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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un 02. 2024

'비밀번호가 기억나다' 이게 대체 뭐지?

서술절 혼동

나는 비밀번호가 기억났다.        


이 문장은 서술절은 안은 것일까? 서술절로 보자면, 언뜻 ‘나는’이 ‘비밀번호가 기억났다’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그렇게 설명할 것이다. 이때 ‘기억나다’는 자동사이자 능동형으로 비밀번호가 누군가에게 기억나는 것을 서술한다.  

그런데 이러고 보면 조금 어색해진다. ‘기억나다’에서는 이미 누군가 주체를 상정한다. ‘비밀번호를 기억할’ 주체가 반드시 ‘기억나다’에 내포된 것처럼 보인다.

즉, ‘나는 ~ 기억나다’를 주술호응 관계로 보는 게 더 합당해 보인다. 그런 해석이 맞다고 본다면, 대체 ‘비밀번호’는 무엇인지 헷갈렸다. 갑자기 내 문법 실력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고 만다. 목적어도 아니고 형용사 부사도 아니고, 음, 그렇다면 보어밖에 없기는 했다. 보어라 하면 이런 예시 문장이 떠오른다.     

 

나는 학생이 되었다.
나는 학생이 아니다.     


‘나는 ~ 되었다’ ‘나는 ~ 아니다’ 모두 주술 호응이 자연스럽고, 거기에 다양한 보어를 삽입할 수 있다. ‘학생이’ 말고도 ‘슈퍼히어로가’를 넣을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보어를 넣어야 문장의 의미가 온전히 완성된다는 점에서 ‘학생이 되었다’는 두 자리 서술어인 셈이다. 주체가 무엇이 되든지 무엇이 아닌지 반드시 밝혀야 문장이 온전해진다.

이 관점에서 보면 ‘나는 비밀번호가 기억났다’도 그런 것 아닐까? 보통 보어를 말할 때 서술어 쪽에 ‘되다, 아니다’만 서술어로 들기 때문에 조금 망설이기는 했다. (그래서 문법 실력이 온전치 않은 채 그냥 그 수준에서 나름대로 이해해보려 한다는 점을 언급해야겠다.)     


어쨌든 ‘나는 ~ 기억나다’라고 하면 주술 호응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기억나다’는 기억할 주체를 필요로 하므로, 반드시 ‘나’든 누구든 나와야 한다. ‘비밀번호’가 오히려 주체가 기억한 내용인 셈이다. 어쩐지 보어 같았다. 이를 그냥 ‘나는 비밀번호를 기억했다’라고 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지만 ‘~가 기억나다’라는 표현이 있다. 그러니 이런 고민을 자주 할 수밖에 없다. 이는 ‘냄새가 나다’와는 달랐다. ‘라면이 냄새가 나다’로 해도 ‘라면이 ~ 나다’라고 주술 호응 관계를 설정하기 어렵다. 온전하게 ‘냄새가 나다’가 서술절이 된다.

그렇다면 ‘냄새가 나다’처럼 ‘기억이 나다’라고 하면 어떤 양상이 펼쳐질까?     


나는 비밀번호가 기억이 나다     


우선 이 문장을 분석해 보면     


나는 [비밀번호가 (기억이 나다)]     


적어도 ‘나는 ~ 나다(났다)’라고 했을 때 언뜻 ‘영화는 영화다’ 같은 선언인 듯 들리지만, 실제로 서술어 위치의 ‘나다’는 ‘생기다, 드러나지다’ 등의 다른 의미를 띤다. 여기서 ‘나는 생겼다, 나는 드러나졌다’라고 하면 어색해진다. 마치 ‘코끼리는 코가 길다’에서 ‘코끼리는 ~ 길다’가 이 문장의 의도를 고려할 때 온전한 주술 호응이 아닌 것과 같다.

역시 ‘비밀번호가 ~ 나다’도 주술 호응으로 적절치 않다. ‘기억이 나다’는 서술절인 셈이다. 그렇다면      


1) 비밀번호가 (기억이 나다)
2) 나는 ~ ‘기억이 나다’     


1)번 유형은 서술절은 안은 게 맞다. 그런데 2)의 경우에는 주체인 ‘나’가 ‘기억이 나다’라는 서술절을 끌어당기기는 했지만, 그 사이에 ‘비밀번호’라는 보어를 넣어야 문장이 완성된다. 이런 것도 서술절인가 싶다. (단순히 숨겨진 서술절처럼 서술절의 주어가 생략된 경우는 있어도) 문장을 완결하는 데 결정적인 보어 성분이 삽입되어야 한다면, 이건 온전한 서술절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기도... 음... 잘 모르겠다.

이런 표현을 써야 한다면 이는 그냥 못맞춤법 놀이의 관점에서 ‘기억이 나다’를 붙여서 마치 본용언+본용언 또는 본용언+보조용언의 느낌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나는 비밀번호가 기억이났다     


그런데 사실 그냥 처음부터   

   

나는 비밀번호를 기억했다
나는 비밀번호를 기억해냈다     


라고 하면 간단해질 일이다.

물론 이러면 ‘기억나다’를 회피하기만 하는 나쁜 버릇이 들기에, 어떻게든 표현의 확장을 위해서라도 나름대로 이해해 보려는 시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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