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에 침윤된 천재들

[1.1]동호 & 천재론2.1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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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동호: 자본에 침윤된 천재들

천재는 홀로 태어날 순 없지만, 천재는 사회의 예상을 깨고 사회를 탈주해서는 기존 사회에 반기를 들며 타격을 준다고 했었죠. 그건 뭐,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죠.

과거엔 가톨릭 등의 종교나 왕정의 전제주의, 또는 제국 식민주의에 맞섰을 뿐이죠. 20세기에 와서는 냉전 이데올로기, 독재정권의 부조리, 자본주의 병폐에 맞섰고요. 요즘 같은 때라면 자본주의에서 지나친 상업화의 문제에 도전할 수도 있겠죠. 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삶을 살아가는 데에 매우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만큼 우리의 모든 것을 속박하고 옥죄는 무기이기도 하니까요. 결코 가볍게 볼 수가 없죠.


결국 지금의 천재라면 자기가 붙드는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유형이 대표적일 것 같아요. 이때도 저항의 관습이 생기는데 자본주의 시스템은 그마저도 상업화해버리죠. 그들은 이해 가능한 영역에 놓이죠. 체 게바라 티셔츠로 저항의 아이콘을 멋으로 소비한다든지 하는 것이요. 한때 랩메탈의 거장인 레이지 어겐스트 머신이 시스템의 저항을 부르짖지만, 여느 록스타와 다름없이 큰 부를 축적하고 체제 저항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은 없다는 것이었죠. 그에 대해 마이크가 쥐여지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고, 그래서 노래로 저항을 한다는 식으로 반박했다고도 하는데, 이런 논쟁은 딱히 깔끔하게 끝맺기도 어려운 문제죠. 사실 록은 이미 음악 산업 안에 포획되었고, 오히려 지금은 예전만큼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힙합에 저항의 장르라는 이미지를 내어준 면도 있어요. 그때도 인기, 사회적 파급력을 보았을 때 예전보다 록이 쇠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어요.

그게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저로선 모를뿐더러 지금 여기서는 중요한 지점도 아니고요.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저항의 방식도 진부하게 정형화되었다는 것이겠죠. 심지어 정말로 그러한 시스템에 포획된 록스타의 모습에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일찍이 죽음을 택했던 록스타조차 상업적 시스템에 안 걸릴 수가 없었죠.

그런 면에서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90년대 얼터너티브록이 세계 음악의 주류로 부상할 때 천재였던 커트 코베인을 포착하죠. 죽고 나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어요. 시스템에 갇혀 고뇌하는 천재로 부활해서는 큰 명성을 얻었죠. 실제로 행동하였으니 팬들로서도 엄청나게 충격이 컸을 거예요. 그는 단순한 음악가가 아니라 그 당시 록 정신 그 자체였다고 해야 할까요? 솔직히 그가 뭘 한 건지 모르고, “그냥 갑자기 죽은 것뿐이잖아?”라고 반문하실 분도 있겠지만, 그 자체, 그 완고한 자본의 논리를 거부한다고 선언을 넘어선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개인의 불행을 넘어서 하나의 상징적인 퍼포먼스 같았죠. 그런가 하면 펄잼은 독재에 저항하는 운동권처럼 자본의 시스템에 소송전도 불사하면서 진중한 록그룹의 이미지를 쌓았어요. 그들에겐 수재이자 거장의 이미지가 있죠.


우리는 정말이지 자본에 저항하는 방법을 참 많이 보았어요. 그래서 자본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저항하는 모습을 멋있게 보는 것에도 익숙해요. 아, 아니다! 그렇게 저항하는 게 초점이 아니라, 그러고도 돈을 많이 번다는 게 핵심이겠네요. 돈을 벌지 못했다면 자본주의를 찬양했든 저항했든 상관없이 군색해지죠.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려면 우선 유명세를 떨치면서 자연스럽게 경제적 수입도 느는 경우가 많죠. 그러니 아예 가난한 것으로 유명해진 경우가 아니라면, 비범해보이는 천재란 사회적인 부도 웬만큼 축적했을 테니까요. 그들은 사회에 적절히 순응하면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압도적 능력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감당할 만한 관습적인 저항의 방법을 알아요.


이렇게 말하면 그들이 가짜 같은데, 실제로 그러한 상황에서도 아주 뛰어난 사람들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보면, 의사는 꼭 있어야 하죠. 의사가 검증되지도 않은 내용으로 사람들에게 임상실험하면 큰일나죠. 이런 분들은 비범해보여야 해요. 괜히 하찮아보이는 것이 자기가 진짜 천재기 때문이라면서 사람들에게 검증도 안 된 약을 투여해선 안 되겠죠. 그 약 하나로 만병이 낫는다고 하면 큰일 나죠.

좀 과장해서 말했는데, 물론 의학에서도 분명 쉽지 않은 과정을 겪는 분들도 있고 유전자편집기술 등에 관하여 저도 잘 모르기에, 새롭게 진보될 성과 중에는 분명 주류에서 잡히질 않은 어떤 게 있을 거예요. 그런 데서 천재적이라면 위험해보이거나 하찮아보일 수도 있을 거고요. 나중에야 그걸 알아채서는 그분들을 그때 못 알아본 걸 미안해하겠죠.

그래도 어쨌든 지금 제 수준에서 보자면, 의학에선 아무래도 우리가 합의하는 범위 내에서 비범해보이는 천재나 수재가 많겠죠. 외과 수술을 막 창의적으로 해버리면 곤란하죠. 엄연히 약속이 있는데 말이죠. 아주 조심스럽게 첨단 의술을 함께 적용해가는 것이고, 모두가 그렇게 집단으로 움직이면서 충분히 공유하는 지식과 감각이라는 게 생기죠.


그런데 이런 분들이 꼭 유명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천재 의학자라고 하면서 언론을 잘 다룰 줄 아는 누군가가 더 큰 천재로 대접받기도 해요. 방송국에서도 입맛에 맞는 존재들을 호출하고 싶어 하니까요.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로선 천재란 사람이 의미 있게 소통해줄 때 좋게 각인하겠죠. 욕쟁이 할머니처럼 역으로 상대를 막 대해서 흥행 포인트를 잡아내는 경우도 있다지만, 결국 잘 팔기 위한 전술이잖아요. 어쨌든 이러다 보니 푸념조로 정말 그 바닥의 최고 실력자보다는 ‘그보다 약간 못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실력 있는 분’이 더 명성을 날린다고도 하죠. 뭐, 근거 있는 말은 아니지만요. 처세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겠죠. 그 말이 사실이라면, 사회의 모든 가치가 점점 자본주의로 쏠리고 말초적으로 반응하면서 천재를 잘못 호출해내는 거죠.


의사처럼 저항보다는 체제에 융화되어 지성의 유기적 결집을 이루어야 하는 분야 말고, 예술 분야라면 아무래도 록스타들처럼 세상에 저항한다는 이미지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도 하죠. 모든 록스타가 그랬다는 게 아니라, 음악 산업은 많은 록 음악가에게 그런 역할을 부여하고자 한 거죠. 그리고 이 경우에도 결국엔 유명해져야 그들의 저항이든 퍼포먼스든 그러한 행위에 주목하잖아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대중의 주목을 받아야 영향을 끼칠 기회라도 부여되고요. 또 그러한 영향을 주어야 비로소 천재든 거장이든 평가할 요소가 생기죠.

결국 영향을 끼친 사람이 천재나 거장이라는 순환논리처럼 귀결되면서, 재능이 있었을 이름 모를 무명씨들은 자본주의적 규칙에 합의하게 돼요. 예전에도 비슷한 과정이 있었겠지만, 그러한 과정에 체계적인 경제적 성공이 따라붙는다는 것, 그걸 넘어서는 저항은 쉽지 않아서 대중에게 자신을 맞추려는 강력한 유혹이 생긴다는 점이 조금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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