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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Apr 24. 2024

서술절은 너무 이상해! 주어인가 부사어인가

헷갈리는 서술절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     


이 문장을 보면 본문 흐름에 따라 몇 가지 성분이 생략되어 있다. 물론 생략 성분 역시 생각할거리를 많이 주지만, 일단 여기서는 서술절에 대해 생각하려는 것이 초점이다.

우선 생략된 지점을 복원해 보면,      


1)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어패류의) 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 (동결 저장법)

2)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취급자가 동결 저장법을 적용해 어패류의 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      


1차적으로 생략된 지점을 살리고 2)에서 다시금 모든 요소를 복원해서 정리해 보았다. 그러고 문장을 보니, 언뜻 서술절 같기도 하고, ‘그냥 취급자가 저장법을 적용하고, 선도를 유지하는’ 문장에서 ‘기간’을 부사어로 덧붙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헷갈리는 마당에 이참에 다른 문장으로 변환해 보기로 했다.      


그 1년은 우리가 연애했다.     


이런 문장에서라면 분명 ‘우리가 연애했다’가 서술절로 보인다. 우리가 연애했던 그 1년인데, 분석하면 “그 1년은 / [우리가 연애했다.]”로 볼 수 있다. 서술절로 해석하자면 ‘1년은’이 안은문장의 주어인 셈이다. 영어로 하면 ‘1년 동안’은 부사어로 볼 수 있을 텐데, 여하튼 서술절로 해석하자면 ‘1년’은 안은문장의 주어다.

그렇다면 비슷한 문장이지만, 이런 경우엔 어떨까?     


1년 동안은 우리가 연애했다.

1년 동안에 우리는 연애해서 행복했다.

1년이라는 기간은 우리가 연애했다.


이러면 갑자기 ‘동안, 기간’이 주어의 지점을 차지한다. ‘1년’은 관형어가 되는 셈이다. ‘1년인 동안, 1년인 기간’인 셈이다. 또는 ‘1년, 동안’을 문맥상 동의어 취급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1년’을 관형어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 마음 같아서는      

“그 1년은 우리가 연애한 기간이다.”     

으로 교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다. 때로는 이게 딱딱한 느낌을 주어서 어색할 지점도 있겠지만 보통 정확하게 문장을 구사할 때는 좋다. 이러면 꽉 맞물리는 느낌이 생기고, ‘1년’은 ‘기간이다’와, ‘우리’는 ‘연애하다’와 세트를 이루기 때문이다. 주어와 서술어 숫자가 안 맞는 바람에 발생할 수 있을 오독의 여지가 줄어든다.   

여기서 더 나아가 보자. 주격조사 ‘에서’라면 어떨까? 개인적으로는 더 헷갈린다.     


그 식당에서 우리는 밥을 먹었다.    

  

‘정부에서 인력 관리가 허술하다’와 같은 맥락의 구조다. 그런데 다른 점도 보인다. 도치해 보자.

‘인력 관리가 정부에서 허술하다’ 뭔가 어색하게 느낄 수도 있다.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도 있지만.

반면 ‘우리는 그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라고 해도 굉장히 자연스럽다. 이런 경우라면 마치 세 자리 서술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에서 ~을 먹었다’로 느껴질 정도다(물론 문법적으로는 ‘~를 먹었다’로 두 자리 서술어로도 완성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이때 ‘그 식당에서’는 부사어일까, 주어일까. 솔직히 개인적으로도 헷갈린다.

차라리     


그 식당은 (우리가 밥을 먹었던) 곳이다.     


이러면 구조적으로 명확해진다.       


그 식당에서 이 메뉴를 개발했다.     


라는 사례에서는 ‘식당에서’가 확고하게 주어로 보이는데, 이 역시 “그 식당에서 (관련 담당자가) 그 메뉴를 개발했다”로 보면 구조적으로 명확해진다. 물론 “정부에서 10개년 계획을 발표했다”라고 할 때 담당자가 발표했지만 법인이나 기관의 법인격체적인 면을 부각한다는 당위성도 있었지만, 그런 점 때문에 ‘~에서’를 주격조사로 인정하는 바람에 한층 더 서술절이 양산되는 듯하다. 좋은 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개인적으로는 서술절의 물컹한 느낌으로 더 애매한 문장이 많아지는 것처럼 느낀다.       

즉 못맞춤법 놀이의 관점으로 보면, 우선 서술절은 안은문장의 큰 주어를 모두 가급적 부사어로 보면 어떨까 싶었다. ‘1년은, 정도는, 기간은, 동안은, 식당에서’ 등등은 모두 부사어 역할을 하고 이때 주격조사 역할을 하는 보조사 ‘은/는’은 범위를 한정해주는 의미를 부여하는 셈이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더 말하겠지만, 주격조사인 ‘~에서, ~가’ 역시 보조사처럼 강조나 범위를 찍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또 다른 못맞춤법 놀이로 보자면, 서술절을 안은문장에는 서술어보다 주어가 많다. 전에는 형식적(문법적) 주어, 의미적 주어로 표현했는데, 이번에는 표현을 달리해서, 중심적 위상의 주어 지점과 주변적 위상의 주어 지점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취급자가 동결 저장법을 적용해 어패류의 선도를 유지할 수 있다.
- 그 1년은 우리가 연애했다.
- 1년 동안은 우리가 연애했다.
- 그 식당에서 우리는 밥을 먹었다.      


이런 사례에서 해석이 다를 수도 있지만, 대체로 중심적 위상의 주어 지점을 짚으면 ‘취급자가, 우리가, 우리는‘일 것이다. 주변적 위상을 지닌 주어 지점으로는 ’정도는, 1년은, 동안은, 식당에서‘가 있겠다.


다만, 중심적 위상의 주어 지점이 반드시 안긴문장의 주어가 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의자는 다리가 네 개다’일 때 ‘의자’가 중심적 위상을 지니고 있으며 ‘다리’가 주변적인 위상을 지닌 것 같은데, 이 경우에는 안긴문장의 주어가 ‘다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략적으로 보면 서술절인지 아닌지, ‘안은문장의 주어인지 전체 문장의 부사어인지’ 특별히 헷갈리는 문장을 보면 대개 중심적 위상의 주어 지점이 서술절 안에 있을 확률이 높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서술절을 되도록 받아들이지 않고 가급적 서술절을 안은문장의 주어(의자 등등)을 부사어로 보는 접근을 선호한다는 의미다.

어쩔 수 없이 서술절이 우리말에 필요해서 그 해석법을 온전히 제외하기 어렵다면, 서술절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한을 가하는 정도는 해주었으면 싶다. 최소한 ’~에서‘는 주격조사에서 제외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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