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사회가 자본주의로 장악되었다면

[1.0]민규 & 천재론2.1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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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와 천재

[1.0] 민규: 결국 사회가 자본주의로 장악되었다면

사실 천재란 말은 사회를 타격하는 것에 쓰이는 용어라기보다는 사회에서 활용하기 위해 조금 과장해서 쓰는 표현이 아닐까 싶어요. 진정한 천재도 있겠지만, 우리가 항상 천재를 제대로 호출해내는 건 아니니까요. 시기별로 그 해당 분야의 인기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천재가 진짜 천재인지보다는 그 천재가 사회에 어떻게 유익한 효과를 줄 것인지 하는 면이 강조될 때가 많죠. 과격하게 말하면 천재가 무엇을 해낸다는 생각은 피하고, 사회에서 어떤 신경향이 태어난 것을 효과적으로 각인시켜주는 존재쯤으로 천재를 생각하면 좋을 듯해요. 일종의 표지판이죠.

그것으로 그 집단을 비교적 압축적으로 인지하는 것이라 천재가 없다는 건 그만큼 새로운 경향에 대한 발굴이 늦어진다고도 볼 수 있어요. 또는 습관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의심 없이 살아간다는 의미기도 하고요. 그냥 콩쿠르에서 경이적인 연주를 보면 그것에 열광하고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 정도로요. 우리가 흔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을 아주 잘 수행하는 자를 반기는 것이죠. 그건 어쩌면 우리의 성과나 권위를 한 번 더 확증하는 과정이에요. 우리 자신을 칭찬하는 과정이죠. 우리 사회는 훌륭하다는 자기 암시 같은 것이랄까요.


이때도 패러다임의 천재는 쉽사리 인정받긴 어려워요. 심리적 저항선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임계치란 표현을 들었던 것 같은데, 비슷해요. 의심을 시작하는 초기를 넘어서, 그것을 훌쩍 넘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그때야 인정하죠. 생소한 것일수록 심리적 저항선이 높아지고요. 여러 가치를 건드리면 그만큼 더 심리적 저항선을 높이죠.

그래서 대개는 사회에서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았더라도 어느 정도 거론되는 것 중에서 무난하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어요. 너무 새로운 건 그 기반의 모든 가치를 뒤집어보고 가는 것이라, 안정적 지식의 확인을 기대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불안정해보일 수 있어요. 때로는 의심받고, 때로는 공격당하죠.

물론 무시 받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대개 공격당하는 경우는 오히려 몇몇 예민한 지점에서 무시하기 어려울 만큼 강력하게 밀려들어올 때 기존 질서의 본능적 반격이 발생하는 거니까요.


이에 비해 테크니컬 천재와 보편성의 천재는 받아들이기 좋죠. 그중 테크니컬 천재는 누구나 합의하기 좋은 선명한 천재의 징표가 있는 것 같아서, 천재로 호명되기 좋은 유형이에요. 눈에 딱 보이잖아요. 어린 나이에 범접하기 어려운 고난도 테크닉을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면서 심지어 중년의 거장처럼 여유롭고 정서 표현에 농밀할 때 우리는 경탄하죠. 그만큼 합의된 지점이 많고, 저 사람이 천재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어요. 객관적으로 전문가들이 공증까지 해주는 것이니 안전하게 천재를 낙점하고는 우리의 정신문화를 풍요롭게 해줄 기대에 부풀게 돼요. 매년 노벨상을 받은 세계의 지성을 확인하고, 미처 몰랐던 전문분야의 거장이나 천재들이 무엇을 했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즐거워요. 이미 수없이 공증된 분야의 기준들을 다시 한번 곱씹으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다가 좌초를 겪었던 그들의 젊은 시절을 환기하면서, 그럼에도 놓치지 않고 그들을 호출해낸 사회의 노련함과 신뢰성에 안심을 하는 거고요.


물론 자본주의는 훨씬 노련하고 견고하죠. 돈이 된다면, 꽉 잡는 순간 절대로 놓질 않아요. 단순히 시스템의 원칙을 넘어서는 집요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자본주의는 느슨함을 용납하지 않는 방식으로 견고해지고 있죠. 그래서 상업적으로 큰 이익을 몰아다줄 보편성의 천재를 마다할 리 없어요.

기존 패러다임 내에서 고급예술이든 고급이론의 고고함을 쉽사리 부인하긴 어렵지만, 인기는 무시 못 할 가치가 있어요. 자본주의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그래서 돈이 되는 영역에서 그들의 위상이 실제보다 더 과장되게 부풀려지기도 해요.

정서적 기여를 절대로 폄하하는 건 아닌데, 지나치게 높이 평가받는 것이 단순히 잘 팔리기 때문이라면 좀 씁쓸할 때도 있어요. 사실 사회에서 내재한 것 중에서 잘 팔릴 만한 보편성은 안정된 만큼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방식일 때도 있거든요. 그건 사회의 진부한 경향과도 관련될 때가 많아서, 새로운 경향으로 사회를 환기하는 역할과는 거리가 멀 때도 많죠. 딱 사람들이 편하게 수용할 수 있을 만큼만 표면적으로 새로운 걸 원하죠. 그게 잘 팔리니까요.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자신들이 참신한 가치를 받아들인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모두에게 만족스러우니까요.


이제 자본주의 시스템은 체 게바라처럼 자본주의를 전복시키려는 혁명가조차 티셔츠에 박아서는 혁명의 이미지를 팔아먹을 수 있을 만큼 담대해졌죠. 웬만한 신조류는 다 수용하는 포용력이랄까, 아니면 괴물의 탐욕적인 먹성이랄까, 여하튼 대단하죠. 매년 작년 대비 성장해야 하는 강박으로 살아온 결과겠죠. 모든 시간까지도 돈으로 계산되는 시절이에요. 그렇다 보니 자본주의를 전복하려는 패러다임의 천재가 등장한다면 이를 공격하겠지만, 사회 내에서 통제가 가능한 수준이라면, 오히려 이윤 창출의 수단이 된다고 봐야죠. 적당한 제스처를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요? 진짜 천재를 호명해내는 게 아니라, 말 잘 듣는 순응하는 모범생을 천재로 포장하는 거예요. 그게 시스템의 이익에 잘 부합하니까요. 그래서 때로는 진정으로 헤게모니를 뒤흔들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 할 만한 것이 아님에도 잘 포장하여 엄청 혁신적인 것처럼 홍보하기 마련이죠.

결국 사회가 자본주의로 장악되었다면 천재도 자본주의 시대를 반영하며 태어나죠. 연구를 하더라도 기초학문보다는 당장 수익을 내야 하는 응용과학 쪽 연구를 해야 연구비를 따낼 가능성도 높듯이요. 자본주의의 논리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아요.


진짜로 위험할 만큼 혁명적이라면, 그들을 막아서려고 하고 배제하려고 하지만요. 그래야 불편하지 않게 세상의 혁명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러한 안전함에만 취한다면 정말로 사회의 동맥경화를 막아줄 필요한 자극으로, 사회에 내재된 항체 같은 존재들을 제때에 호출하지 못하죠. 그들은 엉뚱한 데서 헛돌고, 사회 체제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기존의 영광을 좀 먹으면서 성인병에 걸린다고 봐요. 사회가 자신에게 내재된 저항력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한 채요. 그래서 사회 내부에서도 자신의 어딘가에 그런 유익한 존재가 있는지 파악해야 해요. 사회의 관점에서도 혁명성을 탐색하고 있다면 그러한 움직임 속에서 천재는 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죠. 그래야 이 시대에도 미래적 가능성과 그 움직임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존재를 천재로 호명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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