥 임의적으로 그걸 30 정도로 하죠. 임계치는 꽤 높다는 정도로 빗댄 것이에요. 임계치가 1이라면 금방 물이 끌어 냄비 뚜껑이 날아오를 텐데, 사회도 내공이 있잖아요. 임계치를 70으로 정해도 되요. 그만큼 변화하기는 어려운 사회일 텐데, 엄청난 역량이 있거나 인위적으로 그것을 가로막는 다른 문화적 장벽이 있겠죠. 예를 들어 이슬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새로운 문화적 경향이 있다면 여러 다른 장벽으로 사회의 순흐름을 압박할 수 있겠죠.

저는 아무 근거 없이 조금은 빡빡하다는 의미로 임계치를 30 정도로 수치화해볼게요. 그러니까 사회가 타격을 받았다고 느끼려면, 30 이상의 파괴력을 지닌 활동이어야 하죠. 실제론 아무리 파격적이어도 다들 20~25 정도까지 와서 턱 밑에서 성공이 무산되고 말아요.

처음에는 새로운 경향에 대해 무시하다가 차츰 애써 외면하고 그러다가 두려워하죠. 그게 심해지면 악마화하다가 모든 흐름이 수용 쪽으로 넘어가면 원래 자신도 그랬다는 식으로 반응하기 마련이에요. 그러곤 오히려 열광적으로 그걸 옹호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시간이 흐르면 그런 부류 중에선 예전의 새로운 가치를 보수적 기준으로 삼아서 새로운 세대의 후발 도전자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되는 것 같아요.


어쨌든 도전자가 사회에 도전장을 내고 간신히 31이라도 이르는 타격력을 보였다면, 그때부터는 사회에서 들끓는 기운이 감지되고 사회가 스스로 이 흐름을 호출해서는 모든 곳을 흘려보내는데, 거기까지 이르는 것도 어렵죠. 대개 그런 새로운 시도는 실패하고,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인정한 방식대로 기존 움직임만이 감지돼요. 간혹 그 사회에서도 부지런히 자기 논리 안에서 혁신을 하는데, 그러한 자체적 혁신을 통해 채택된 아이디어도 상당해서 그것 중 일부를 택하는 편이 내적 논리로 보면 훨씬 자연스럽고요. 예를 들어 클래식에서 그 이론대로 발전하다가 혁신적인 무조음악을 받아들이는 편이 자연스럽다는 거죠. 갑자기 판소리에서 새로운 기법을 클래식에 적용하는 것보다요. 사회가 부지런할수록 임계치는 점점 더 올라갈 거예요. 견고해질수록 근본적인 변화나, 외부 유입을 통한 경쟁보다는 자체 논리의 혁신만이 자연스러워질 거고요.

그래서 사실은 다양한 것처럼 다양하지 않은 정교한 가치가 확립되고, 이건 절대적인 규범처럼 작동하죠. 당대 규범을 놀라울 정도로 잘 소화하여 자기화하는 존재들, 이들이 민규 씨가 분류했던 테크니컬 천재들이죠. 심지어 테크닉의 혁신을 넘어서 그 안에서 허용된 작은 패러다임의 변환조차, 기존의 엘리트들이 맡게 돼요. 사회에 장착된 수많은 아이디어 중 하나로 기존 보편적 주류를 대체한다면 그 역시 패러다임의 천재로 분류할 만하고요. 이 정도만 되어도 대단하고 역사에 길이길이 남죠. 그 역시 대단히 희귀한 출현이고요. 여기까지만 보면 결국 사회가 천재를 호출하는 거고요.


그런데 그 사회가 탑재했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스타일로 무장한 개성적 존재가 임계치 30을 넘어서면서 그 존재의 동료들과 함께, 혹은 그 자신이 홀로 세상에 나선다면, 이제 그때부터 기존의 내부 논리로 발전한 수많은 성과나 가치와 경쟁해야 해요. 그러다가 기존 질서에 충돌하지 않고 편입되거나 뒤섞이거나 하죠. 운이 좋으면 독자적인 영역 그 자체로 인정받고요. 예를 들어 클래식에 왈츠나 탱고나 재즈의 요소가 적용되어 하나의 스타일로 유명해지기도 하지만, 재즈나 록처럼 클래식에 뒤섞이지 않고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하는 것에 성공하기도 하죠.

바로 이 지점이에요. 사회가 강력하게 압박하지만 그럼에도 독자적인 경향을 거세당하지 않은 채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천재말이에요. 신화 속에나 존재하는 순수 천재란 이처럼 좁은 지점에서 여러 복합 조건이 성립할 때 드물게 태어난다고 보죠. 블랙스완과 같은 존재죠. 사회가 정교해지면서 사회는 모든 걸 통제 범위 안에 넣고 싶겠지만, 그래서 더는 돌출적인 존재들이 기대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그럼에도 그런 존재들은 앞으로도 있겠죠. 아무리 정교해져도 철갑옷을 많이 입는 것이니 기존에 내재된 철갑 비늘 딱지 하나를 다른 색깔로 교체하려는 시도는 드물지만 성공할 개연성도 있으니까요. 색깔이 알록달록해질수록 다원화된 생각이 인정받는 것 아닐까 싶고요. 보편적 주류에서 멀어졌던 존재가 보편적 주류가 되기를 포기하고, 자기와 유사한 동료들과 함께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타격을 주는 사례겠고요.

그들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다면 분명 그 타격의 내용도 달랐을 거예요. 쉽게 말해서 루이 암스트롱이 아니었어도 재즈는 있었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루이가 이루었던 성과와는 그 내용이 달라서 지금의 재즈일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겠죠. 네, 루이가 아니었다면 재즈는 지금과 달랐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루이 암스트롱을 사회에 대등하게 드러난 천재로 보죠. 그를 공부하다 보면, 천재의 역할이 사회에서 부여된 것 이상이라고 믿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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