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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양 Dec 26. 2021

강박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대답


강박은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대답 

혹은 멸시감에 대한 답 


피어오르는 산등성이 두 갈래의 뿔 같은 붉은빛이 

잔뜩 겁을 먹고 달아나며 실수로 흘린 그림자를 

밤의 건조함을 그대로 머금은 달의 유혹이 집어삼키기 위해 

어제보다도 빠른 속도로 쫓고 있을 때에 


스쳐 지나가는 망상일까 

머릿속에 온갖 얼굴들이 잔상으로 남아 

선명했다 

흐려졌다 


가방 맨 아래 처박아두어 고이 모셔놓았던 

사실 감당하기 힘든 진실이라 잔뜩 겁먹은 채 숨겨두었던 

그 모든 서러움이 아지랑이를 타고 피어올라 

이제 내 머리칼에 닿았다 


눈을 비비며 일어났던 아침마다 찾아준 거울 

그 속에 보이던 새로운 얼굴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하루에 하나의 얼굴과 하나의 표정이 미동도 없는 웅덩이에 빠져  

잔잔하지만 파도치는 물결을 일으키며 헤엄을 치기 시작하면  

나는 시간이 멀어져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는

그 얼굴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느 때처럼 색다른 표정과 새롭게 피어난 얼굴이 

호수에 뛰어들었고, 이 모든 것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신기루 같은 오기와 함께 태초의 단계부터 다시금 반복하는 훈련을 하게 만들었다 


새들의 모이가 되어버린 절경의 악취나 

피가 흘러내린 자국조차 아름다움이 되어버린 새빨간 폭포나 

무한히 한 구석이 달라붙은 채로 승산 없는 싸움을 하고 있는 자아의 어린 마음이나 

아마 비슷비슷하게 아픈 상처와 

비슷비슷하게 기쁜 미소를 가지고 있겠지 


얻지 못한 금괴에 대한 집착은 아니었기에 죽음까지 맛보진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허나 나라는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환멸감에 대해선 설명할 길이 없어 

참으로 답답하고, 다시금 미로 속으로 걸음을 옮긴 기분이다 


나는 거울 속에서 아름다움을 보고자 한 것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그저 단순한 소유욕과 비교 우위에 있고자 한 우매함 

강박적으로 삶을 조각한 체계에 매혹에 빠져 

더 이상 사랑이란 감각을 느낄 수 없게 된 메마름 


나는 거울 속에서 나를 보고자 했던 것이다 

다른 영혼의 아름다움이 나를 적셔 

나도 그만큼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증명함으로써 생명에게도 그 같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한탄스럽기 그지없는 냉혹함 

부담스럽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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