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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 Dec 22. 2021

시체가 된 거리, 증발한 현실


말했었던가 


나 이젠 살가죽조차 남아있지 않은 

시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걸음은 할 수 있을 만큼 

몸집이 가벼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한 발자국씩 내딛을 때마다 두둑거리는 관절 탓에 

머리가 울리는 것은 둘째치고 마음이 불편하다 


모든 것들이 구름의 형상을 하듯 

일체의 의구심도 없이 차갑게 돌아서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린다 


나를 잡아주던 이 땅도 

모처럼 솔직함에 겨워 잔뜩 흔들어대기에 

나는 이리저리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댄다 


그러나 죽음을 인정하기엔 아직 마음이 여려 

억지로 살아있어 보이고자 옷들은 걸쳤다 


하늘이 쏟아지는 것만 같아 겁에 질려있지만 

표정은 평온하게 

혹 마디 사이에 내 심장도 같이 떨어질까 두려워하지만 

떨림은 자켓 뒤에


거짓이 되어버린 모든 것들이 

이제는 진짜가 되어가는 것만 같아 


혼란에 혼란이 올라타 


무게의 경종을 따지려는 것은 아니니 

화는 내지 않아 줬으면 한다  


그저 진짜 살아있음의 종결이 다가온 현실을 외면하고자 

부리나케 옷을 차려입고 발버둥 치고 

뼛조각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투닥거리며 불편한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일 뿐이니 




생은 어떤 의미일까.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족했던 나의 인생이 여러 경험들 끝에 이 질문 위에 올라서게 됐다.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내 시간과 재화를 교환하며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인가.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고, 무언가를 얻으려 살아가는 것임은 분명한데 그 무언가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는 여전히 갈피도 잡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시체가 되어 거리를 돌아다니는 영혼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생의 활기는 제때 관리를 해주지 않으면 곧 수증기처럼 구름 속으로 사라지니 이 모든 것들이 증발하기 전에 소중히 관찰해주어야 할 것이다. 살가죽조차 남지 않은 뼛조각들이 되어 차갑게 식어버린 손길로 투닥거리고 싶지 않다. 심장이 뛰는 인간이 되고 싶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나는 '세상'이라 일컬어지는 곳에 떨어졌다. 목적도 의미도 없이. 죽는 게 두려운 이유조차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잊혀지고 싶지 않은 것이라면 각인되고 싶은 것일까. 아무것도 없이 사라지는 게 두려운 것이라면 무언가를 남기고 떠나가고 싶은 걸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 세상이라는 곳을 어떤 흔적들로 채워나가고자 하는 건지 나의 정신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당신은 살아있는가? 그저 생존하는 것이 아닌 살아있다는 개념 아래서 살아있느냐는 질문이다. 그렇담 당신에게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분명 모든 이들이 저마다 다른 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럼 같은 맥락에서 나는 누군가가 부여한 삶의 의미라는 것을 맹신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들의 답을 나의 것으로 끼워 맞추는 대신 내가 정의한 삶이라는 것에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 것일 텐데, 분명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답을 찾는 과정조차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알 길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글을 쓴다고 대뜸 대답하곤 한다. 답도 과정도 이 모든 것의 시작점도 어딘지 불분명한 이 무작위적인 경험들 속에서 결국 내가 갈구하고자 하는 감정들을 내포하고 있는 온기들을 담아내어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그 기록을 토대로 정신을 괴롭히면서 성장시키는 것이다. 죽음이 목젖까지 차오를 때까지 아무리 고통스러운 고문에도 그 답을 뱉어내진 못할 테지만 이 행위 자체가 내가 내일 눈을 뜨게 할 명분을 주는 것이니 아무렴 어떤가. 무형의 과정 속에서 '과정'이라는 것에 있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으로 오늘 또 한 번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끄적인다. 행위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 이 모든 것들의 무의미한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답 따위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일전에 깨달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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