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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 Jan 10. 2022

[속초 한달살기] D.3 시간의 어제와 오늘

시간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흘러간다. 나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미세먼지가 가득  하늘을 보며 오늘은 무얼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손님들도 많이  계시고 오전 청소를 마감한 뒤라 하루 종일 자유시간을 가질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쯤까지 글을 쓰다가 오늘은 동네를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속초의 겨울은 꽤나 따뜻하다. 맨투맨에 코트 하나 걸치고 돌아다녀도 춥다는 기분을 못 느낄 정도다. 서울보다 훨씬 따뜻한 것 같은 기분. 바다 주변인데도 불구하고 바닷가 특유의 베일 듯한 바람이 불어오지 않아서 좋다. 검은색 맨투맨에 검은색 코트, 전봇대도 제대로 서 있지 않은 골목길을 그림자와 한 몸이 되어 거닐기 시작했다.


메인 거리를 장식하는 큰 건물들 뒤로 들어가니 구시가지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몇 걸음도 차이 나지 않는 거리에 속초의 옛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마치 을지로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 그러나 이곳은 가게들보다 아직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옛집들이 대부분이었고, 사람들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마트나 빨래방 같은 곳들이 그 옆을 이어 쭉 놓여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얼마나 오래됐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 작은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해물파전, 라면 등 여러 음식을 파는 장소인 것 같은데 아마 시간이 지나 이제는 요리를 자주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어두컴컴한 거리들 한가운데 작게 피어오르는 불을 두고 그 주변에 어르신분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계셨다. 어떤 얘기인지 들리지 않았지만 듣는다 해도 아마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을 것 같다.


시간의 흐름은 많은 걸 바꾸어놓는다. 우리의 모습도, 성격도, 살아가는 방식과 그에 맞춘 시스템도. 우린 그 안에서 변화하거나 기존의 것을 유지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좋고 나쁜 것과 상관없이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주고 세대에 걸쳐 생겨나는 삶에 대한 관점들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아마 저기 앉아 늦은 새벽까지 대화를 나누실 어르신 분들께는 가게가 대성하는 것보다 우애 좋은 동네 친구분들과 매일같이 함께 웃으며 식사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더 행복한 일일 것이다. 아마 이 앞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학생들에겐 미친 듯이 공부해 무형의 공간으로 가고자 하는 것보다 마음 맞는 아이들과 오락을 하는 게 더 행복한 일일 것이고. 나는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관점과 자신만의 입맛으로 살아가는 삶을 관찰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다.


직접 묻지 않아도 삶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쫓기듯 일을 하며 누구보다 빨리 앞으로 나아가려는 한편 누군가는 바닷가에서 여유롭게 홀로 앉아 떨어지는 파도와 저 멀리 일렁이는 푸른 지평선을 보며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무한적으로 늘어나는 이 삶의 방식 속에서 나는 무엇을 택하고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 아직까지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진 못하지만 나는 이렇게 매일같이 밖으로 나와 다양한 표정들을 목격하며 다시금 살아갈 용기를 얻곤 한다. 그들이 나에게 목적지를 가르쳐주거나 좀 더 쉽게 나아갈 수 있는 지혜를 전달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부담이나 짐이 나에게만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그들은 삶은 흐름에 따라 여기저기 부딪히지만 그러면서 필요 없는 조각들은 떨어져 나가고 더 이상 부서지지 않은 단단함이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설령 나도 시간에 발맞추지 못해 뒤처지는 때가 오더라도 내 곁엔 늘 내 손을 잡아 이끌어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멈추지 않고 다시 한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빠르게 흘러간다. 그렇기에 붙잡고 싶어도 붙잡으려 하지 않고 대신에 내게 주어진, 아직 잊히지 않은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려 노력하게 되는 것 아닐까. 시간이 흐르고 얼굴에 주름살이 생겨 나조차도 나의 모습을 잊게 될까 봐 두려운 건 여전하다. 그러나 두려움에 위압되어 여기 무릎을 꿇는다면 지금 나를 감싸고 있는 온기들도 식어 사라지고 말 테니 주저하진 않으려 한다. 모든 것들이 처음과 다르게 바뀌어 있을 때 나는 거리 대로변 혹은 그 뒤의 골목길 이 중 어느 곳에 둥지를 만들어 내 삶을 풀어내고 있을까.



여러 생각들을 뒤로하고 방으로 돌아와 찍은 사진들을 핸드폰에 옮겨 담았다. 사진을 보다 보니 얼마  겪었던 기억이 잠시 떠올랐다. 눈이 많이 오는  여느때처럼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던 내게 누군가 연락을 해왔다. “사진이 너무 좋은데 그냥 주시면  될까요?”하고. 자신의 공간을 꾸미려고 하는데 나의 사진을 걸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진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지만 그래도 엄연히 작업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달라고 요구받는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것은 단순히 내 작품에 대한 성의를 무시하는 일을 넘어서 아직까지 사람들이 예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이었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는 “서로 좋자고 하는 일 아니냐,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말을 했고 나는 다툼을 원하지 않아 어려울 것 같다고 말을 하고 대화를 마무리지었는데 그날은 새벽까지도 어딘가 불편한 마음에 잠을 설쳤다.


이 세상에 그냥 서로 좋자고 일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더욱이 그게 삶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가치관을 훼손하는 일과 관련 있다면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예술가들의 창작품이 언제부터 그저 편하게 나누어줄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을까. 왜 우린 누군가가 만들어낸 창의력을 아무 대가 없이 소유하고자 하는 것일까. 값어치를 매기기 어렵고 심지어는 정확히 이해조차 못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보이는 앞에서 노동을 하고 돈을 벌어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나는 내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 삶에 충실하고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게 삶에 충실한다는 것은 나와 연이 닿은 이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자 한다는 뜻이다. 내가 만들어낸 작품들은 모두 내 삶의 일부이고 나의 조각이다. 남들의 생각이나 의견, 모습들을 어디서든 자유롭게 손댈 수 있는 세상이 왔다고 해서 그게 남의 삶을 대가 없이 탐하는 걸 당연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인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내 옆에 있는 타인을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그들이 만들어낸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니,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겠다면 최소한 존중은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삶의 조각이 세상에 나와 외면받지 않고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면 말이다.




사진을 전부 옮겨 담고는 일찍이 잠에 들었다. 예전 기억들에 잠식되기 전에 필사적으로. 정신이 고통받아서인지 일어나서 영 뻐근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기억은 깨끗이 사라져 활기차게 새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2022.01.09




당신의 삶을 듣습니다.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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