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

그림 소설

by 희원이

[목차: 숙희였던 게이코와 에밀리 디킨슨]

♬ 할머니와 나

♬ 엄마에게

♬ 가보지 않은 길

♬ 아이도 내 마음 같지 않고

♬ 그래도 은생이었다

♬ 에필로그


[소개말]
- '숙희였던 게이코와 에밀리 디킨슨'은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소설입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작중 서술자인 여성 희원이는 자신의 가족에 관한 인터뷰를 한다. 다큐 감독이 전면에 나서진 않지만, 인터뷰 문체를 적용하고 있다. 감독은 주로 작중 서술자인 희원이에게 의존하지만, 할머니 등 다른 인물의 인터뷰도 담아낸다.
- 서술자인 희원이는 자신이 시인을 꿈꾸던 시절을 언급한다. 또 그때 사귀던 문우이자 선배에 관해서도 기억한다. 남편의 현실적 감각을 지니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희원이 자신도 그런 감각에 자신이 없어졌고, 카피라이터란 직업을 택하고 지금까지 평범하다고 믿는 길을 걸어왔다.





IMG_1781.PNG → 서술자 나, 희원이


가끔은 생각해요. 나도 남들이 걸어가는 길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고요. 물론 겁이야 좀 났겠죠. 아니오, 겁이 많이 났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안전한 길을 택한 거니까요. 시인이 되고자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시인이 된다고 생계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죠. 광고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남들이 이해하기 편한 방식으로 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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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라는 직업에 관심을 지니고 시작했다가 광고 기획 쪽에 흥미를 느꼈죠. 누군가 제가 기획한 광고를 기억해주는 데서 보람을 느꼈어요. 이렇게 사는 것도 잘했구나 싶어요. 큰 후회는 없어요. 어차피 시를 쓴다고 시인이 된다는 보장도 없었으니까요. ‘시를 쓰면 시인’이라는 말은 좀 공허하죠.


그래도 가끔은 시를 계속 썼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지금도 쓰면 되지 않느냐고요? 그렇죠. 그러면 되겠죠. 그런데 자꾸 모든 걸 숫자나 논리로 파악하는 훈련을 하다 보니 어느덧 시로 상상하는 법을 잊은 것 같아요. 잘 안 쓰이더라고요. 요즘엔 최근 시를 잘 챙겨 읽지도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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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를 쓰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 회사에서 농담처럼 “시집가라”고 할 때마다 불쾌할 때가 있는데, 늘 그렇듯이 웃어넘겼죠. 그럴 때면 종종 예술가의 삶을 부러워졌고요. 하기야 그건 예술가의 삶을 동경했다기보단 독립적인 삶을 원했던 것이죠.

만일 제가 정말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있던 거라면, 지금의 남편이 그런 사람이었는지 가끔은 생각해요. 그래도 좋은 사람이에요. 그 정도면요.


그 정도면 좋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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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문학의 길을 걸으려고 했던 선배와는 다른 이유로 헤어졌지요. 사람 일이라는 게 꼭 생각했던 대로만 되는 건 아니니까요. 경제적인 문제요?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죠. 누구든 돈을 벌어야 하고, 모두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소소한 일로도 싸움을 했던 것일지도 모르죠. 그는 똑똑했고, 자신의 일에 대해 명확한 투쟁심이 있었지만, 조금 무책임한 면도 있었어요. 혼자서 벌라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경진수, 그 자식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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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충동적인 모습이 엄마에겐 늘 불안하게 보였나 봐요.

그에 비해 남편은 책임감이 강한 편이죠. 어쩌면 그냥 으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겠지만요. 전형적인 한국 남자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행복했다는 건 아니에요. 불행한 것도 아니었고요. ‘그 정도면 괜찮다.’ 그래요, 그게 가장 정확한 말일 거예요. 그 이도, 저도 서로에게 그 정도면 성실했다고 생각해요.


연애 시절의 선배와는 모든 게 결이 달랐죠. 가끔은 그때의 기억을 드문드문 떠올렸는데, 이젠 그마저도 흐릿해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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