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소설
[목차: 숙희였던 게이코와 에밀리 디킨슨]
♬ 할머니와 나
♬ 엄마에게
♬ 가보지 않은 길
♬ 아이도 내 마음 같지 않고
♬ 그래도 은생이었다
♬ 에필로그
[소개말]
- '숙희였던 게이코와 에밀리 디킨슨'은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소설입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작중 서술자인 여성 희원이는 자신의 가족에 관한 인터뷰를 한다. 다큐 감독이 전면에 나서진 않지만, 인터뷰 문체를 적용하고 있다. 감독은 주로 작중 서술자인 희원이에게 의존하지만, 할머니 등 다른 인물의 인터뷰도 담아낸다.
- 작중 화자 희원이는 자신의 엄마 큰진희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자신이 기억하는 옛날을 언급한다. 이사를 많이 다녀야 했던 상황, 군인이었던 아버지, 직장을 다녔던 엄마, 그리고 할머니에 관한 단편적 기억. 결혼 생활을 하면서 시댁을 경험하고 나니,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할 것도 같다.
♬ 엄마에게
가끔씩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엄마는 우리를 키우면서 어떻게 일도 했는지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 그럴 수 있었다는 게 대단해. 하기야 그때는 엄마가 우리에게 집중하길 바라기도 했어. 내가 어렸지.
지금 이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중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엄마를 응원할 것 같은데 말이야. 엄마는 그때 커리어우먼으로, 보통의 주부들과는 다른 생활을 했지.
아빠가 군인이라 그랬나. 당시엔 엄마가 직업을 가졌다는 게 흔하진 않았지. 보통은 주부여야, 군인들의 잦은 전근에도 이사 준비를 수월히 할 수 있었으니까. 자녀를 서울에서 공부시켜야 할 때가 아니라면, 아무래도 전국으로 유랑하듯 함께 다니는 게 좋았지.
초등학교 때는 한 학년에만 세 군데나 학교를 다녔던 게 기억난다는 친구도 있으니. 그런 것에 비하면 난 계속 서울에 있었지. 엄마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엄마와 내가 할아버지 집에 산 덕분에 아빠는 안심하고 전국을 유랑하듯 다녔지.
며느리가 직업을 가지면 당시엔 고부갈등도 많다는 것 같은데, 우리 집은 그러지 않았잖아. 할아버지는 불만을 드러내는 분도 아니셨고, 할머니는 도통 속을 모르겠지만, 내심 개의치 않는 것 같았어. 그렇다고 집안일을 방치하는 것도 좋아하지는 않으셨어.
할머니도 바깥일을 놓지 않으시면서 세 주던 상가를 살피고, 항상 조용하셨지만 당신의 일에 흐트러짐이 없었거든.
그건 엄마에게 상당한 압박감을 주었을 것 같아. 아무 말씀 안 하셔도 말씀 하시는 것 같잖아. ‘너는 지금 뭐 하고 있니?’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친해지는 것 쉽지 않아. 물론 할머니는 보통의 시어머니와는 달리 자기 일을 조용히 처리하는 스타일이고, 딱히 엄마를 닦달하지 않으셨지만 말이야.
“차라리 속 시원히 말씀을 하시지.”
내가 언젠가 엄마에게 “나도 저런 시어머니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했을 때 의아한 듯 쳐다본 뒤 별 말씀 하지 않으셨지. 그때 난 내가 아는 세상이 다른 사람이 보기엔 다를 수 있다는 걸 조금은 느꼈어. 수없이 많은 순간에 그런 걸 배웠을 텐데 이상하게 딱 그 장면의 엄마 표정이 잊히질 않았어.
내가 중학교 때 아빠가 불의의 사고로 죽고, 엄마가 그 집에서 나와 살기로 했을 때 이사를 하면서도 난 몰랐지. 그 뒤로도 자주 왕래할 줄 알았거든. 잠깐 미국으로 떠나기는 했어도, 고등학교 전에는 돌아올 줄 알았어. 고2 때 귀국했을 때에는 잠깐 인사를 드린 것 외에는 명절 때도 빠졌잖아.
특례 전형으로 입학을 준비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를 댔는데, 사실 같은 서울에 살면서 명절 때는 볼 수도 있었지만, 엄마는 혼자 할머니댁에 다녀오곤 했지. 나로서도 굳이 가지 않아도 될 핑계가 있는 것이니, 굳이 마다하지 않았어. 시끌벅적한 대가족 분위기가 어수선했잖아. 무슨 대학에 갈 거냐는 질문도 받아야 했고. 모든 게 불확실했고 불안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어렸을 때 기억이지만 당시 할머니도 편해 보이진 않았다는 거야. 엄마와는 또 다른 이유였던 것 같아. 엄마는 친척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했겠는데, 할머니라면 보통 집안의 큰어른이라 편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았나 봐.
처음엔 손주들과 놀아주다가 찬찬히 등을 돌리고는 방에 들어가 주무시곤 하였지. 그땐 조용하신 분으로만 여겼는데, 어쩌면 며느리가 있으니, 일을 놓고 쉬고 싶었던 거겠지.
하지만 결국엔 가장 많은 일을 조용히 해놓고 늦은 오전에 이르러서야 낮잠을 주무시곤 했어. 오후에는 가게를 들러 본다며 나가곤 하셨거든.
명절에는 어색한 순간이 잠깐이라도 있기 마련이라는데, 그때는 몰랐어. 아이로선 명절은 괜찮은 기억이었으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사실 명절은 무상 노동의 연장근무 기간인 거잖아. 서로에게 감정노동도 상당한 수준이고. 이렇게 말하면 시어머니께서 무척 서운하실 거야. 분명 나름대로 노력하시는 게 내 눈에도 보이거든. 아마 내가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해보였나 봐.
그렇게 명절이 지나고 나면 다시 만날 때까지 기간이 있어서 다시 어색해지거든. 가끔 안부 인사 할 때도 할 말을 되뇌어보고 마음을 가다듬은 다음에 전화를 하게 돼.
그런데 남편에게 명절은 나완 다른 의미를 띠는 것 같아. 자기 말로는 불편하다고 하는데, 불편한 사람이 낮에 늘어지게 낮잠을 자기는 어렵지. 막걸리를 마시고, TV를 보다가 그대로 누워 잘 수 있다니 말이야. 그런 게 연휴요, 휴일이지.
“명절? 나도 힘들지. 엄마에게 치이고, 아내에게 치이고. 그런데 아내는 나만 만날 편하다는 거야. 그게 말이 돼?”
하기야 남편은 집에 있을 때도 휴일에 그래. 간혹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도와줄까?”라고 말하는데 왜 이렇게 빈정 상하는지 모르겠어. 얄미워서 꼬집어 주고 싶다가도 피식 웃고 말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좋게 지내야지 싶다가도 말이야, 좀 짜증이 나기도 해.
엄마도 그랬을까? 아마도 그랬겠지.
[엄마, 큰진희]
“말도 마라. 네 아빠는 더했어. 집안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