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나 자신에게도 여유롭지 못한 사회

[1.3]희정 & 천재론3

by 희원이

[목차: 천재론]

◑ 1부. 부자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 천재를 유형별로 분류하는 세 가지 방식

♬ 천재는 홀로 태어나는가?

♬ 자본주의와 천재

◑ 2부. 창의적 도전과 보상 체계

♬ 인정 욕구와 눈치 보기

♬ 정당한 보상과 문화적 토양

♬ 천재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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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희정: 남에게나 자신에게도 여유롭지 못한 사회

획일적으로 몇몇의 보편적이고 주류적인 가치만을 받아들인다면, 그만큼 삶을 상상할 수 있는 폭도 협소해지죠. 그러면 그 사회는 보수화될 거예요. 사회에서 원하는 것만 잘하면 되고, 실제로 그 너머를 상상한 적도 없을 테니까요. 한국 사회에선 과거에 서울법대를 나와서 사법고시를 합격해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엘리트가 되는 것을 꿈꾸었어요. 판사나 검사가 된다는 것을 그냥 공식처럼 말했어요. 자연계라면 의사가 되는 것이고요. 이처럼 비좁은 영토에서 확고한 경쟁 논리밖에 없으면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내면화하고, 스스로를 질책하죠. <피로사회>였나요? 우리는 사회로부터 검열받는 시대를 지나서 스스로 성장의 논리에 따라 자기검열을 한다고요. 스스로 실적을 내기 위해 자신을 극한까지 내몬다고요. 그렇게 경쟁 아니면 다른 무엇도 상상하기 어려워졌죠.

뭘 하든 그 분야에서 몇 등을 하는지 궁금해지고, 어떤 권위 있는 사람이 인정했는지 알려 하죠. 그런데 그 분야 중에서도 사람들이 선호하는 분야가 몇 없다면, 비인기 분야의 가치보다는 선호하는 가치로만 모두가 훈련하기 마련이에요.


이건 분명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일단 왜 그토록 한둘의 성공 방식만을 강조하게 되었는지 그 맥락을 이해할 필요는 있어요. 그래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도 적절히 찾을 수 있으니까요. 오래도록 사회 체계에서 구축된 성과를 무시해선 안 된다고 보죠. 그 사회가 나름대로 글로벌하게 자신을 증명해냈다면 더더욱요. 실제로 우리는 획일화된 사회 구조 속에서 억압받기도 하면서, 그러한 강박적인 교육 문화와 경쟁 분위기 덕분에 고학력의 인재들이 빠르게 배출되었어요. 그건 곧 고속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고요. 그것이 분명 엄청난 문제를 안고 있는 방식이었기에 옳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가난을 극복하려고 맹목적으로 부유한 미래를 꿈꾸던 시절의 한 단면이었어요. 전 세대는 분명한 목표를 지녔던 것이죠. 그렇지만 그건 언젠가는 극복되고 개선되어야 할 한계를 지니고 있었고, 그 시기를 꽤 지나고도 해결할 수 없었어요. 성공한 성과에 매몰되어 있었으니까요. 이제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 자살율이 높은 나라의 시민으로도 살죠. 정체된 경제 상황, 줄어드는 인구, 다양한 가치를 포용할 수 없는 불관용적인 문화, 무엇보다 패배하고 도태되어선 안 된다는 강박, 이게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해요.


인생을 충분히 돌아볼 수 없게 하는 빡빡한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여유를 잃고, 인성도 잃고 있죠. 스스로도 약자면서 인식하지 못한 채 다른 가치의 약자를 포용하고 연대하는 법을 잊었어요. 스스로 자본주의를 내면화하면서 기득권의 마름이라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비열한 속성마저 보이는 게 아닌가 싶어 절망할 때가 있어요. 그게 사는 데 편해 보이니까 그러는 걸까요? 경청하지 못하고 그러한 잘못된 가치를 강요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요상한 반지성적 분위기가 팽배해졌죠. 우리가 이해하기에 낯선 것에는 방어벽부터 치고, 악마화하기도 하죠.

그게 정말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라고요. 우리 사회가 척박해지는 것은 경제적 문제도 있고, 출산율 등등 모두가 다양한 문제를 지적하겠지만, 저는 부동산 아파트 값 하락이 무서워서 복지 시설을 혐오시설이라며 내몰려고 하고, 난민을 불편해하고, 멀리 보지 못하고 한줌의 떡고물에 연연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너무도 힘들게 전투를 하듯이 살아와서 그런지 어떤 선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합리화하죠. 그런 자신을 비판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때로는 자신이 하는 일이 선이라는 굳은 믿음마저 생겨버렸어요. 그러니 그것과 경계 짓는 모든 것과 싸움이 일기도 하죠. 결국 그런 싸움으로 연대를 망가뜨리고 더 행복하게 사는 지혜를 스스로 팽개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우리는 주류에게만 보편적인 삶, 평범한 삶, 튀지 않는 삶, 보장된 길의 삶. 획일적인 삶을 살면서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에 집착해요. 당장 성과를 내지 않으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겠죠. 진짜 천재가 된다고 해서 칭찬받지는 못하고 오히려 고생문만 열렸으니 모험을 하지도 못해요. 그런 모험은 미쳐야 할 수 있을 일이에요. 사실은 밀려난 채로 회복되기 어려워, 그 길에 쏟은 시간이 억울해서, 그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벼랑 끝에서 떠밀리듯 하고 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새로운 모험과 질문을 선호하지 않는 사회이다 보니, 애써 상상하기를 멈추는 거죠. 우리가 부르는 천재란 표현이 점점 공허해지죠. 천재란 말의 진짜 의미는 증발하고, 창의적인 천재란 상찬은 그냥 좋은 말이니까 쓰는 정도로 전락해요. 천재는 아무런 자극도 주지 못해요.

우리는 지금 여유가 필요해요. 더 멀리 보고 서로 어떤 곤란을 겪는지 바라보고 들을 줄 알아야 하죠. 하나만을 위해 산 사람은 그 하나를 잃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더 많은 데서 가치를 찾아낸다면, 그만큼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천재란 그 모든 곳곳에서 두더지처럼 잠복하다가 우리에게 잊지 말라고 자극하죠. 우리의 삶을 생기 돋게 해주고, 우리가 환희로 놀라 웃게 하는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그를 통하여 그가 서 있는 곳에서도 행복이 흐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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