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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 Dec 19. 2021

추위에 떠는 정신의 모순



죽고 졸린 영혼들이 가득한 계단을 타고 올라 조금 늦었다 싶은 마음에 급하게 횡단보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불 하나가 켜져 건너고 나면 저 멀리 내가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가 곧바로 켜지는 바람에 이 추운 겨울 날씨 속에서 더 시간을 지체하고 싶지 않아 살을 에는 바람과 함께 땅을 뛰어다녔다. 


이미 거기에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머릿속에는 빌어먹을 날씨가 왜 이렇게 추울까 하는 생각과, 


이렇게 해서 내가 오늘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하는 장황한 고민들과 


삶을 살아가는 방식 속에서 나의 바람은 정당한가 하는 의구심 등이 정신을 점령했다 


옷을 동여매고 바람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잔뜩 독기를 품은 상태로 걸어 나가고 있는데 저 멀리 애처롭게 모든 이들에게 손을 건네는 한 명의 사람이 보였다 


이 시간에도 새롭게 명예를 끌어다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위해 만든 종잇조각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또 다른 사람 


그는 내가 생을 산 것보다 몇 배는 더 살아온 것처럼 연륜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연륜이 무색해라 고된 굳은살이 박힌 손가락은 진실됨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를 단순히 잊혀진 기억이라고 생각하듯 사람들은 일말의 희망을 모아 던진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지나갔다 


그 순간 내밀어 준 손길을 따스하게 잡아줘야지 하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나 역시 그 손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순간에서부터 벗어났다 


그러나 찰나의 시간 동안 나의 옷가지와 맞닿은 그 한기가 정신과의 연결을 밝게 켜기라도 하듯 머릿속에 방금 지나친 저 사람의 절실함이 찾아들어왔다 


그는 아무 목적 없이 그저 걸어 다니는 나에게도 너무 차가운 이 겨울 위에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생을 이어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얼음장 같은 바람이 두들긴 나의 눈이 흘린 눈물인지 영하의 온도 속에서도 불꽃같은 의지를 발견한 정신의 눈물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러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 그것이 내가 그 접촉의 순간 가장 처음 느낀 생각이었다


나의 사랑, 관계들과 비슷한 나이테를 두른 누군가가 또 다른 자신의 생과 사람을 위해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것, 이것은 삶의 감동이자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현실이었다 


그 뒤에 잇따라 줄지어 다가온 생각은, 불쾌하고 이기적이게도, 내가 그 추위를 이겨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 오는 안도감


나의 노력 없이 무작위적으로 하늘이 부여한 선물 덕에 감사하게도 아직까지 따뜻함이 지배적인 하루 속에서 잠깐씩의 차가움만을 느끼면 된다는 안정감 


이윽고 찾아온 마지막 생각은, 나의 미래 역시 공정하지 않고,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불안감


지금의 온기가 언제 눈송이에 녹아 흡수될지 모른다는 걱정, 눈이 내려 모든 땅이 하얀색으로 뒤덮일 때 나의 길도 따라 몸을 숨기는 게 아닐까 하는 공황 


어쩌면 나도 천 조각 몇 벌 걸친 채 겨울 살얼음 위에 똬리를 틀고 누군가의 붙잡음을 간절히 기다려야 하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는 위기감 


이 모든 것들이 스치듯 바람과 함께 훑고 지나갔다 


생은 오늘도 불공평했다


어제도 그랬고 작년에도 그랬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라고 단언하듯 얘기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과연 나는 버텨낼 수 있을까. 어느 때보다 건조하고 삭막한 한기와 손을 잡고 이 겨울을 지나갈 수 있을까 


살아낸다는 것 


그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때론, 아니 어쩌면 아주 빈번하게 저주처럼 보이는 이 무형의 장애물이 


내게 기대하는 축복 같은 의미를 나는 깨달을 수 있을까 


어쩌면 


지금 내 의견들이 뿌리를 내리는 살결의 모든 주름 하나하나가 그 의미를 기록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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