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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봄비가을바람
Jun 13. 2022
아빠의 도시락 반찬
아빠 음식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무래도 계절의 변화가 제일 먼저일 것이다.
요즘은 왠지 여름이 빨리 오고 더위도 심해지는 것 같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가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코로나 시국에 계절도 세 번씩 보내면서 이제는
정말
제대로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보고 싶다.
하루 중에도 시간의 흐름은 있다.
아침, 점심, 저녁.
기온도 공기도 풍경도 다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의 몸도 시간의 흐름을 겪는다.
눈도 흐려지고 귀도 어두워진다.
먹는 것도 예전에는 아삭아삭 잘도 먹던 것이 어느새 부담스러워진다.
<출처/Getty Images Bank/네이버 지식백과
, 노가리
>
우리 부모님은 참 열심히도 사셨다.
아이 넷에 할아버지, 할머니, 큰 농장일에.
한시도 쉴 틈 없이 바삐 몸을 움직였다.
집안일도 부모님 두 분이 늘 함께였다.
김장처럼 큰 일은 우리 넷도 손을 보태고 철 따라 수확물이 넘쳐 날 때는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고교 시절에는 주 종목을 꽃으로 바꾸면서 더 많은 일손이 필요했고 부모님이 할 일도 많았다.
꽃은 시기별 달리 피고 달리 수확해야 해서 사람을 함부로 쓸 수 없어서 더 분주했다.
우리 넷 중 나는 꽃 꺾고 묶어 상품으로 나가는 단계까지
,
셋째는 출하 품목, 수량 정리, 둘째는 마지막으로 출하 시간에 맞춰 꽃 끝처리와 차에 싣는 일을 했다.
새벽 1시까지도 이어지는 날이라 일주일 세 번은 어쩔 수 없이 밤잠을 양보해야 했다.
꽃은 민감한 품목이라 남의 손이 타면 꽃시장에 도착했을 때 폐기되는 것이 많아져 그동안의 일이 헛고생이 될 수 있어서 힘들지만 우리 손이 훨씬 나았다.
<출처/Pixabay >
※ 그때 재배했던 꽃들 중 몇 가지를 찾아보았다.
국화만 해도 소국, 대국, 계절 품종에 따라 20가지 넘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엄마가 꽃시장에 가는 날이면 아버지가 아침 일찍 우리 도시락도 싸야 했다.
새벽에 아버지는 엄마를 배웅하고
나서
밥 짓고 아침 찌개를 끓이면서 도시락 반찬을 준비했다.
아빠의 전매특허 도시락 반찬은 노가리 구이였다.
아무리 농사일이 쉴틈이 없다지만 주말에는 여유를 가지려 애쓰셨다.
그런 여름날이면 마당 평상에 밥상을 차렸다. 아버지는 노가리를 방망이로 두드려 부드럽게 펴고 고추장 양념을 발라 석쇠에 올려 숯불에 구우셨다.
양념에는 특별히 "베트남 고추", 일명 하늘 고추를 잘게 썰어 넣었다.
하늘 고추는
지금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 고추 품종 안에 몇 개가 섞여 파종 후 싹을 틔우고 열매가 맺히면 그 정체가 드러났다.
하늘로 열매가 솟구쳐 열리니 눈에 띄는 것이다.
입에서만 화하게 맵고 양념과 어울려 탄내와 섞이면 맛있는 맛이 났다.
우리 넷은 호호 불며 하나씩 들고 밥 한 그릇을 뚝딱했다.
몸통만 쏙 먹어버리고 대가리만 남으면 아빠는 바삭바삭 맛있게 드셨다.
먹기 전에 아예 대가리는 떼서 아버지 밥그릇 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게 더 맛있다."
하며 잘도 드셨다.
노가리 대가리가 정말 맛있나 해서 먹어보니 바삭하기는 해도 먹기도 불편했다.
아이들한테 먹기 좋은
것을
주고 불편함을 감수하신 것이다.
그 마음도 한참 지난 후에야 알았다.
바쁜 아침이지만 제일 잘 만드시는 "노가리 구이"를 해서 계란 부침을 맨 밑에 깔아 밥을 담고 봉지에 노가리 구이를 담아 하나씩 들여 주셨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펼치면 노가리 구이 봉지는 순식간에 반 아이들의 쟁탈전이 벌어졌다.
작은 조각 하나라도 먹으려고 야단이 나서 노가리 구이를 가져간 날은 난 하나도 먹지 못 했다.
대신 케첩에 볶은 프랑크 소시지, 분홍 소시지
부침,
우리 집에서는 가끔 먹는 어묵 볶음 등 다양한 반찬이 내 앞에 놓였다.
그래서 노가리 구이가 도시락 반찬인 날을 좀 다른 이유로 너무
좋아했
다.
이제
아버지는 예전처럼
노가리 구이를
바삭바삭 씹어서
못 드신다.
노가리 자체가 귀해지기도 했지만 부드럽게
방망이로 두드려도 세월이 몸도 약하게 만들고 기능도 떨어지게 했다.
심장질환을 진단받으신지 7년 차가
되어
드실 수 있는 것이 제한되다 보니 음식에 대한 흥미도 잃으셨다.
하지만 미각은 전혀 잃지 않으셨다.
오히려 더 예민해지셨다.
때론 마주 한 밥상머리가 힘들 때도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우리 아버지도 젊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무엇보다 노가리 대가리를 바삭바삭 씹어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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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도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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