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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가을바람 May 31. 2022

13년 차 연애의 1일, 왕돈가스

내 앞에 좋은 것만 놓는 사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반드시 사랑하는 남녀가 아니더라도 신기하고 신비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스스로 선택하기도 하고 때론 선택되기도 한다.

처음 본 순간 왠지 친숙한 느낌에 좋은 사람임을 알아보기도 하고 첫인상이 좋지 않은 기억을 만들어 앙숙이 되기도 한다.



 나의 고운이를 처음 봤을 때 "저 사람은 결혼을 했거나 여자 친구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누가 봐도 딱 좋은 사람이었다.

모임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챙기고 모임이 잘 굴러가는 건 분명 이 사람 때문이었다.

타의 반 자의 반 뒷정리를 도와주며 모임 후 모이는 멤버가 생겼고 더운 날은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추운 날은 를 사 준다고 모임의 대장님이 자리를 만드셨다.

자연스럽게 총무, 부총무를 엮어 주려는 눈에 다 보이는 일련의 일들이 부담이 되어 가고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그를 위해 시간을 만드는 것이 당시 내게는 사치였다.

더 이상 내가 없어지는 것을 견디기 어려운 지경에 다다서 나만의 시간을 만들자는 다짐으로 주말이라도 밖에 있어야 하는 핑계를 만드는 중이었다.



  "좋은 사람 만나셨으면 좋겠어요."

12월 마지막 날 송년 모임을 마치고 돌아와 보낸 메시지에 나의 고운이는 내가 불을 렀다고 그런다.

불을 끄려고 보낸 메시지가 불을 지르는 불쏘시개가 된 것이다.

그 불이 13년째 타고 있다.

처음부터 활활 탄 적도 없었고 아슬아슬 위태하게 지고 다져서 지금까지 왔다.




 


   자주 가던 옛날식 경양식집이 있었다.

  "빵으로 드릴까요? 밥으로 드릴까요?"

  "밥 하나, 빵 하나 주세요."

코로나 시국에 극도의 조심성이 발휘되면서 못 간 지 꽤 되었는데 그곳 사장님이 헤어진 줄 알겠다.

언제부턴가 알아보시고 돈가스 한 조각을 더 주셨다.

연애 초기에 탐색전이 한창일 때 혹시 음식을 기면 안 좋게 볼까 봐 그 많은 걸 다 먹었다.

물론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오빠, 더 먹어요, "

 "알았어요. 내가 먹을게요."



 연애를 둘 다 많이 해 본 것도 아니고 나이 계산에 연애 포기 마지막 기회에 둘이 만났다.

싸우기도 엄청 싸우고 나름 밀당도 했다.

서운케 해 울기도 하고 서로 아프게도 했다.

 늘 내 앞에 가장 좋고 맛있는 걸 예쁜 접시에 놓아주는 사람이라 혹시라도 이제 와서 각자 다른 길을 가게 되더라도, 아프게 해도 미워하거나 원망할 수 없다.

기꺼이 행복을 빌어 줄 수 있다.

 오랜 연애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답답이 둘이 지들이 답답한 건 모르니, 둘이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한다.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작은 문틈을 내어 슬며시 등 떠밀어 줄 수 있는 연애이다.


 



 "언제 먹으러 가지. "

 "오빠, 어서 자요."

메시지를 보내니 전화를 한다.

잠만 깨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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