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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Apr 20. 2024

주격 조사 ‘에서’의 관점에서 서술절 양산

주어인가 부사어인가

주격 조사로 ‘이, 가’만 있다는 말을 들었던 어린 시절,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학생이다’에서 ‘나는’이 주어인지 아닌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는’이 주격 조사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지 실로 당혹스러웠다. 이제는 그게 보조사라는 것을 알고, 보조사도 상황에 따라 주어 역할을 병행할 때가 있다고 이해한다. 그러니까 ‘내가 학생이다’와는 다른 어감을 보여주는 역할로서 ‘는’이 작동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법적으로 주어의 위치에 있다는 것도 알려주기도 한다. 

다만 보조사 ‘는’은 꼭 주어로만 병행하는 건 아니고, ‘를’을 대신하여 목적어로서도 기능한다. 또 부사어의 역할을 의미적으로 할 때가 있다(그 일을 자주는 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 다른 셈이다. 그때 ‘는’이 지닌 제한, 강조 등등 미묘한 뜻을 함께 지니게 된다.     

또한, 서술절을 안은문장의 주어에 붙을 때가 많다. “의자는 다리가 네 개다” “대한민국은 삼면이 바다다” 등으로, 주로 안은문장의 주어가 서술절의 범위를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은/는’과 같은 보조사가 흔하게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즉, “의자가 다리가 네 개다”라고 해도 되지만, “의자는 다리가 네 개다”가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런데 이처럼 서술절 안은문장의 주어와 붙은 조사가 하나 더 는다면 어떨까? 당연히 서술절이 많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고구려에서는 포경업이 출현하였다.   

  

오래 전에 공부할 때는 주격 조사로 ‘이/가’만 있다고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은/는’이 어째서 보조사인지 문법을 가혹하게 여겼고, 주격조사가 ‘이/가’뿐이라는 것을 어색하게 여겼지만, 이는 ‘은/는’이 주격조사이길 바라는 마음이었지, ‘~에서’가 주격조사로 포함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다. 

물론 그 덕분에 하나의 묘한 문장에서 주어를 판별하는 어려움은 덜 수 있기는 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부에서 오늘 경제개발 10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서 ‘정부에서(from 정부)’로 느껴졌던 영어적 습관 탓인지, 이것을 부사어로 보아야 하는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기사에는 이런 문장이 많았다.      


오늘 정부가(정부는) 경제개발 10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고 나니 ‘정부’를 의인화하는 것 같았다. 가끔은 그 정부는 누구의 정부일까, 혹시 어느 대기업 회장의 숨겨둔 정부(내연녀)일까 싶기도 하였는데, 그 내연녀(정부)가 상당히 똑똑하다는 상상 정도는 했었다. 물론 이 정도, 즉 기관일 때 이제는 의지를 지닌 능동적 주체로 보는 경향을 자연스러워졌고, 그래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주체를 그래도 ‘에서’로 붙여서 표현하며 주어인지 부사어인지 애매하게 처리할 때도 있었고, 사실 이런 시각에서는      


정부에서 (담당자가) 오늘 경제개발 10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로 해석해보기도 했다. 발표한 주체는 분명 어떤 사람이나 책임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인이라든지 정부는 법적으로 인격체와 같으므로, 그 구성 요소로서 담당자를 발표의 주체로 두는 것도 애매한 면이 있었다. 일상적으로는 문제없지만, 법적이거나 학술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이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에서’가 해결되고 ‘정부는’도 의인화라는 지점을 허용하다 보니,      

정부에서는 인적 관리가 의외로 허술하다.

정부는 인적 관리가 의외로 허술하다.     

이런 문장을 보아도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다. 대신 주격 조사 하나 더 늘어난 만큼 서술절이 더 자주 출몰하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1)부사어로 치부하거나(From 정부), 2)의인화되었기에 다른 표현으로 고쳐 쓰기를 권장할(정부는)’ 지점을 모두 주어 지점으로 허용하였으므로, 그만큼 서술절이 나올 여지도 높아진 것이다.      

고구려에서는 포경업이 출현하였다.     

이 문장 역시 포경업이 출현한 사건을 고구려로 범위를 한정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고구려에서는’의 경우 부사어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에서’가 주격조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구나 ‘는’까지 붙어서 앞으로 나온 바람에 화제어이면서 주어의 역할을 담당하는지 검토해야 한다. 당연히 “고구려(는/에서/에서는) / [포경업이 출현하였다.]”란 서술절 안은문장이다. 

만일 ‘에서’가 주격조사가 아니었다면 해석의 양상이 달랐을 것이다. 서술절을 가급적 해체하고 싶은 마음에서는 당연히 ‘포경업이 출현하였다’는 형식적 중심 문장을 수식하며 범위를 한정해주는 부사어로서 ‘고구려에서는’을 해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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