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논리는 결국 획일화로

[1.0] 동호 & 천재론3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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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 인물의 관점
- 동호(서양 회화 전공): 천재는 개인의 역량으로 찬사의 대상. 사회를 뚫고 나온다. 낭중지추.
- 민규(사회학 전공): 천재는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사회는 필요한 때에 필요한 지점에서 천재를 호출한다. 마침 바로 거기 있는 자를 천재로 인정해주는 것뿐이다.
- 희정(재즈 피아노 전공): 사회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크긴 하지만, 천재의 개인적 역량도 무시하기 어렵다.
[소개글]
- 천재를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을 통하여 다양하게 천재를 바라본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으로 천재의 특성을 포착하려 했지만, 그건 엘리트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오히려 천재를 수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시민의 역량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점으로 흘러간다. 창의성과 다양성의 역량을 강화할수록 천재는 다양하게 포착된다.
- 이 글은 세 명의 입장을 통해 각각의 주제에 대해 인터뷰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특정한 주장을 하기보다는 특정 주제에 대해 있을 법한 주장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려 하였다.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1.0] 동호: 자본의 논리는 결국 획일화로

희정 씨가 인터뷰에서 말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순기능이 무슨 의미인지 공감하지만, 자본의 논리는 결국 획일화를 초래하고 말아요. 평범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노출되는 건 다양한 빙산이라기보다는 획일화된 단면이었어요. 사실 일상에서 특별히 재즈를 찾아보는 사람들 아니라면, 과연 재즈를 느낄 만한 구석이 대한민국에 많을까요? 방송에선 온통 아이돌뿐이죠. 아이돌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아이돌만 있는 건 바람직하지 않죠. 결국 상업 논리를 극단으로 향한다는 생각을 해요. 마치 약육강식, 적자생존 같은데 경쟁 논리가 살벌하지만 엄연한 진리처럼 통용되는 게 아닐까 싶고요.


사실 대중들은 다른 분야의 내부 사정에 밝지도 않죠. 아이돌 음악이 많으면, 싫으면 안 들으면 그만인데, 곧 사라질 줄 알았던 아이돌 음악이 20년 넘게 강고하게 주류 음악이다 못해 절대음악 장르화되더니 이제는 세계적인 댄스음악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어요. 이쯤 되면 대단하다 싶은데, 음악은 그래도 대중들이 듣고 좋다 싫다 하는 의견이 생기죠. 좋은 노래의 기준 자체가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악기 하나 다룰 줄 몰라도 들을 수는 있어요. 오히려 자기 음악의 우월성을 강조하다가는 대중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해요. 감동 하나 없는 음악을 들으면서 억지로 좋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반응이라도 보이면, 예술가로서도 겸연쩍어지죠. 그게 예술에서는 가능하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떤 예술이 뛰어나고 어떤 예술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겠죠. 비전문가니까요. 그래도 뭔가 자본의 잣대로 문화 콘텐츠를 평가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대중의 취향에 맞춰 인기를 끌고 음악 산업에 경제적으로 파급 효과를 크게 하는 것, 그게 높이 평가 받고, 지속적으로 거론되기도 해요. 지금 와서 보면 세계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 판매고를 올리면서 음악성도 인정 받는 아티스트들이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마이너한 음악의 입지가 줄어든다고 해야겠죠. 전 역사를 놓고 볼 때 결국엔 균형을 맞출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지금의 이 사회의 특징처럼 사실 예전에도 일단 대중에게 어느 정도 알려져야만 그다음의 진지한 평가가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어요. 지금은 그걸 노골화해서 대중의 취향과 자본의 논리로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고요. 그렇게 획일화의 본질적인 욕구랄까요. 표준화라고 해야 할까. 예측 가능성이라고 해야 할까요. 사회는 자꾸만 끊임없이 통합의 미덕으로 단일한 가치를 수용하는 쪽으로 힘을 키우죠. 그러다 너무 쏠리면 획일화되는 것이고요.


이러한 자본주의 논리는 어렸을 적부터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죠. 대개 사람들은 유명해지고 싶어 하죠. 그래야 대중에게 선택되고 돈을 많이 벌 기회가 많아지니까요.

그리고 그보다 우선적인 게 남들이 인정하는 과정을 밟는 거예요. 남들이 혹할 수 있는 객관적인 요소들인데, 그만큼 제도적 평판을 중시하며 모험보다는 안정을 취하려 하죠. 그렇다고 그 길이 쉽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고단하고 지난하긴 마찬가지죠. 사회의 수용력이 크지 않으면 몇몇의 진로에서 엄청난 경쟁을 해야 하죠. 가고 싶은 곳은 한정되어 있는데, 너도 나도 가려고 하니 병목현상이 발생해요. 서울대가 대표적이잖아요. 서울대 모르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있을까요? 결국 우리 교육은 경쟁 그 자체죠. 모두가 원하는 대학은 정해져 있고, 모두가 대학을 가려고 사활을 걸다시피 하니까요.

경쟁이 심한 나라잖아요. 대한민국요. 이 시스템에서 1등 하기를 원하죠. 서울대를 가기를 원하고요. 예전에는 인문계는 서울대 법대, 자연계에선 의대를 가려고 했고요. 거기서 정확히 엘리트가 되는 전형적인 길이 정해져 있었는데, 요즘엔 진로의 폭이 약간 넓어졌을 뿐 크게 다르진 않아요. 경영학과를 나오고 컴퓨터공학과를 나오더라도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유학을 다녀와서 더 좋은 자리나 연구직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목표죠. 그만큼 학력 인플레이션은 지속적으로 생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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