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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가을바람 Jun 24. 2022

장마, 그리고 오이지

장마가 시작되는 날에..

 "어서 일어나라."

 "빨리 나가야 한다."

다급한 아빠 목소리를 꿈 인가해서 척이는데 옆에서 또 소리가 난다.

 "다른 아이들도 빨리 깨워라."

그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어 잠을 깼다.

동생들을 깨우고 이불을 대충 정리하고 아빠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고운 사람 어머님이 보내 주신 오이지무침>




 밤새 쉬지 않고 내린 비는 아무래도 집 앞 냇가를 넘쳤나 보다.

붉은 황톳물이 마당에 가득 차 이미 아빠 무릎을 넘어서고 있었다.

마당 한편 커다란 소나무 앞에서 남동생이 엄마를 찾아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서 있었다.

아빠는 우리 셋을 하나씩 안아 남동생 옆에 세우셨다.

엄마가 챙겨 나온 이불 보따리를 아빠가 받아 들고  앞장섰다.

엄마가 남동생을 안고 그 뒤를 따르고 나는 양손에 여동생들 손을 잡고 뒤따랐다.

물난리를 피해 윗동네로 가야 했다.

 지금은 별천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대부분 농토에 집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중 이웃이라 할 수 있는 할머니 댁으로 갔다.

아빠가 반장 일을 보시면서 자주 뵙는 할머니셨다.

수박 철에 수박 맛보시라 가져다 드리고 오이도 출하하고 먹을만한 것은 따로 챙겨 드리기도 하셨다.

가끔 우리 집 일이 바쁠 때는 할머니께서 내려오셔서 일손을 도우시기도 했다.



 새벽 빗길은 질척이고 어둑한 기운에 한층 무서웠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할머니께서는  반갑게 문을 열어 주셨다.

엄마는 방 한쪽에 가져온 이불을 깔고 우리 넷을 옹기종기 모아 놓았다.

 "장난치거나 까불면 안 된대이."

 그리고 엄마, 아빠는 집으로 되돌아갔다,



 집에 도착한 엄마, 아빠는 거의 허리까지 차오른 물을 퍼내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그 사이 비는 그쳤지만 냇가에서  넘친 물이 자꾸 밀려 집으로 들어와서 해가 훤하게 떠오를 때까지

죽자살자 물을 퍼냈다고 했다.



 우리 넷은 서로 기대어 엄마 말대로 장난치거나 까불지 않고 무서움도,  엄마, 아빠와 떨어진 것도 잠시 잊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달그락달그락, 보글보글.

할머니 손길이 바쁜 소리가 들리고 맛있는 냄새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이윽고 할머니께서 커다란 둥근 밥상을 우리 앞에 놓으시고 하나둘 할머니 솜씨가 가득한 반찬을 올려놓으셨다.

어쩔 줄 몰라 동생들과 눈치만 보고 있는데 아빠가 왔다.

 "밥만 있으면 됩니다, 아이들 넷에 신제지는 것도 죄송한데."

 "아날세. 나도 매일 혼자 먹다가 여럿이 같이 먹어서 좋네."

서로 옥신각신 하시다가 아빠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밥그릇을 하나씩 차지하고 밥만 숟가락으로 뜰까 말까 하다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 앉았다.

 "괜찮다. 어서 먹어라."

그제야 우리는 밥상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앉았다.

아빠는 우리 넷 손에 오이지 오이를 하나씩 들려주셨다.

 "집 안까지 물이 차서 이것밖에 못 갖고 왔다."

 "천천히 꼭꼭 씹어서 먹어라."

아직 오이지가 제대로 익기 전이라 생 오이와 오이지의 중간 맛 정도라 먹을만했다.

 우리가 먹는 것을 보고 아빠는 할머니께 연방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집으로 내려갔다.



 리 넷은 서글픈 홍수 피난민답지 않게  집 아닌 곳에서의 아침이 신이 났다.

오이지를 잘라서 무친  아닌 하나를 들고 온통 다 먹는다는 것도 왠지 모르게 신이 났다.

 그런 우리를 할머니는 기특하게, 안쓰럽게 차례로 보셨다.



 장마가 시작되는 오늘, 초등학교에 들어간 그 해, 홍수가 났던 그 새벽이 생각이 났다.

밤새 빗소리가 끊이지 않겠지만 모두 평안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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