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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이 Sep 24. 2024

오래된 신발과 시간의 부채

원피스 & 콜라주 with ChatGPT-30%

※ 세부 구상안을 토대로 ChatGPT를 활용하여 연출하였습니다.  
[원피스]바닥엔 물이 고여 있었다
[원피스]빈센트, 가여운 빈센트 
[원피스]장맛비가 내리는 날엔 빈센트가 달려왔다
[원피스]시간의 부채
[원피스]아빠, 신발 신어봐도 돼?
[원피스]빈센트의 파인애플
[원피스]신발자국
[원피스]시장표 신발





 #1. 오래된 신발

바닥엔 물이 고여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온 남자는 물이 튀는 것에 개의치 않고 군화를 벗었다. 물이 고여 있는 바닥은 그동안 신발에 묻은 진흙과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신발이 젖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선명하게 들렸다. 신발을 벗으며 그는 자주 되새겼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빈센트...”

현관의 벽에 새겨진 빈센트라는 글씨는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그 아들이 여기저기 이름을 써놓고 자랑스러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이름을 적을 줄 알게 된 빈센트는 눈이 반짝거리며 언제나 아빠를 기다리곤 했다. 그 장면이 선명하게 그의 눈 앞에 어른거렸다.

그러나 그 행복했던 기억으로 그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지곤 했다. 아들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사라진 그날 이후, 그는 매일같이 그곳을 떠올렸다. 


그날도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속에서 손을 잡고 버스를 기다리던 빈센트. 그 작은 손이 더 이상 그의 손안에 없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그 순간을 믿을 수 없었다. 만약 그날 그 터미널로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수많은 가정이 그의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는 터미널 화장실에서 신발을 보며 그곳에 앉아 울고 있었을지도 모를 아이를 상상했다. 신발 밑에는 물인지 오줌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고여 있었다. 아버지의 신발이 그곳에서 고요히 젖어가듯, 그의 마음도 그렇게 무거워졌다. 아이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들은 장맛비가 내리는 날엔 늘 뛰어오곤 했다. 

"아빠, 다 젖었어!" 

그의 양말이 축축해져 있는 걸 보곤, 발수건을 들고 허둥지둥 달려오던 그 모습이 선명했다. 젖은 발을 수건으로 감싸주던 작은 손, 그리고 그 밝게 웃던 얼굴. 그 기억은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떠올랐다.

"아빠, 신발 신어 봐도 돼?"

아들은 늘 아빠의 신발에 관심을 보였다. 작은 발로 아빠의 큰 신발 속에 들어가려 애썼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이미 신발은 비에 젖어 무겁게 느껴졌고, 움직일 때마다 양말과 신발창 사이에서 물이 꿀렁거렸다. 마치 장마가 발아래에 고스란히 깔려 있는 듯했다. 

바닥에 고인 물을 바라보며, 그는 무심히 젖은 신발을 신어보았다. 발에 닿는 축축한 느낌은 마치 기억의 파편들이 그의 마음에 젖어드는 것만 같았다. 신발에 밟힌 흙탕물 자국은 아이가 뛰어다니던 소리처럼 그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 신발은 이제 세탁소에서 정갈하게 세탁된 채로 집에 돌아왔지만, 빈센트는 그 신발을 더 이상 신을 수 없었다. 집에 발자국을 남기며 뛰어다니던 아이의 소리는 이제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이제 그는 깨달아야 한다. 비극도, 그리움도 시간이 지나면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감당하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선택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를 뒤로 하고 삶의 무게를 감당하며 그럭저럭 살아왔다는 미안함, 아들에 대한 그의 부채감은 생겼다. 더구나 빈센트가 남긴 자국들을 더 이상 뒤쫓을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고는 어느 날 정말로 아들의 희미해진 흔적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래도 출근을 해야 했고, 일을 해야 했다. 돈을 벌지 않으면 사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묵묵히 그 자리를 떠나며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남겨진 신발자국을 닦아낸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다, 빈센트, 잊지 않으마. 잊을 수 없어서.”



#2.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시외버스터미널 화장실 바닥은 늘 지저분했다. 그 나라가 정말 잘 사는지 알려면 시외버스터미널과 버스 상태, 그리고 그 차가 지날 때의 시골 도로와 풍경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몇십 년이 흐른 지금도, 시외버스 터미널 화장실에 발을 들여놓을 때면 그때의 기시감이 떠오른다. 시골의 허름한 터미널 화장실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오래전, 빈센트를 잃어버렸던 그 시절 말이다.

그날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닥엔 물인지 오줌인지 모를 액체가 고여 있었다. 나는 젖은 신발을 끌며 터미널의 복도와 화장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발자국이 찍혔다. 비 오는 날 흙탕물을 밟고는 집으로 들어왔을 때처럼. 내 발자국은 흙탕물이 묻어 더욱 선명했다. 그 속에서 빈센트의 작은 신발이 보일까 두리번거렸지만, 그날따라 그 아이의 신발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피하려다가, 마치 그때의 내 모습이 오늘의 나를 따라다니듯 그 기억에 잠겼다.


장맛비가 내리는 날이면 빈센트가 달려와 발수건을 내게 건네주곤 했다. 젖은 양말을 벗으며 “빈센트” 하고 부르면, 아이는 작은 발소리를 내며 쿵쿵대며 달려왔다. 그 작은 손으로 내 신발끈을 풀어주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빠, 신발 신어 봐도 돼?“

라고 묻던 빈센트의 목소리, 그 말이 내 귓가에 맴도는 것만 같다. 그 작은 발이 내 커다란 신발 속으로 쏙 들어가던 순간이 문득 떠오른다.

"나중에 너도 아빠 신발처럼 큰 신발을 신게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면 빈센트는 해맑게 웃었다. 그날의 신발 자국은 지금도 내 마음속 어딘가에 찍혀 있다. 아이의 발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발자국으로만 남았다. 신발 자국. 

빈센트가 “빈센트의 파인애플”이라며 장난스럽게 이름 붙인 작은 발소리, 어째서 파인애플이라고 했는지는 모르나, 당시에 파인애플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것에 파인애플이란 이름을 붙이곤 했다. 아이는 자기 발소리에서 무엇을 들었을까?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날, 화장실 문 밑으로 보이던 사람들의 신발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끝내 빈센트의 작은 신발을 찾지 못했던 그 순간. 나는 온 터미널을 헤매었지만, 그 작은 신발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수없이 많은 '만약'을 떠올렸다. 그 터미널로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혹은 그날 비가 오지 않았다면, 혹시 빈센트는 나와 함께 있었을까? 그 모든 ‘만약’들은 결국 내게는 감당할 수 없는 시간의 부채가 되어 버렸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나를 짓누르면서, 나는 하루하루 그날을 떠올리며 살아왔다.

예전에는 신발이 젖으면 그냥 방치하다가도, 냄새가 참기 어려울 때쯤이면 세탁소에 맡기곤 했다. 세탁소에 가면 정갈하게 끈까지 묶인 신발이 비닐에 담겨 돌아왔다. 하지만 빈센트가 사라진 후로, 나는 그 신발들마저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그저 신발장에서 묵묵히 시간을 견뎠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과묵하고 낡은 신발들을 버리지 못하고, 신발장 구석에 쌓아둔 채로 그날을 잊으려 노력했지만, 신발만큼은 버리지 못했다. 

“나중에 신어야지”

라고 말했지만, 결국 그 신발들은 다시 빛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잊지 못할 기억들을 붙잡아 두었다. 어린 빈센트가 나를 보며 신발 끈을 묶어주던 기억도, 나의 발자국을 따라 쿵쿵거리며 달리던 그날의 소리도. 오늘 이 터미널에 서서, 나는 또다시 그날을 떠올린다. 이미 수없이 반복한 상상이지만, 이곳에 올 때마다 나는 빈센트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아빠, 이 신발 커서 좋아! 나도 아빠처럼 커지면 신을 수 있겠지?”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 아이의 발걸음과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너무도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 아이가 살아있다면 중년의 나이에 이르렀겠지만, 어쩐지 그러한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 기억은 없었으므로, 있어야 할 것 같은 기억이 없었으므로, 어쩌면 그런 기억을 통째로 담보 잡힌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이의 모습 그대로 기억을 잊지 못한 대신, 그만큼 흘러간 시간의 부채를 갚기 위하여.

오늘도 비가 내린다. 그날처럼.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해서는, 젖은 신발을 벗었다. 신발을 벗으며 나는 다시 한번 빈센트를 생각한다. 그때의 비, 그때의 신발, 그리고 그때의 빈센트.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자국이 찍혔다. 비 오는 날 흙탕물을 밟고는 집으로 들어왔던 그때의 길에도 찍힌 발자국처럼 빈센트의 발자국이 마음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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