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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Jul 10. 2024

사랑하다, 사랑되다, 사랑시키다

존재하지 않는 피동형 & 사동형

‘사랑하다’라는 단어는 있지만, ‘사랑되다, 사랑시키다’라는 단어는 없다. 

단어의 본 뜻에 따라 기본형으로 능동형 피동형 사동형이 모두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마비되다’의 경우 ‘마비하다’가 거의 죽었고, ‘사랑되다’는 피동형이 없다. 또 많은 경우 기본형으로 ‘촉진하다’와 달리 사동의 의미가 스미지도 않는다. 또 ‘~시키다’는 기본형으로 탑재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1) 나는 너를 사랑했다. (타동, 능동. / 사동은 아니다.)
2) 너는 사랑되었다.     


1)은 쓰지만 2) 같은 표현은 없다. 2)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피동의 의미를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마련이다.      

너는 사랑 받았다.      

그런가 하면 ‘사랑하다’에는 사동의 의미도 스며 있지 않다. 

한편, ‘판매를 촉진하다’에서 ‘~을 촉진하다’는 타동의 형식인데, 그 안에 이미 판매를 변화하게 한다는 사동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촉진시키다’는 의미가 겹치니 ‘촉진하다’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한다. 

그런데 ‘사랑하다’에는 그저 주체의 마음과 그것이 향하는 대상이 있고, 그 관계 설정만이 있다. 그래서 사동의 의미는 스미지 않은 타동 형식이다. 그리고 이런 부류의 단어가 훨씬 많다. 

그렇다면 사동 형식을 위해서 ‘사랑시키다’란 표현이 있을까 보면 그런 단어는 없다. 우회적으로는 가능하다.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하게 했다.     


이건 현행 문법에서도 일견 타당하다. 주동으로서 그는 사랑하는 존재이지 누가 사랑을 시킨다고 하는 수동적 존재는 아니다. 그래서 자기 관련 서술어를 능동형으로 쓴다. 그리고 이것에 사동을 첨가하여 우회적으로 ‘~하게 하다’라고 표현하면 된다. 사실 이건 AI 지점에 오면 AI가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수집한 것이냐 그걸 명령하는 자, 프로그램 한 자가 그렇게 하도록 사동적으로 부린 것이냐 하는 데까지 오면 애매해지지만, 어쨌든 위의 예시에는 큰 문제가 없다. 

다만,     


아이돌은 내가 (아이돌을) 사랑하게 했다.     


라고 해보자. 

갑자기 사동의 의미가 모호해진다. 아이돌이 가스라이팅을 해서 내가 그 아이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든 것일까? 이쯤 되면 ‘~시키다’로 해야 한다. 그런데 보통은 그 아이돌을 보자마자 내가 그 아이돌을 짝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그 아이돌에게 사동의 의미를 우회적으로 걸었다고 할 수는 없다. 어쩌면 사실은 운명이 그렇게 나를 사동적으로 얽어매서 아이돌을 짝사랑하게 한 것이다.      

아이돌은 내가 아이돌을 사랑하게 유혹했다.     

이렇게 ‘했다’를 조금 더 명확한 단어로 대체한다면 그 우회적 사동의 의미는 선명해진다. 그 내용의 진실성과는 관계없이 일단 형식적으로는 명료하다. 아이돌이 유혹하지 않았다면서 전면 부인하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다.

주변 팬들도 강경하게 반박할 것이다.     


아이돌은 내가 아이돌을 사랑하게 존재했다. 

    

그는 그저 존재했을 뿐이라고.

물론 대개는 중의성이 발생하지 않기도 해서 이렇게 쓸 수 있겠지만, 그러다 보면 슬슬      

아이돌은 내가 (아이돌을) 사랑하게 했다.     

이 문장을 버릇처럼, 그냥     


아이돌은 내가 아이돌을 사랑시켰다.     


라고 바꿀 수도 있다. ‘사랑시키다’에서는 이런 경우가 안 생기겠지만, 많은 단어는 ‘~하게 했다’를 은근슬쩍 사동을 강조하기 위해 ‘~시키다’로 고치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는 그 학생이 수학을 복습하게 했다. 
나는 그 학생에게 수학을 복습시켰다.     


그런데      

아이돌은 내가 아이돌을 사랑시켰다.

이 예시에서는 점점 사랑의 사동 주체와 사랑의 대상이 흐릿해진다. 일단 문장을 쪼개보자.    

 

아이돌은 / 내가 아이돌을 사랑시켰다.     


‘사랑하게 했다’라고 하면 사랑하는 주체는 ‘나’이고 ‘했다’의 주어는 문장 앞 ‘아이돌’이 된다. 그런데 이 ‘사랑시켰다’가 중첩되면서 어쩔 수 없이 ‘아이돌’과 ‘내가’의 술부 지점이 ‘사랑시키다’가 된다. 

그러고 나니   

   

아이돌은 / 내가 아이돌을 사랑시켰다.     


어쩐지 ‘나’라는 사람이 아이돌에게 사랑하도록 독려했고, 그렇게 여자 아이돌이 사랑을 깨달아 남자 아이돌과 사랑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아니면 아이돌이 로봇처럼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인데, 어감으로만 보면 새로운 남자 아이돌이라도 섭외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앞의 주어가 살아나면, (서술절은 안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마치) 서술절 안은 것처럼 된다.     


아이돌은 / 내가 아이돌을 사랑시켰다.     


이 문장대로라면, 나는 누명을 쓴다. 

그 아이돌은 내가 그 아이돌이 남자 아이돌을 사랑하게끔 조종하는 것을 이미 다 예측하고 내가 그렇게 해당 아이돌을 조종한다고 착각하게끔 해서는, 자기가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려고 숙소바깥으로 뛰쳐 나간 게 아니라, 자신은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일개 팬인 내가 그녀를 심리적으로 조종해서는 그녀가 차은우를 사랑하게 된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지만, 실은 모두 해당 아이돌이 나를 조종하여 자신이 차은우를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라는... 


이리하여 ‘사랑시키다’는 폐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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