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교육 환경은 테크니컬 수재 양성소

[1.1]동호 & 천재론3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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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동호: 우리의 교육은 테크니컬 수재 양성소

교육은 한 사람의 시민적 자질을 길러주는 것이면 좋겠지만, 그건 듣기 좋은 말로 붙여놓은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교육이란 테크니컬 수재를 양성하는 훈련소라고 하는 게 적절하죠. 개인적으로는 이 점에서도 조금 불만이죠. 사교육 과열과 지나친 경쟁으로 아이들이 병들어간다는 말을 하는데, 막상 그러한 교육을 해서 나중에 대학에 간 뒤로는 그러한 교육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쓸모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었죠. 어느 순간 모두가 대학에 가야 하니, 또 그것에서는 모두가 민감해지죠. 편의적으로 서열을 세우기 위해 문제의 소지가 적은 수능식 오지선다형을 선호할 수밖에 없고요.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1~2점으로도 당락이 결정되고 결국 비슷한 문제를 고난도 반복 연습하는 일에 청소년 시절의 상당 시간을 투자한다고 봐야죠. 실력은 상향으로 인플레이션 되고, 계속해서 과잉으로 각 과목들을 반복적으로 기계적으로 공부해야만 하는 상황이 일어나요. 문과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그렇게까지 수학에 매진해야 하냐 하면, 대개는 대학 가서는 수학책을 펼쳐보지도 않지만, 논리적 사고력을 향상시켰다는 애매한 위안을 하면서 그때를 회상하죠. 솔직히 수학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것도 꽤 유효한 방법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 가면 예전에는 신나게 놀았다지만, 이제는 스펙을 쌓아서 대기업에 가거나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 대학원에도 가죠. 최종적으로 원하는 대기업에 가면 인생이 무한경쟁의 사회에 본격적으로 소속되는 것 같죠. 평범한 시민이라면 결혼하고 자기 자식에게 열을 올리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면 말이죠. 자식이 있다면 말이죠.

우리의 사교육 시장은 건재하죠. 아무리 위축시키려 억눌러도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된 곳이 사교육 분야니, 쉽지 않죠. 애초에 방법이 잘못된 거죠. 모두가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데, 가는 방법을 바꾼다고 사교육이 없어지겠어요? 과외를 불법으로 누르면 유복한 집 자제만 유리해지고, 불법으로 안 누르면 서민들도 없는 돈을 쪼개서 과외를 시키고 그랬죠.


만일 모두가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면 그럴 일이 많이 줄어들 텐데 말이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논술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하던데, (웃음) 그것에 호응하는 학부모는 적죠. 투자 대비로 가장 애매한 게 논술이기도 하고, 자기 자식을 보니 논술을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아이들이 참 적거든요.

그러면 반대하는 거죠. 공교육계에선 제대로 논술 교육을 하지도 않았으니 명분도 애매하고요. 무엇보다 채점을 했을 때 과연 공정성 시비가 안 생길 자신이 있느냐 하는 거죠. 그래서 일본이 수능에 논술을 도입하고 진행되는 추이를 잘 지켜봐야겠죠. 과연 오지선다형의 객관식 문제에 익숙한 나라에서, 모두가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나라에서, 그게 대선에서도 민감한 당락 여부가 될 변수인 나라에서 채점자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는 건 분명 시빗거리가 되죠.

그러고 보면 학종은 처음에 어떻게 통과되었는지 신기하죠. 깜깜이 전형이라는 불만이 많았고, 부자들에게 유리한 전형, 특목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전형이라는 불공정 시비가 많았잖아요. 애초에 모두가 대학을 가야만 하는 강박, 그러지 않으면 출발이 절대적으로 불리해질 것이란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다 보니 그런 것이겠죠.

우리나라엔 ‘시류에 휩쓸리는 문화’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유교가 국교인 시절이라든지 그 이전에도 좁은 영토에서 공동체를 중시하면서 살아서 그랬던 걸까요? 수직적 가치가 지배하죠. 서열을 중시하고 나이를 중시하잖아요.

그러한 서열이 다양한 유형으로 있다면 좋을 텐데, 공동체가 단결하여 생존하기 위해선 단순한 게 좋을 때도 있는지 획일화된 가치가 지배할 때가 많았죠. 관용이 부족하다고 해야 할까요? 다양화 다원화에 익숙지 않죠. 분명. 이런 사회에선 서로에게 정해진 역할이 부여되고 각자가 이를 얼마나 잘 준수하는지가 중요하죠. 내가 아니라 우리가 중요하고 우리로서 하나가 되려면 부여된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하죠.

대한민국이 많이 발전했음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는 데 인색한 게 아닐까 싶죠. 여전히 순혈의 단일민족이란 인식이 강하고 난민 수용에 인색한 편이죠. 궁극적으로 다문화 다원화로 나아가야 하는데, 현실에선 우리가 하기 싫은 걸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이나 외부자로 충당하려는 수준에 머물러 있죠.

선진국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오래 전에 있었고, 그 지점을 넘어가려는 데에서는 우리보다 앞서 있죠. 다만 자본주의가 현대사회의 절대적인 주류 가치를 지배하다 보니, 사람들 옷차림새도 비슷해지고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고자 하는 바람 역시 비슷해졌어요.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소망까지도 닮았죠. 물욕은 정말 오래 전부터 버전만 바꾸고는 지금까지 이어지는 욕망이지만요.


어쨌든 자기 자식이 천재라면 좋겠지만 돈을 벌지 못하는 천재를 원하는 건 아니죠. 자본주의적인 상상력으로는 아무래도 수재든 천재든 돈을 벌지 못하면 의미 없는 거죠.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꿈꾸는 것인데, 그런 몽상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래도 도전하고 일탈하고 반역하는 천재란 한심한 존재일 뿐이에요. 철이 덜 들었고 무엇보다 돈을 못 버는 존재, 민폐만 끼치는 존재죠. 현실을 모르고 나대는 우스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런 천재는 위험해보이지도 않죠.

반면에 비범해보이는 천재라면 좀 얘기가 다르죠. 무슨무슨 석학이고, 무슨무슨 콩쿠르를 우승한 천재죠. 이들에게 돈뿐 아니라 명성도 일석이조로 보장되죠. 애초에 부자였던 돈을 더 많이 버는 것보다 이러한 폼 나는 타이틀이 더 매혹적일 거고요. 대개는 천재의 본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을 거예요. 다윗이 왕일 때는 좋지만 광야를 떠돌며 연단을 받을 때는 싫은 법이고, 요셉이 이집트로 노예로 팔려가 고생할 때는 싫지만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을 때는 아무래도 그 직책을 선호하죠. 훌륭한 사람이니까요. 천재란 딱 그 정도의 의미라고 할 수 있어요.

진짜 천재가 아니라 화려한 존재, 자신이 그리던 천재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것 같은 존재, 말끔하고 단정하고 세상의 존경을 받는 사람으로서요. 천재란 타이틀은 세상의 기득권이 되기 위한 수단인 셈이죠. 더 높은 명성과 부를 쟁취하기 위한.


그러니 목표를 이룰 수 있다면 굳이 천재란 타이틀도 필요치 않아요. 그 모든 목표 중 우선적인 필수로 선호하는 게 부의 성취가 아닐까 싶고요. 모두가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선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갓물주’부터 원하죠. 비트코인과 테슬라 주식을 손에 쥐고, 불로소득의 그날을 꿈꾸는 시민들의 사회에선 아무래도 꿈이란 협소하고 납작하기 마련이에요.

그렇게 대개는 납작한 골목길을 지나 같은 방향을 향하여 움직이죠. 자신의 길을 그려보다 보면 모두가 굉장히 닮아있어요. 대개의 경우가 다 돈을 잘 버는 유명한 사람 정도를 꿈꾸는 건데, 이를 위해서도 연령대별로 해야 할 것이 유형화되어 있어요. 한국 사람이라면 각 순간에 주어지는 미덕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존중을 받으며 성공하는 순간을 꿈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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