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영재가 되려 하나

[1.2]동호 & 천재론3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 목차 상세보기)


※ 「등장 인물의 관점 & 소개글」 보시려면 → 목차 상세보기





[1.2] 동호: 무엇을 위해 영재가 되려 하나
어린 시절이나 어른이 되어서나 꿈이 다양하지 않아요. 조금 나은 형편이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에 따라 선택 폭이 약간 달라질 뿐 그마저도 결국 고정된 성공 유형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사업가를 꿈꾸고 어떤 사람은 대기업 입사를 꿈꾼다는 정도죠. 남들이 인정하는 것을 하면서 존경 받는 것이란 공통점이 있고요. 그에 맞춰 획일적인 교육을 하고요. 이런 교육 흐름에서 남들보다 먼저 나아간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일 거예요. 인정 받는 기분이 드니까요. 그래서 어렸을 적에 영재반에 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다고 생각하고요.


영재반 입학 경쟁이라 하니 갑자기 떠오르는데, 예전에 초등학교 때도 6시간에서 8시간씩 스케줄을 관리해주는 학원이 있었어요. 그 학원에 들어가려면 대기표를 받고, 그 차례가 오면 입원 시험을 치렀어요. 네, 병원에 입원하는 거 말고, 학원에 등록하는 거요. 입학은 아니니까요. (웃음) 들어가서도 경고 딱지를 세 번 먹으면 퇴원 조치되니 정말 말 잘 들으면서 열심히 해야 했어요.

영재반에 들면 엄마가 무척 좋아하셨어요. 이건 나름대로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던 거였죠. 아이들이 영재란 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아이를 위해서, 혹시나 아이가 커서 자신의 재능을 키워주지 못해서 힘들게 살아간다고 원망할까 봐, 부모로선 최선을 다하게 돼요. 때로는 아이들 입장에서 엄마의 자존심을 세워주려고 끌려 다니는 과정이었다고도 할 수 있어요. 영화 <플랜맨>에 나온 주인공도 그런 비슷한 삶을 산 거죠.


그런데 어쩌면 아예 영재가 아닌 편이 더 나은 듯해요. 그러면 희망고문은 없을 테니까요. 그런 영재반에서 백날 연습한다고 천재가 아닌 아이들이 천재가 될 리 없어요. 오히려 시스템에 순응하는 훈련을 하면서 거기서 벗어나면 얼마나 무서운 대가를 치르는지를 배우는 거예요.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절실히 깨달은 살리에리처럼 희망고문으로 고통스러울 뿐이죠. 많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크고 말죠.

천재는 사실 키운다고 키워지는 건 아니죠. 누가 온실 속에서 천재가 되겠어요. 탈주할 수 있는 존재로 크지 못할 텐데요. 반역할 수 있는 강심장이 되지 못하는데요. 수재의 훈련을 받을수록 천재가 될 가능성은 그만큼 적어진다고 생각해요. 돌출적인 상상력은 언제나 그러한 안정된 곳 바깥에 있다고 믿는 편이에요.

물론 아예 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천재가 많아진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천재일 재목들만 천재가 된다는 거죠. 10명의 영재를 키워도 천재인 재목이 1명이라면 1명만 천재가 된다고 보죠. 9명 중에선 지쳐 나가떨어지거나, 순응하는 수재로 성장하는 거고요.


천재에 대해선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진부해지고 고도화되면, 반드시 그것에 대비되어 탈주하는 존재가 나올 것이니까요. 오히려 우리 스스로 깊어져서 사회를 통찰하고, 새로운 가치를 지닌 천재를 알아볼 안목을 키우려면, 이 사교육의 열기를 효율적인 활용하는 게 어떨까 상상하죠.

제대로 사교육에 투자한다면 차라리 차선으로는 괜찮다 싶거든요. 그리고 그러한 방향 설정 이후 차츰 근본적으로 입시 등 과열된 분위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좋을 거고요. 의미 있는 지점을 잡아내서는 그걸 잘할 때 제대로 인정해주는 분위기를 만들어보자는 거죠. 인정욕구를 엉뚱한 기예를 잘하는 것에서 풀게 하지 말고요.


하지만 대개는 당장의 기능성 평가에 집중하고 말아요. 그게 가장 편의적이니까요. 예를 들어 당장 표를 중시할 때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맞추지, 설득하기는 애매하니까요. 장기적이란 말을 듣기 좋은 말일 뿐일 때가 많아요. 당장 단기적인 것이 어떤 방향으로 표류하더라도 쉽사리 외면하기 어려운 문제로 다가오니까요. 그걸 해결하려고 일단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놓고 말죠. 정치인들이 그러잖아요. 진통을 겪으며 미래를 향해 모두에게 고통을 분담하자고 하는 건 자칫 표 떨어지는 소리에 불과해지죠.

방향성은 사라지고 대개는 왜 해야 하는 줄 모르고 맡은 바 일을 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사회에서 마련한 게임의 규칙을 성실히 수행하여 승리할 때만 상찬 받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뭘 하더라도 사회의 권위를 이길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아요. 틀을 깬다는 건 욕 먹는 일일 수 있고, 사서 고생하는 일이 되죠. 대개는 실패와 비난을 떠안는 선택이다 보니, 어리석은 선택으로 분류되고 말죠. 심지어 악으로 분류하기도 하고요. 자신들의 평온을 깨는 불온 세력일 수 있으니까요. 똑똑한 사람이란 눈치를 잘 보는 사람이란 것을 어렸을 적부터 경험으로 배우는 거예요. 머리는 똑똑한 겁쟁이만이 양산되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의 교육 환경은 테크니컬 수재 양성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