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글을 쓰다 보면 가끔 너무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난다. 그 문장은 마치 반짝이는 보석처럼 빛난다. 하지만 그 반짝임이 때로는 독이 될 때가 있다. 너무 매혹적이라 그 문장을 중심으로 모든 글이 돌아가고, 정작 내가 처음 품었던 정서는 점점 희미해진다. 문장 하나가 전체 정서를 잡아먹고 만다.
특히 그 문장이 철학적이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그 순간 나는 그 문장을 호위하기 위해 덧댄 문장들을 가지런히 나열하기 시작한다.
"이 문장은 정말 좋은데, 설명이 부족하면 독자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
이런 핑계를 대며, 나는 점점 어려워지는 내용을 보완하려 애쓴다. 그러다 보면 원래의 이야기와 정서는 점점 나와 멀어진다. 글은 단단한 중심을 잃고, 이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다.
그 과정은 마치 해외이민을 떠나는 것과 같다. 분명 처음에는 옆 동네로 이사 가는 것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도 아니고 유럽으로 이민을 가는 여정이 서버린 것이다.
분명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지만, 문득 철학이라는 거대한 철퇴가 날아와 내 배를 강타한다.
“이 문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그 철퇴에 맞고 난파당한 배는 흔들리고, 나는 한없이 표류하게 된다. 파도가 몰아치는 어두운 바다 위에서, 기어이 그 문장은 존재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게 존재론적 질문이 맞나요? 어쨌든,)
"나는 왜 이 문장을 썼는가? 이 문장은 글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아니, 글은 왜 써야 하는가?"
질문은 질문을 낳고, 결국, 나는 질문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홀로 남는다. 그렇게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햄릿적으로다가 방황하기 시작한다.
이 모든 혼란은 애초에 너무 마음에 들어 버린 한 문장에서 시작되었다. 그 문장을 놓아버렸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그 문장을 처음부터 견고한 배로 만들어 바다를 항해했다면 어땠을까?
문장의 마수는 그 자체로 강렬하지만, 슈베르트의 <마왕>처럼 아이를 안고 뛰는 숲속에서 정념의 유혹이 끊임없이 그들을 위협하고... 어, 이거 슈베르트 <마왕> 내용, 맞죠?
여하튼 매혹 당하여 정신이 혼미하여서는 판단을 그르칠 수 있을 시험대에 오르고 만다.
내가 이 문장을 정말 사랑한다면, 그 문장이 나의 글 전체를 왜곡하지 않도록 단단히 중심을 잡아야 하지만, 때로는 그토록 하염없이 문장의 뒤를 좇기도 한다. 그렇게 스치고 말았어야 할, 엉뚱한 사랑은 때로 내려놓아야 할 제때에 내려놓지 못하여 운명의 장난은 가혹해지는 것이다.
만일 그 문장을 진심으로 아낀다면, 그것이 글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글의 난파를 경험하며 표류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