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본인에게 살아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A.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정말 의미 없고 부질없다 생각했었다.
지구를 갉아먹는 인간으로 태어난 게 끔찍하기도 했고, 태어남은 정말 내 의지와 아무 상관없다는 사실 자체가 힘들었다. 그렇게 내게 삶이 무슨 의미인가를 찾기 위해 내가 어디로부터 비롯된 물질인지, 나의 삶이 향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무엇인지, 또 나를 이 지구에 붙어있게 하는 중력은 무엇인지를 찾아 헤맸다. 내가 존재한다고 믿는 세상이 실재하는지 알고 싶어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물질인 것만 같아 다른 삶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소설도 읽고. 그러다 우리는 모두 사람인 척하는 외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향해 가는지, 어떤 우주를 가졌는지 알 수 없는. 그리고 내가 향하는 곳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으로부터의 완전한 소멸로만 얻을 수 있는 완전한 자유 말이다. 그렇게 소멸을 꿈꾸는 나를 여태껏 지구에 붙어 있게 하는 이유 나에게 그것은 '사랑'이더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더욱 사랑하고 싶어서 존중하고, 지키고, 변화시키기 위해 생을 지속하며 사람으로부터 행복, 삶의 힘을 얻는다. 아직 내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찾지 못했지만, 나의 중력과 목적을 알고 나니 삶의 의미는 그것으로 많이 채워지더라. 뭐, 앞으로 계속 찾아가겠지?"
집에 돌아와 작가의 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내가 느낀 것으로 답글을 적어봤다.
세상에 대한 회의감과 모든 것들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환멸감 속에 끝내 자신을 이 지구사에 붙들고 있는 게 무엇인지 발견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는 인격적 의지. 소멸을 꿈꾸면서도 나를 잡아주던 중력이 아직까지 나를 살아가게 한다는 것을 인지한 뒤 겪어낸 주체적인 변화. 내게 주어진 사랑의 양이 차고 넘쳐 내가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에 흔적을 남긴다면 그때 중력은 나를 놓아줄까. 나의 책임이 유한적이라는 전제 하에 내가 담아낸 사랑을 전부 비우고 난다면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인가.
위구심과 허무함 속에서도 스스로의 뿌리를 찾고자 했던 그 마음이 너무도 강렬해 아직까지 생은 답을 찾기 위한 조금의 힌트도 주지 않지만 그 생동감 자체만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살아있는 이유를 찾기 위해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정신적 풍요로움을 선물할 수 있는 세상적 지혜를 깨닫는 것, 이후 깨달은 것들을 스스로 가지고 있지 않고 이 땅 위에 전파하는 것으로 또 한 번 전진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삶의 과정이며 단순히 하나의 정의를 가지지 않는 자유로운 사상이자 힘이다.
답이 존재하지 않는 공허함 속에서 어떻게든 나만의 기준을 세워가는 행위. 하나의 학문이 아닌 거미줄처럼 엮이고 엮여 더 많은 것들이 나를 통과하며 걸릴 수 있도록 하는 그 그물을 학습하는 것처럼 우리는 세상에 널려있는 모든 정보들을 읽고 쓰고 삼키며 나를 찾아간다. 어제 내가 정의한 삶과 오늘의 내가 정의한 삶이 다르듯이. 우리는 원치 않은 것에 의해 지배당하고 어떨 때는 혐오하는 대상에게 정복당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세상이라는 사실에 낙담하고 좌절함과 동시에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오기로 태어난 이유를 묻는 어리석은 마음에 근거를 찾기 위해 전쟁을 치르기 시작한다. 감정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 단순히 생존하지 못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불안함과 정신적인 죽음에 이르러 사회적으로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고매한 정신의 고통이 복합적으로 섞여 도저히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할 수수께끼인지 헷갈려 한 채로 매일의 시간을 흘려보내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늘상 망각하고 있는 사실은, 우리의 가치관이 시시각각 변화하듯 삶이라는 것 자체도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아침의 하늘과 저녁의 하늘이 풍기는 향이 다르듯 적은 시간일지라도 우리가 주변 모든 것들에게 묻히는 향은 매 순간 변화한다. 도태냐 발전이냐를 논할 수 없이 비약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 나는 이것으로 우리는 한 층 더 삶을 알아갔다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을 나는 좋든 나쁘든 인격적 성장이라고 부른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과거의 우매함이 지금은 깊은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삶에 책임감을 가지게 되는 경우에도,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길거리 영혼들에게 따스하게 손을 내밀게 되는 경우에도 우리는 조금씩 변화하며 현재 나의 상태에 맞는 선택들을 내리게 된다. 그 선택들이 미래에 나를 불운하거나 좌절하게 할 수 있을지언정 현재의 선택으로 우리는 세상의 반대편에서 마주할 만한 기회들을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들이 논리적으로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풀려가는 인생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단 한순간도 무지하지 않은 적 없이 완전히 고매한 상태로 영혼을 순수하게 유지할 수 있는 인생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한다. 실수를 하는 만큼 선한 영향력을 주는 행위들을 하기도 하고 말이다. 비례적인 일에 우린 대부분의 경우 좋지 않은 쪽에 마음을 실어 머리를 무겁게 만들고 눈물을 흘리게 한다. 옳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옳지 않은 선택 뒤에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높게 가져가는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수 뒤에 실수가 오는 것도, 성공 뒤에 실패가 오는 것도 전부 인생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지혜를 얻어 성장을 해 다음번에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었다면 그건 성공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지독한 성공 끝에 절벽에서 추락한듯한 실수들을 반복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 모든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의지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원동력을 얻어 미소 지을 내일을 위해 잠에 들 수 있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은 우리가 완벽이라는 허상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 하는 노력만으로 충만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그 만족감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상이란 쟁취할 수 없는 것이지만 오늘보다 나은 나의 모습을 좇는 것은 분명 달성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내고 지금 나의 기둥이 되어 굳건하게 감정의 폭포를 잔잔하게 해 줄 무언가를 찾아 연속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반복이 삶의 풀이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죽고자 했던 인생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모두에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하나씩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만의 삶의 방식이 내가 고이 아껴둔 선물 상자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그것에서 시작한다. 지금껏 누군가의 인생을 닮기 위해 혹은 누군가의 의지와 나의 의지를 비교 선상에 놓아 나의 것이 보잘것없어 보인다는 사실을 마음에 담아두고 낙담하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인생을 가꾸어나갔다면 지금부터는 그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나만의 선택들이 즐비한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내 선택들은 그 어느 누구의 입장에서도 객관적으로 완벽히 좋거나 나쁠 수 없을 것이며, 모든 선택에는 전혀 다른 기회의 자판기가 놓여지게 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선택은 절대 완전할 수 없기에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