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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봄비가을바람
Jun 22. 2022
해물탕 끓여 줘.
친구들이 좋아하는 나의 음식
"얼굴이나 한번 보자."
"만나면 사진 하나만 보내 주라."
"그래, 기말 끝나고 보자."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보니 친구들 채팅방에 메시지가 남겨져 있었다.
코로나 발현으로 3여 년 친구들과 얼굴도 못 보고 지났다.
유별나게 조심성이 많다고도 할 수 있지만 학교나 아이들
대상으로 하는 일을 하다 보니 다른 직종보다 조금은 더 유난스러운 조심성을 발휘해야 했다.
"이제는 우리도 얼굴 좀 보자."
조금씩 제한이 풀리면서
조심스럽게
약속을 잡아 보려 한다.
<출처/Pixabay >
"해물탕 끓여 줘."
언제부터인
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친구들이 모이면 나는 해물탕을 끓였다.
결혼해 집들이하는 두 친구 집에서, 엄마 결혼 독촉 성화와 학교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한다는 명분으로 독립한 친구 집에서.
아마도 그 시작은 오랜만에 모인 우리 집일 것이다.
항께 푸짐하게 먹을 국물 음식을 생각하다가 해물탕을 끓였다.
갖가지 해물에 된장을 기본으로 한 국물 양념에 무, 쑥갓이나 미나리를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서 먹는 해물탕은 제법 그럴듯했다.
그 후로는 언제나 친구들이 모이면 해물탕 타령이다.
우리 다섯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다.
19번, 20번인 나와 단짝은 뒷줄 번호 22번, 27번, 28번과 어떻게 가까워졌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신기하다.
키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20번인
친구가
시력
이 안 좋아 늘 맨 앞에 앉았기 때문에 맨 뒷줄에 앉은 세 친구와 가까워진 것은 누구와도 편하게 지내는 20번 친구 덕분이었다.
사립에 남녀공학이어서 앞쪽 번호가 여학생이었고 뒤쪽 번호가 남학생이었다.
2학년이 되어서는 각각 흩어졌지만 보충수업은 우열반으로 나누어 받다 보니 3년을 거의 붙어 다녔다.
고3 때에는
주말이나 방학에도 학교 도서관으로 등교해야 했다.
지정석이 있어서 일명 땡땡이도 티가 나서 용납이 안 되었다.
언감생심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약간 꾀가 나기도 했다.
'이상하다. 왜 안 풀리지.'
'
그
렇게 어려운 게 아닌데.'
아까부터 수학 문제 하나를 붙잡고 10분을 끙끙댔다.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1분도 안 걸릴 걸 이러고 있으니 웬일인가 싶었다.
그 와중에 그날 출석체크 담당 선생님은 좌석표와 얼굴을 확인하고 계셨다.
잠시 후 도서관 문이 열리고 물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밖으로 잠깐 나와라. 가방도 챙기고."
선생님의 차분한 목소리에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차례로 친구들의 걱정스러운 눈길을 받으며 도서관 밖으로 나오니 화학 선생님이 계셨다.
"어서 병원으로 가 봐라."
그리시고는 택시 타고 가라고 만원을 손에 쥐어 주셨다.
엄아의 교통사고 소식이었다.
아침
일찍 여름 과일과 채소를 공판장에 보내는 차를 타고 갔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도서관에 있던 대부분의 친구들이 뒤따라 나왔다.
혹시 집으로 연락 못 해서 학교로 했을까 봐 같은 동네 사는 친구에게 우리 집으로 연락을 부탁하고 택시를 탔다.
엄마는 큰 수술 두 번과 중환자실 3개월, 일반 병실에서 6개월 입원했다.
물론 고3 여름 방학은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
에서 보냈다.
학교에 못 가니 궁금한
친구들은
병원에 오고 싶은 고3
친구들이
모여 가위바위보를 했단다.
그래서 이긴 - 제일 많이 싸우고 제일 많이 마음을 나누던- 친구가 왔다.
어떻게 왔냐고 하니.
"네가 못 오게 할 테니 다 못 오고 가위바위보 해서 내가 이겼어."
그때 나는 그랬다.
남한테 절대 불편 주는 일은 죽어도 싫었고 이유 없이 받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네모 중에서도 정사각형 네모라서 완전한 자기 틀에 맞춰 자기가 옳다는 것은 추호도 못 바꾸는 아이였다.
설령 그것이 틀렸다고 해도 끝까지 가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한 동그라미는 아니지만 달걀 모양 정도는 된다.
아마도 이 네 명의 친구들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교통사고로 시작해서 삶의 가장 힘든 것을 겪으면서 이리저리 부딪쳐 모서리가 깨지고 갈려 둥근 모양이 되었을 것이다.
친구들과 만나면 늘 우리가 함께
했던
고등학교 시절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지나온 많은 길을 더듬어 본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해물탕"도 등장한다.
어쩌면 엄마의 솜씨를 닮은 음식이라서 그럴까.
친구들과의 추억 속 음식이 엄마를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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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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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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