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예술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선물했다

[2.1]희정 & 천재론2.1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 목차 상세보기)


※ 「등장 인물의 관점 & 소개글」 보시려면 → 목차 상세보기





[2.1] 희정: 자본주의는 예술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선물했다

글쎄요, 동희 씨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어요. 우선 동희씨의 말처럼 비범해보이는 천재들이 분명 주류에 많이 있음에도, 자본주의가 그러한 상황을 왜곡해서 그러한 천재를 제대로 호출해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봐요. 쉽사리 자본주의 바깥을 상상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어느덧 재즈는 잊힌 장르처럼 인기가 급격히 떨어졌고, 그렇게 비인기 장르들이 갈 만한 길목 중 상당수는 폐쇄될 수도 있겠죠. 마치 세계의 소수민족 언어가 계속 사라지고 있듯이요. 재즈는 계속 영원할 것으로 믿지만, 적어도 인재가 줄수록 그만큼 새로운 실험의 가능성은 작아지는 거니까요. 록도 마찬가지겠죠. 언젠가 힙합도 그러겠죠. 자본주의의 논리 안에서 보편적 주류에 속하지 못하면 천천히 위축되고요.


하지만 이게 마치 자본주의만의 특징인 것처럼 말하는 건 좀 과장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시대에나 할 것 없이 보편적으로 생계를 걱정했었고, 또 사회의 인정은 중요했죠. 그 때문에 귀족의 입맛에 맞든 대중의 입맛에 맞든 사회와 타협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필요했고요. 꼭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탄생하는 뛰어난 존재들, 수재든 천재든 있다고 보거든요. 그들 역시 예전의 사회인들처럼 세상에 적응하면서, 세상을 민감하게 느끼고 급기야 세상에 질문을 던지죠. 자본주의 때문에 특별히 천재란 의미가 변질되었다? 그렇게 생각지는 않는다는 거죠.


더구나 동희 씨의 인터뷰를 듣다 보니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에 해악만 끼친 것처럼 느껴지고, 부자가 되려는 노력이 천재에게 독이 되는 것처럼만 표현하는 것 같은데, 그것 역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고요. 예전에 어땠나요? 귀족의 눈치를 보았잖아요. 조선에서 예술가는 천민 신분으로 제한될 때도 있었죠. 기생들이 그랬고, 남사당패와 같은 사람들도 낮은 신분이었어요. 운이 좋아서 중인 신분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요. 그만큼 당시 사회의 방식이 천재에게 많은 제약을 가져다주었다고 봐요.

천재가 부자가 되려는 것 정도는 양호하지 않나요? 천재가 스스로 일해서 그것으로 먹고 산다는 발상, 그 어느 때보다 좋은 것 같거든요. ‘너무 부자가 되려는 것에 매몰되어 모든 개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쩐지 장점에 비해 단점을 지나치게 과장한 것이라고 느꼈거든요. 물론 대개의 예술가들은 그 정도의 위치에 오르지도 못하겠죠. 그래서 거기에 섞여 있을 존재, 즉 보편적 주류에서 밀려나겠죠.

그런데 그런 예술가들에게 ‘능력대로 노력하면 길이 열린다’는 믿음마저 없다면 버티기 힘들 거예요. 자본주의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밀려났지만, 여전히 그것이 천재를 자신의 독자성을 지키는 희망으로도 작동할 수 있죠. 국가에서 충분히 먹고 살 돈을 주는 사회를 상상하긴 어려우니까요. 복지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유럽에서도 실직했다는 의미로 준다고 들었거든요. 그것으로는 안정된 생활을 할 정도는 아니죠. 버티는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겠지만요.

재즈가 비인기 장르고 어떻게 대중과 교감해서 다른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이런 하소연 비슷한 내용을 말하네요.


동희 씨의 의견은 아무래도 과거 순수예술은 돈을 벌지 못하고, 세상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 듯해요. 어찌 보면 대중예술을 낮잡아 보는 시선일 수도 있는데, 재즈를 고집하면서도 저는 대중의 감각을 존중하는 편이라서 그럴까요, 너무 과도하게 감각적으로 치우치는 흐름은 아쉽지만, 그래도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다양한 음악이 태어나면서, 대중은 순수예술의 억압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취향과 감각을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분명 민주적이죠.

또 보편적 주류에 자본이 개입되면 그만큼 어떤 성과물을 세상에 더 빨리 퍼트릴 수 있어요. 돈이 되는 것은 분명하고도 강력한 동기죠. 그렇게 대중음악이든, 신약 개발이든 우리는 막대한 영향력을 짧은 시기에 전 세계에 퍼트리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 안에서도 충분히 혁신하려는 움직임이 있고요.


동시에 이 체제를 전복하려는 체 게바라의 계승자들도 있고요. 개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생계만 잇는 아티스트조차 자기 채널을 확보하여 세상에 노출하는 시대에 살죠. 사실 재즈가 미국의 음악이 아니어서 세계적인 유통망을 빌리지 못했다면, 재즈가 대단한 잠재력이 있다고 해도 이처럼 확장하지 못했을 수도 있죠. 수많은 민속음악 중에 하나로 남았을 수도 있죠. 다행히 재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미국의 음악이었어요. 게다가 그만한 내공도 갖춘 덕분에 비인기 음악이어도 세계적으로 꾸준히 노출되고, 재즈를 각 지역에 뿌리내리는 데 성공했다고 보죠. 이건 분명 자본의 논리가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발전이죠.

그리고 이젠 방 안에서도 가능한 면이 생겼어요. K팝이 유럽과 남미의 청소년에게까지 알려진 것처럼요. 언제나 자본의 논리에 부합하지 않으면 삭제될 수 있지만, 동시에 그 논리에 따라 기회를 더 많이 부여받기도 하죠. 자본주의는 공룡이자 잡식성이니까요. 굉장히 많은 아이디어를 빨아들이죠. 그것이 바로 다양한 빅뱅의 가능성을 여전히 잃지 않을 수 있다고 봐요. 늘 그중 입맛에 맞는 것만으로 골라먹는 쪽으로 흘러갈 때, 천재들은 다른 것도 맛있다고 외칠 뿐이죠. 자본주의가 원래 먹던 것 중에서 숨은 음식을 골라준다고 해야 할까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럼에도 낭중지추는 있고, 그걸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