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회화나무에 눈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회화나무에 눈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물론, 정해진 일이 모두 순서대로 되는 건 아니란 걸 잘 압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는 일일수록 느리다는 것도 잘 압니다.
하지만 늘 똑같이 반복되는 일에 혹시라는 기대를 합니다.
올해는 회화나무에 눈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작고 고운 꽃송이가 날개를 펴고 가벼워지면 나무 그늘 밑에 눈처럼 소복이 쌓입니다.
한해의 풍년을 점치고 올해의 안녕을 확인하다지요.
올해는 회화나무에 눈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는 어쩐 일인지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500년 하루도 거르지 않던 일을 작년에는 왜
잊었을까요.
7월이 되면 회화나무는 온통 하얗게 머리에 화관을 쓰고 무거운 고개를 겨우 숙였지요.
그런데 7월 첫째 주, 둘째 주를 지나도 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7월 셋째 주가 되어서 이유를 알았지요.
매일 집을 나서고 들어오는 길에 고개를 들어 서로 안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7월 어느 날, 내게 묻는 안부에 안녕으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회화나무에 꽃이 피지 않은 이유를 알았거든요.
10여 년 누워있던 몸이 가벼워져 멀리멀리 날아갔습니다.
함께 늘 있을 거라는 약속도 모두 지우고 작별의 말도 다 전하지 못했습니다.
빗소리가 요란한 오늘,
어쩌면 흠뻑 젖은 꽃송이가 무거워 아래로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올해는 회화나무에 눈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대문 사진 by 봄비가을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