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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Dec 11. 2023

이 노래가 수상하다: 델리스파이스의 <고백>

놀이글 & 박태환

중2때까진 늘 첫째 줄에

겨우 160이 됐을 무렵

쓸만한 녀석들은 모두 다

이미 첫사랑 진행 중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야

물론 2년전 일이지만

기뻐야하는 게 당연한데

내 기분은 그게 아냐


하지만 미안해 네 넓은 가슴에 묻혀

다른 누구를 생각했었어

미안해 너의 손을 잡고 걸을 때에도

떠올렸었어 그 사람을


널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상처 입은 날들이 더 많아

모두가 즐거운 한 때에도

나는 늘 그곳에 없어


정말 미안한 일을 한걸까

나쁘진 않았었지만

친구인 채였다면 오히려

즐거웠을 것만 같아


하지만 미안해 네 넓은 가슴에 묻혀

다른 누구를 생각했었어

미안해 너의 손을 잡고 걸을 때에도

떠올랐었어 그 사람이


하지만 미안해 네 넓은 가슴에 묻혀

다른 누구를 생각했었어

미안해 너의 손을 잡고 걸을 때에도

떠올랐었어 그 사람이


델리스파이스: 고백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을 들으면 그만 내 고정관념에 반성하게 된다. 그만큼 ‘고백’은 내 뒤통수를 톡톡 쳐준 가사를 싣고 있다. 나의 게으른 고정관념은 “하지만 미안해 네 넓은 가슴에 묻혀”라는 부분을 들으면서 그만 균열하기 시작한다. 왜 나는 (남자의 목소리로 노래한다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미안해 너를 내 가슴에 안고서도” 그녀를 생각했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까? 그러다 보니 그만 한 178센티미터의 남성이 165쯤 되는 여자아이를 꼭 안고 있는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가사를 자세히 들어보니 “하지만 미안해 네 넓은 가슴에 묻혀”라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165센티미터의 여자아이는 앨리스처럼 천천히 쑥 크더니 하이힐을 신으면 2미터를 훌쩍 넘는 192센티미터의 김연경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적어도 신체물리학적으로 178센티미터의 남자가 김연경에게 폭 안길 수 있다.


어쩌면 “중2때까진 늘 첫째 줄에” 앉아있던 학생이 “겨우 160이 됐을 무렵”부터 키 안 크는 짓만 골라해서, 예를 들어, 멸치 등 칼슘 제품은 절대 안 먹고 우유도 마시지 않고 콜라는 처들이마시면서 농구도 안 하고 심지어 헬스만 했던 것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만 키가 크질 않았다면 여자가 꼭 김연경 스타일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냥 스튜어디스쯤 되어도 가능한 것인데, 그러면 남자는 여자보다 키가 작은 것이 싫어서 그만 트릭을 쓰려 하고, 결국 신발 속에 비장의 무기로 3단 높이 발꿈치뼈를 탈착식으로 특수제작하여 장착할 수도 있겠다.

물론 그들도 방심을 할 때가 있어 신발을 벗고 식당에 들어갔다가 자칫 술을 마시고 찌리리 신호가 와서 여자의 넓은 가슴에 안길 수도 있었겠다. 그때 다른 여자를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

결국 고정관념대로 남자가 커야 한다는 상상을 하다 보니 혼선을 빚었던 것을 델리스파이스는 넌지시 지적하며 고정관념에 균열을 가하고 있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또 남자는 어쩐지 170~180센티미터대이거나 가장 보기 좋은 183센티미터쯤 되는 훤칠한 남자를 상상하게 되는 것은,


드라마 탓이기도 하거니와, 아무래도 여자는 예쁜 여자라면, 남자는 키 큰 남자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미처 중2때 160센티미터를 간신히 넘긴 친구가 설마 계속 160센티미터대에 머무르기 위하여 멸치 등의 칼슘 제품을 비롯하여 우유도 안 마시고 콜라를 처들이 붓는데다가 농구도 안 하는 놈이 헬스를 해서 가슴 근육을 키워 성장을 방해했다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상상을 차마 해내질 못했던 것이다! 아, 아직도 믿기 어렵다는 표현이나 쓰는 나의 얄팍한 상상력이여! 나의 견고한 고정관념이여! 슬픈 고루함이여!

이렇게 델리스파이스는 서정적 발라드 넘버로서 ‘고백’을 들이밀지만 사실은 아주 부드럽게 현실에 총구를 들이민 펑크를 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이 노래야말로 개세끼 시팔 조카치라고 욕을 가사로 쓰는 것보다 더 위압적인 힘이 느껴지지 않는가? 안 느껴지나? 뭐 아님 말고.



그런데 그거 아는가?

여기서 나는 문득 섬뜩함을 느꼈다. 일종의 식스센스라고나 할까?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다!")


생각해보라!

왜 곡 중 화자가 남자라고만 생각하는가? 남자가 불렀기 때문에 그랬을까? 만일 위 곡을 무리수를 두어가며 여러 균열을 내는 처치곤란 시끌벅적 펑크로만 봐야 하는 것일까? 그것을 노리며 우리의 시선을 분산시킨 것은 아닐까?

나는 이 노래의 일침에 감동하며 나의 한심한 고정관념을 자책하였으나, 만일 곡 중 화자가 여자라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중2 때 160센티미터에 이르는 여자아이라면 그리 작은 키도 아니고, 꽤 인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알맞은 키에 단정한 어떤 여학생을 상상해보라. 그러다 보면 동네 인기 촘 있는 날라리 선배와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 그 당시쯤 되면 원래 예쁜 여자아이들을 가만 내비두는 남자들이 드물다. 동네에서 좀 논다 싶으면 하나같이 동네 퀸카에게 집적대기 마련인데, 아, 여자의 입장에서도 가만 보니 꼭 넓은 가슴을 지닌 우리 오빠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낭군은 아니라는 씁쓸하면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현실을 본능적으로 깨닫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옆집의 옆집 삼돌이 친구인 두 블록 너머의 남고를 다니는 농구 잘 하는 오빠가 마음에 드는 것인데, 또 가만 보니 교회에서 마주치던 그 오빠가 자기만 보면 '헤벌레'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160센티미터 대의 여학생은 자기 오빠의 넓은 가슴에 안겨서도 가끔은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옆집의 옆집 삼돌이 친구인 두 블록 너머의 남고를 다니는 농구 잘 하는 오빠’ 생각도 하고 만다. 원래 그때쯤이면 다 그러고 산다.

그런데 그것을 남자가 불러서 우리를 감쪽같이 속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실로 웰메이드 서스펜스 공포 스릴러 반전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또 이거 아는가?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은 서정적인 퀴어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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