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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Mar 20. 2024

직장인 창작: 미니픽션과 에피소드

일기

[목차: 바깥의 글쓰기]

♬ 인용글 활용: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 탁월한 편집: '국화와 칼'과 교양서적

♬ 인용: 교양서 저술 때 유의 사항

♬ 재즈문화사: 교양서 주제 선택 때 유의 사항

♬ 목차 타이핑: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 인용 표기법: 교양서 집필 때 유의 사항

♬ 지식놀이: 편집인용과 그 사례

♬ 놀이글: 혼융인융과 코멘터리

♬ 르포 일기 수집: 교양서를 쓸 시간이 없다면

♬ 미디어비평: 코멘터리의 종류

♬ 트위터에서 보았던 기법 두 가지

♬ SF: 전자책과 링크 기법 

♬ 직장인 창작: 미니픽션과 에피소드

♬ 미니픽션

♬ 에세이, 글쓰기의 멀티플레이어

♬ 상호텍스트성: 링크가 너무 많다는 건

♬ 1인칭 문학: 픽션에세이와 사소설

♬ 매드무비와 팬뮤직: 매쉬업과 리믹스

♬ 성경의 글쓰기 방식 





♬ 직장인 창작: 미니픽션과 에피소드

판사라든지 PD라든지 빡빡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장편소설을 척척 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 자체로 이미 천재적이라고 생각한다. 보통은 집에 오면 에너지가 방전되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애초에 시간도 짧지만, 머리가 숫자를 지우고 글쓰기 모드로 돌아오는 데에도 예열 시간이 필요하기 떄문이다. 그만큼 연속적인 서사를 지구력을 지니고 오랫동안 작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기혼자라면 더더욱 자기만의 취미 시간을 내기가 만만치 않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도 글을 쓰고 싶다면, 짧은 분량을 쓰는 것이 낫다. 이럴 때라면 미니픽션과 에피소드 등을 생각해 볼 만하다. 만일 직장을 지니고 짧은 시간만을 글쓰기 시간으로 확보할 수 있는 경우라면, 아무래도 짧은 분량의 글을 파편적으로 쓰는 것이 가장 좋다. 

시 역시 그런 면에서 적합하다. 다만 시에서 그 날카로운 인식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많은 양의 작품을 균질적으로 생산하려면, 역시 잡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으로서는 만만치 않다. 어쩌다 한두 권쯤은 그럴 수 있어도, 아무래도 다음 시집을 내려면 기간이 길어지기 마련이다. 또 그동안 읽었던 독서량을 갱신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점점 경영 에세이의 발상만 떠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쓰고 싶다고 해서, 마음 가는 대로 시를 쓰면 좋은 시가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을까? 사실 운문적 기질은 산문적 기질과 다른 듯하다. 내 경우엔 시가 맞질 않았다. 그냥 잘 안 나왔다. 시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질 않는다고 하는데, 뭐 그게 정말인지 배워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만큼 산문과는 다른 면이 있다. 

그래도 순간적으로 한 작품을 창작할 때는 아무래도 중장편소설보다는 낫다. 창작의 고통이야 단순히 길이로 따지긴 어려울 수 있겠으나, 그래도 그 분량의 압박 자체를 온전히 외면하긴 어렵다. 잠깐 동안 예전의 예술적 야성을 회복할 수는 있어도, 분량이 길다면, 결국 다음 날 출근해야 한다. 계속 흐름이 끊긴다. 그래서 어떤 분은 밤을 새우고 장편을 쓰다가, 아침에 출근하는데, 그만, 그 흐름을 끊고 싶지 않아서 차를 돌려 집으로 가서는 병가를 쓰고 작품을 마저 썼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제가 아는 사람이 그랬으니. 전설은 아니다.)     


그렇다면 꼭지글이 여럿이 에세이, 칼럼은 어떨까? 그것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또 없을까? 소설적 상상을 적용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 미니픽션은 어떨까? 요즘엔 핵편소설, 엽편소설, 손바닥소설, (손바닥 ‘장’자를 써서) 장편소설이라고들 한다. 

미니픽션은 남미에서 유행하던 장르로, 메모라고도 할 수 있는데, 본격적인 장편소설을 쓰기 전에 문체 등 여러 톤을 조율하기 위해 활용하기도 했다. 보르헤스가 메모인지 픽션인지 알 수 없게 써놓았으며, 단편인지 핵편인지 모르게 써놓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많은 남미의 유명 소설가들이 활용하곤 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장르지만, 최근엔 성석제 등 여러 소설가가 이 장르에 대해 조심스럽게 탐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단편까지만 해도 어떤 아주 간결한 최소 단위의 서사를 압축해놓았다면, 쇼트쇼트스토리라고도 할 수 있을 미니픽션에 이르면, 서사 단위가 이야기 단위, 에피소드 단위로 압축된다.  

   

시가 어떤 삶의 본질을 돌파하여 드러낸다고 하면, 미니픽션에서는 그 본질이 은연중에 반영되는 짤막한 토막 하나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한다. 반드시 전면적이고 본질적이지 않아도 되지만, 또 대표적 사례라고 하지 않아도 되지만, 무언가 시보다는 표면적이면서도, 은연중 그걸 곱씹을 여운을 주는 짤막한 일화, 이런 게 미니픽션의 진수가 아닐까 한다. 다만, 삶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미니픽션이라면 훌륭한 시와 구별되기 어려운 교집합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에피소드는 이런 미니픽션적 요소와 본질적으론 거의 같지만, 미니픽션이 꼭 에피소드로 그 장르적 가능성을 가두지 않고, 하나의 선택지로 에피소드를 창작한다는 점에서 조금 다른 면도 있다. 아무래도 에피소드는 실제로 있는 것을 정리하는 차원일 때가 많다. 이왕이면 촌철살인의 에피소드로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에피소드가 잘 떠오르지 않거나, 충분히 발견되지는 않는다. 성경과 하나님의 뜻이 잘 드러나는 에피소드를 그대로 정리해서 드러내고 싶은데, 그렇게 소재와 주제를 줄이면 더더욱 촌철살인과 페이소스의 효과를 발견하기 어렵다. 뉴스 기사에서도 간혹 보이지만, 막상 찾으려 하면 생각보다 희귀하다. 평소에 우연히 발견하면 스크랩해두는 편이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자연스러운 일화일 수밖에 없는데, 미니픽션은 에피소드일 수도 있다. 만일 미니픽션으로 창작에만 매진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에피소드 구성 방식이든, 독특한 실험이 되든, ‘젖은 휴지로 벽에 콜라주하기’와 같은 방식도 괜찮다. 옴니버스 방식이라고 해야 할까? 연작 미니픽션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유사한 듯 다른 사건으로 구성된 미니픽션 모음집으로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매일 짧은 시간 작업하지만, 분명하게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 콘셉트 모음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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