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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ul 13. 2024

학생의 수학과 학습

사동형은 너무 어려워

개인적으로 사동의 기준을 잡기 위해 애매할 때가 많다고 느낀다. 대체로 맞더라도 문법 검사기조차 어떤 때에는 ‘너도 맞고, 너도 맞다’ 식이기 때문인데 또 ‘향상시키다, 촉진시키다, 개선시키다, 용해시키다’ 등등은 안 된다면서 굳이, 굳이 고쳐준다.

어쩄든 이것이 맞는 방법인지, 못맞춤법 놀이인지 모르겠으나 대체로 이런 맥락을 따라사 사동형을 결정한 뒤 맞춤법 검사기를 돌려보곤 한다. 예를 들어     


수학이 학습하다. (어색하다)

수학을 학습시키다. (이것도 어색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까 자동사가 능동일 때 타동 형식에서 사동을 넣어보는 셈이다.      


그것이 존재하다.

그것을 존재시키다.     


이때 기본형에서 ‘~을 존재하다’가 어색하고 오로지 자동사 능동형일 때 타동 형식 전환에서 사동형을 집어넣으면 적합할 확률이 높은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     


수학이 학습되다. (피동)

수학을 학습하다. (능동)      


흔히 아는 능동 피동의 전환이다. 타동 형식(~을 OO하다)에서 능동형일 때가 많다. 영어의 수동형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이제 다음 예시를 보자.      


교사는 학생이 수학을 학습하게 했다. (O)

교사는 학생에게 수학을 학습하게 했다. (O, 의미적으로 학습을 하는 주체는 학생, 그런데 사동형에서는 누군가 누구에게 무엇을 하라 하고, 명령 받은 누구가 결국 무엇을 하기 때문에 ‘~에게’에 안긴 문장의 주어 역할을 하는 것 같은 느낌도 생긴다. 그래서 누군가는 ‘~에게’도 주격조사로 해야 한다고 하던데, 개인적으로 그럴 경우 아수라장이 된다고 본다.)          


둘 다 문법검사기로 오류 없다고 나온다. 그렇다면 다음은 어떨까?   

  

교사는 학생의 수학을 학습시켰다.

교사는 학생에게 수학을 학습시켰다.      


역시 둘 다 문법 오류가 없다고 나온다. 일단 권장 사항이라고 해야 할까.

가급적 학생이 능동의 주체라는 점을 인지한다면 주동의 형식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편이 낫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사는 학생이 수학을 학습하게 했다.     

 

이게 가장 보수적으로 무난하다.     

 

교사는 학생에게 수학을 학습하게 했다.   

   

이 정도라면 어쩔 수 없이 우회적 사동 형식에서 출몰하는 ‘~에게’로 받아들일 만하다.

그런데 사동의 습관이 많이 스며들었는지 어쨌는지 몰라도(특히 서구식 논리적 문장에 따른 것인지 몰라도), ‘~하게 했다’를 ‘~시켰다’로 간결하게 압축해버리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교사는 학생이 수학을 학습시켰다.

→ 교사는 학생의 수학을 학습시켰다.

→ 교사는 학생에게 수학을 학습시켰다.     


학생 주동의 의미를 많이 희석화하고, 교사의 사동적 의미를 강화한 셈이다. 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 어쩐지 이 경우라면 교사가 일타 강사라서 족집게 과외라도 해주었을 것 같다.

그래서 학생의 성적을 스스로 향상한 게 아니라, 사실상 교사의 힘이 강해진 것이다!     


교사는 그 학생이 수학 성적을 향상하게 했다.

→ 교사는 그 학생의 수학 성적을 향상시켰다.

→ 교사는 그 학생에게 수학 성적을 향상시켰다. (어색)

→ 교사는 그 학생에게 수학 성적을 향상시켜 주었다. (뭔가 약간 어색. 왜냐하면 ‘~하게 했다’라고 하면 돌 걸 굳이 ‘향상시켜’로 사동을 강조하더니 거기에 덧대어서 ‘주다’까지 덧붙임. 교사 사동의 권능을 강조한 것 같아 중복으로 과함.)     


어쨌든 문법 검사기에서는 ‘향상시켜’만큼은 확고하게 ‘향상해’로 고치라고 한다. 그리하여     

 

교사는 그 학생에게 수학 성적을 향상해 주었다.     

 

이렇게 된다. 그러면서 갑자기 그 학생이 자기 수학 성적을 향상하는 게 아니라, 교사가 몰래 토익 시험을 보고 와서는 990점 성적을 내밀며 학생에게 자기 실력을 믿으라고 하는 것 같다.      


교사는 수학 성적을 향상해 그 학생에게 (자기 성적표를) 주었다.     

 

물론 이건 조금 억지요, 농담이다. 대개는 ‘그 학생의 수학 성적’을 향상해 준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향상하다’란 자기 스스로 능력 등을 향상한다는 뜻이므로, 결국 학생이 자기 수학 성적을 향상한다는 의미다.      

교사는 학생이 수학 성적을 향상하게 했다. (O)     


그러다 보니 또 다시 언급하지만 누군가는 ‘~에게’를 주격조사로 보자고 한다. 그러면 서술절 등에서 아수라장이 되므로, 나는 결단코 반대한다.

어쨌든 이 중에 문법검사기를 돌려서 문법적 오류라고 나온 것은 ‘~를 향상시키다 → ~를 향상하다’로 고친 것뿐이다. 모두 문법적 오류는 없다고 한다.    

이쯤 되니, 사동형에서 뭔가 확실한 오류를 잡아내기 어려울 만큼 기준이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앞으로 더 많은 과학 인문학 분야 등의 발전으로 주객의 주술 관계를 더 세밀하게 잡아내는 표현 과정에서 사동의 범위가 확장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문법의 모호한 지점으로 놓기도 한다.      


어쨌든 수학을 공부했고, 성적을 향상했더라도, 복습을 하기 마련이다. 다음 시험이나 수능을 위해서라도.   

  

교사는 수학으로 학생을 복습시켰다.

교사는 수학으로 학생에게 복습시켰다.     


그러나 해이해진 학생은 진정한 응용을 하기 시작한다. 분명 기본형은 ‘~을 복습하다’이다.

여기서 목적어로는 복습의 주체가 아니라, 복습의 대상이 들어간다. 즉 ‘학생을’은 안 되고, ‘수학을’이 맞다.      

교사는 학생이 수학을 복습하게 했다. (O)

교사는 학생에게 수학을 복습하게 했다. (O)

→ 교사는 학생의 수학을 복습시켰다. (△, 어감상 사동의 의미 강조하는 미세한 느낌)

→ 교사는 학생에게 수학을 복습시켰다. (△, 어감상 사동의 의미 강조하는 미세한 느낌)

→ 교사는 수학으로 학생을 복습시켰다. (?)

→ 교사는 수학으로 학생에게 복습시켰다. (?)


갑자기 수학이 부사어로 빠지고 학생이 ‘학생을’이라는 복습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교사는 학생을 학습시켰다.     

생각보다 많은 문장이다. 그런데 문법검사기를 돌리면 이 역시 문법적 오류가 없다고 한다. 사동형은 자동차가 갑자기 트랜스포머 로봇로 변신하는 놀라운 마법을 부린다. 어떤 문장으로 바꾸어도 ‘향상시키다’ 정도만 걸릴 뿐이다.

그리하여 나의 머리는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사동형은 과감하게 못 고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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