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내 마음 같지 않고

그림 소설

by 희원이

[목차: 숙희였던 게이코와 에밀리 디킨슨]

♬ 할머니와 나

♬ 엄마에게

♬ 가보지 않은 길

♬ 아이도 내 마음 같지 않고

♬ 그래도 은생이었다

♬ 에필로그


[소개말]
- '숙희였던 게이코와 에밀리 디킨슨'은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소설입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작중 서술자인 여성 희원이는 자신의 가족에 관한 인터뷰를 한다. 다큐 감독이 전면에 나서진 않지만, 인터뷰 문체를 적용하고 있다. 감독은 주로 작중 서술자인 희원이에게 의존하지만, 할머니 등 다른 인물의 인터뷰도 담아낸다.
- 학부모가 된 작중 화자 희원이는 그 과정의 일을 잠시 복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해선 안 되었을 일도 있었다는 점을 언급한다. 아이의 잘못에 대해 훈계할 자격이 있는지를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나 완벽할 수 없고, 그러한 불완전함을 수용하면서 결국은 조금씩 나아지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반드시 자랑할 것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조금씩 나아지려 하는 태도를 잊지 않는다면, 누구나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게 의무라는 것도.





IMG_1786.PNG → 서술자 나, 희원이


♬ 아이도 내 마음 같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려던 건 나쁘지 않았어요. 남들처럼 결혼 생활이 조금 지리멸렬한 면이 있었지만요. 그래도 아기를 처음 만났을 때, 아기가 조금씩 커가는 모습을 볼 때, 아기가 웃을 때 이상하게 기뻤어요.

물론 육아는 현실이지만요. 매일 전투를 치르는 것 같았고, 새벽에 깨야 할 때면 출근 걱정, 육아 걱정은 온전히 제몫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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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육아 도우미 아주머니를 고용한 것만으론 불안할 수밖에 없죠. CCTV를 설치해놓는다고 해도 어쩐지 귀책사유 여부를 증거로 남기려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불편했고요. 아주머니께서야 관행으로 받아들이며 이해해주셨지만, 아무래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엄마가 더 낫죠.

남편이요? 아시잖아요.


“대체 뭘 안다는 걸까요? 상당히 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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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육아휴직을 쓰려면 눈치를 봐야 하고, 무엇보다 남편은 평소에도 새벽에 잠을 깨지 못해요. 그냥 가끔 외출할 때나 내가 시키는 것만 할 뿐이었죠. 독박육아라는 말이 제게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정말 화나는 건, 자기가 충분히 뭘 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정말 짜증이 치밀고 아기만 맡겨두고 휴가를 떠나고 싶어지죠. 아마 하루도 못 견디고 제게 전화해댔을 걸요.


“어쩐지 인생을 잘 못 산 느낌이 드네요. 아내에게 섭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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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요? 이제 다 컸죠. 제가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는 않았지만요. (웃음) 아이만큼은 어쩌지 못했죠. 그건 아이의 삶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도 있었어요. 기껏해야 내 아이가 그런 한심한 헛소문과 악플로 남을 괴롭히고 다닐 줄은 몰랐죠. 누구나 한번쯤은 사람들을 괴롭힌다는데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지 솔직히 좀 절망스러웠답니다.


“나만 잘못 했냐고? 걔도 재수 없게 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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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를 돌이켜보았어요. 어째서 아이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저 자신이 한심했지요. 남편은 또 저를 탓했고요. 늘 그랬어요. 귀찮은 일에는 발을 빼고 있다가, 난처해지면 저를 탓했지요. 아이를 어떻게 타이를지는 생각지 않고, 그런 일이 바깥에 알려지면 망신살이 뻗친다고 여겼으니, 아이가 그런 모습을 보고 뭘 배우겠어요?


하지만 사실 그건 크게 벌일 일은 아니긴 했어요. 어차피 온라인상의 일이었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도 받았죠. 게임을 하면서 또 무슨 욕을 하고, 사이버불링으로 누군가를 괴롭히지는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문득 저 자신은 제대로 살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어요.

내가 없는 것 같고, 그런데 아이도 내 마음 같지 않았어요. 남은 게 무엇인가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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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타협하고 살았는데, 타협의 결과는 아름답지 않았어요. 제가 아이에게 그런 식으로 조금은 관대한 것, 아니죠, 좋은 말로 관대한 거지, 사실상 눈을 감은 것은 저 자신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일 거예요.

단순히 원하는 것을 하지 못했다는 게 아니에요. 그런 건 이제 아무래도 괜찮으니까요. 시 좀 안 썼다고 무슨 세상이 뒤집히나요?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정말 많은데 말이죠.


물 한 모금만 마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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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그런 거보다는 아이가 착실하다고 믿고, 나 스스로도 당당하지 않을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 허를 찔린 적이 있어요.

학교 어머니회에 참여할 때였어요.


무슨 동의서 같은 걸 내미는데, 누구누구 어머니들과 무슨무슨 단지 모임으로도 얽히고, 아이들 과외로도 얽히다 보니, 동의서에 사인을 안 할 수가 없었죠. 사실 그런 경우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우리 학교 근처에 장애인 특수학교가 생기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이었죠. 집값 때문이었죠.


학교에 장애인반을 설치하고 혜택을 주는 것에도 불만인 분들이 있었죠. 일일이 대면해서 설득을 하시는데, 거기다 대고 바른 말을 하지 못했어요. 싸워야 하는데, 전 그런 성격이 아니라고만 여기고 합리화를 한 것이죠. 볼펜을 들고 동의서에 서명을 하는데, 손이 자꾸만 부끄럽더군요. 내 손 같지 않았어요.


살아가면서 나 자신에게 후회스럽고 부끄러운 순간 중 하나였어요. 그분들이 잘했다면서 손을 붙잡아주는데, 손을 빼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죠.


그건 사교적인 손이요, 사무적인 손이었어요. 어쩌면 양심이 어색하여 손끝으로 흘러나오지 못할 때,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장갑으로 손을 숨긴 것 같았어요. 누군가들에게 의수가 중요한 도구지만, 제게는 의수라도 있다면 손을 숨기고 나를 위장하는 어떤 것으로 오용하고 싶었죠.


이제 정말 자랑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드니 조금 서글퍼졌어요. 난 완전히 속물이고, 생각하는 것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멍청이라고 자책했죠. 자식에게 훈계할 만한 자격은 없다는 식으로요.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만 사는 것 같았어요. 심지어 그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이제는 생각해요. 저로서도 집값이 더 중요했던 거예요. 그게 그동안의 제 모든 노력, 그 자체였으니까요.

자식이 잘 되기를 과하게 바라는 것도 그런 맥락이듯이요. 모든 것을 합리적이라 믿고 누구나 동의한다고 믿으며, 대체로 그런 공감 속에서 조금은 가볍게 보통의 고민 이외의 것은 바깥으로 밀어버렸죠. 불편했어요.


분명 결정을 뒤집을 시간이 있었음에도 잠자코 있었죠.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는지 조금 우습기도 했어요. ‘나 자신은 양심적인 고민도 한다’ 이런 것이었을까요? 그런 모순을 끌어안은 나를 자각하는 것, 그래서 조금은 다른 존재로 여기는, 뭐 그런 거요.

어쩐지 조금 느끼하잖아요. 아니라고요? 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사실 우리 모두 완벽한 존재는 아닌 것도 사실이죠. 하기야 우리 엄마 아빠를 사랑하지만 엄마 아빠가 자랑스러운 생각을 지녔던 분들은 아니었어요. 지극히 평범하고, 나쁘게 말하면 일반적 차별과 혐오를 자기도 모르게 상식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기도 했어요.


그래도 엄마는 여자로 성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는 점에서 아들만 중시하는 분은 아니었죠. 다만 이 사회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에는 열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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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어렸을 적에 늘 우등반에 속했어요. 엄마의 관리 덕분이기도 했고요. 안 그랬으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선택의 폭을 누리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고요. 저도 경쟁과 성적 지상주의에 어느 정도 동조하지만, 엄마는 정말이지 성적에 너무 집착했어요. 그리고 노숙자라든지, 좀 추레한 아저씨를 보면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죠.


[엄마, 큰진희]
“너 공부 안 하면 저 사람들처럼 돼. 그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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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렇게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여겼지만, 아무래도 입을 꾹 다물었죠. 처음에는 그냥, 경쟁과 성적지상주의적인 사고에 암묵적으로 동의했으니까요. 그런데 모순적이랄까요. 단지 엄마가 한 말이라서 괜히 거부하고 싶어서 입을 다문 것이기도 했죠.


[서술자 나, 희원이]
“지금이야 그게 나쁘다고 생각해서 그런 유의 말을 아이들에게 한 적은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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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큰진희]
“너도 내 나이 돼 봐라.”


그런 강박적 성공 열망, 어쩌면 딸을 통하여 대리만족을 느끼려던 엄마의 바람이 부담스러웠던 것을 빼면, 그래도 엄마는 제게 좋은 사람이었죠. 지금이야 그럴 일이 없고, 엄마도 예전처럼 열정이 넘치지 않아서, 무난하게 친한 편이죠. 자식을 기르면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면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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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기억은 조금 흐릿해졌지만, 군인이어서 그랬을까요? 남자답고 강단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전두환을 좋아했어요. 지나가는 말로 “전통이 문제도 많았지만 물가는 잘 잡았어”라고 말하곤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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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처음에 전통 문화, 전통 시장쯤 되는 줄 알았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죠. 나쁜 사람이란 걸 알게 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죠. 국사 시간에 슬라이드를 보면서 울분을 참지 못했었죠.

광주 진압 장면이었는데,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는지. 그 전에도 그런 일을 아예 모르진 않았지만, 막연하게만 알았죠. 조금 박한 평가를 받는 대통령 정도로 생각했었죠.

“전통이 물가는 잘…”


그런 이해 못할 사람을 좋아하는 아빠였지만, 아빠가 무자비했던 건 아니에요. 뜻밖에 눈물도 많고, 택시 기사에게 항상 잔돈을 받지 않았어요. 만 원을 내면서 6천 원이어도 만 원을 주었고, 8천 원이 나와도 만 원을 주었죠. 다들 힘들게 사는데, 조금씩 선심을 써야 한다면서요. 그런 생활습관이 붙은 사람이었는데, 전두환이 고작 물가나 잡아주었다고 좋아하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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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불가해하다고 여겼는데, 저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죠. 아이들이 이런 저를 알면 뭐라고 할까요? 모순적이고 위선적이라고 비웃을까요? 제가 아이들을 탓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될까요? 자격 미달이랍시고 책임을 방기하는 것일 수 있잖아요. 아들이 못된 짓을 하고 다니는데도, 타이르지 않는다면 말이죠. 당연히 그러면 안 되겠죠.


그냥 푸념을 늘어놓게 되네요. 그날 동의서에 사인하고 나서 하필 손이 떨렸는지 양송이 스프를 흘렸는데, 그게 너무 티가 났는지 학부모 언니들이 웃더군요.

그래요, 언니라고 불러요. 언니들이 친절하게 휴지를 건네주며 이곳저곳 살펴주기도 하였죠. 옷이라도 버렸나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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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면 할머니 생각이 나기도 했어요. 우리가 가면, 늘 이것저것 내오고 어쨌든 겉으로는 손녀와 손자 차별도 안 하셨던 우리 할머니요. 그러던 우리 할머니도 탈북자들은 성격이 거칠다고, 조선족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씀하시곤 하셨죠. 평소에는 상가 가게에서 일하는 탈북자 아주머니들에게 불편한 내색 한 번 안 하는 분이셨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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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원래 말수가 적은 편이셨죠. 도통 자기 얘기를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법이 없었죠. 그래도 작은 건물 한두 채 운영할 만큼 성공했으면 자기 자랑하기 바빠지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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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언숙희 여사의 생전 인터뷰]
“나 때는 말이야, 자랑할 것이 없었어. 자랑할 것이 있어도 자랑할 필요도 없고. 남들에게 알아 달라는 자랑이 어디 진정으로 자랑스러운 것이겠느냐 그거지? 자랑할 게 없으면 없는 대로 살고, 자랑할 게 있어도 그냥 없는 것처럼 살고. 그러면 저 사람에게도 자랑할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함부로 대하지 않고 살 테니, 자랑할 것을 너무 찾으려 하지 않는 편이 좋은 것 같아요.”

“자랑 많이 하면 어쩐지 남우세스럽고, 자랑하다 되레 망신당하면 엄청 낯 뜨겁고 그러지 않소?
나 원, 사내들이 자랑할 것이 그리 많은지. 아니면 자랑 못한 것에 한이 맺힌 건지. 자기 자랑을 시작하면 낯이 뜨겁지. 별 게 다 자랑거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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