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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봄비가을바람
Jun 04. 2022
엄마가 차려준 마지막 생일상
엄마만 기억하는 생일
친구들과 몇 년 전에 "생일 챙기지 않기"를 하기로 했었다.
어른들이 들으시면 "에끼, 이놈들"할 일이지만 나이를 먹는 것에 두려움이 생겼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어렸네."
하고 피식 웃음이 난다.
어차피 나는 스물세 살, 엄마가 차려준 마지막 생일상 이후 제대로 생일상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
가족 중 생일이 제일 빨랐고 한창 바쁜 3월이라 잘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우리 넷 4남매의 생일 전에 아프다고 했다.
몸이 안 좋으면 달력에서 우리 생일을
가늠했다
.
생일날 아침이면 미역국에 한 가지 이상 특별한 반찬이 올랐다.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우리 넷,.
많은 가족들 밥그릇 챙기기도 힘든데 여러 음식이 올라오지는 못 했다.
그래도 항상 생일이면 가족 중 제일 먼저 아빠 밥그릇과 같이 큰 그릇에 밥을 가득 담아 주었다.
그 밥 한 그릇을 받는 날은 왠지 세상을 가진듯했고 큰 선물 받은 것보다도 좋았다.
여동생들은 생일상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음력으로 생일을 지나다 보니 정확하게 일주일 차이로 둘째 여동생 생일, 추석, 첫째 여동생 생일, 아버지 생신 순이었다.
둘째는 추석으로 첫째는 아버지 생신으로
보통
하는 말로
,
퉁쳤다.
참 속상하고 억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해 아이들과 남편이 챙기니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해 가을에 엄마가 하늘로 소풍을 떠났다.
일도 바쁘고 4남매도 학업에 직장에 나름 바빠서 지나갈 뻔했다.
"이번 주 일요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농장으로 다 와야 된데이."
봄이 한창 아지랑이를 피우기 시작할 무렵이라 농장 일이 바빴다.
농장에서는 학교나 직장으로 나가기 불편해서 우리 4남매는 교통이 좀 더 편한 데로 집을 마련했었다.
엄마의 집합 명령이 떨어졌으니 누구 하나 열외는 안 된다.
다들 약속도 있는 듯했으나 누구도 불평 없이
봄기운이
싹트는
들판으로 나갔다.
제법 큰 농장이라 사람을 쓰기는 하지만 대부분 아버지, 엄마 두 분이 하시고 어려서부터 우리 넷, 아니
셋이 도왔다.
할아버지, 할머니 계실 때는 남동생은 늘 열외였다.
하지만 봄을 준비하고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때라 아직 우리 손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엄마가 집합을 시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리가 오고 큰 삼촌네 가족도 도착했다.
숙모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그날도 뭘 그렇게 많이 싸 왔는지 삼촌하고 한가득 짐을 들고 왔다.
숙모가 갈비찜, 황태 구이, 떡 하고 몇 가지 반찬을 해 오고 엄마가 잡채, 미역국, 생선 구이 등 집에 있는 김치와 항아리 속 묵은 반찬들을 커냈다.
아버지 생신에도 이렇게 음식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무슨 날이지.
"내일이 니 생일이잖나."
내 생일이라니.
동생들도 그제야 "아!" 했다.
나조차 내 생일을 몰랐는데 엄마는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가족들
모두
모여 바빠지기 전에 밥이라도 제대로 먹으려고 했다지만
나에게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왜냐하면 내 마지막 생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옆구리 찔러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기억해 주는 생일, 진짜 생일상은 그렇게
그날
이
마지막이
었
다.
지나
보니 엄마가 어쩌면 떠날지도 몰라
스물셋부터 미리 한 번에
생일상을
차려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
다.
그래서 나는 괜찮다.
너도 나도 생일 축하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평생 받을
생일상을
한방에 푸지게
,
받고 싶은 사람한테서 받았으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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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엄마
음식
Brunch Book
음식에도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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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도시락 반찬
17
엄마가 차려준 마지막 생일상
18
13년 차 연애의 1일, 왕돈가스
19
아버지는 초밥을 여덟 개나 드셨다.
음식에도 힘이 있다.
봄비가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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