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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서..
시간이 멈추는 곳
by
봄비가을바람
Jan 7. 2023
"안녕하세요."
"어서 와요."
현이 책방을 열고 들어서며 인사하자 책방 사장님이 언제나처럼 반색하며 반겼다.
오늘따라 큰 사장님이 나와 계셨다.
현이 사는 집 근처 책방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이 책방을 자주 들렀다.
중학교 때부터는 주말이면 책방에 와서는 한참을 서서 책을 읽고 몇 권을 저렴하게 사서 다음 주말까지 읽곤 했다.
이 책방은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몇 안 되는 헌 책방 중 하나였다.
자매분들이 계속 이어서 책방을 꾸려나가며 손님들에게는 큰 사장님, 작은 사장님으로 불렸다,
큰 사장님이 몇 년 전 수술을 하시고 완쾌하셨지만 연세가 많아지셔서 요즘은 작은 사장님이 주로 나와 있었다.
두 분 다 현이 어려서부터 봐서 다정하게 대해 주셨지만 단 한 번도 책방 손님으로서의 대접도 잊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요즘은 "현이 씨."하고 불러서 조금은 민망하고 송구할 때도 있다.
이 책방은 시간이 멈춘 곳이다.
책들도 대부분 요즘 것보다 시간이 지난 책들이다.
이미 새 책으로서의 생명을 다하고 싫증 나서 첫 주인의 손을 떠난 책들이다.
그래서 가끔 재미난 에피소드가 생기기도 한다.
책 주인이 미처 책 장 하나하나를 확인하지 못하고 비상금을 숨겨놓은 것까지 깜박해서 공교롭게도 책 정리를 하던 사장님 손에서 발견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 사장님은 고이 모아놓았다가 연말에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놓으신다고 했다.
비상금이 다른 용도로 변하기는 했지만 더 좋은 곳으로 갔으니 잘 된 일이다.
책을 쓴 이한테는 좀 서글픈 일인데 현이도 몇 번 발견한 적이 있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책장에서 뽑아 들고 표지를 보고 첫 장을 넘겨 여백에 작가의 친필 사인과 책이 전해진 사람 이름까지 떡하니 적혀 있는 책을 보면 이 책의 작가가 이 일은 몰랐으면 싶을 때가 있다.
받을 때는 분명 기쁜 마음이었을 텐데 어느새 그 마음이 사라진 건지, 책을 손에 들고 망설이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어 책 주인이 다시 와서 찾아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책을 제자리로 살며시 꽂아 놓았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커플인가 봐요?"
"아, 네."
돌아보니 방금 들어온 커플과 큰 사장님이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참 보기 좋아요. 여기서 처음 만나 연애하고 결혼해서 아이와 같이 오는 사람도 있어요. 너무 기쁘고 좋아요."
"감사합니다."
싫지 않는 따뜻한 말들이 오고 가는 이 책방이 현이는 너무 좋다.
오래된 책 하나하나 책 장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과 추억도 좋고 사장님들과의 온기 넘치는 이야기도 좋고 책 냄새만큼 향기 나는 자신의 이야기도 좋다.
책방 주위가 하나둘씩 변하는 모습에 혹시라도 책방이 없어질까 봐 걱정이지만 찾아오는 발걸음과 큰 사장님, 작은 사장님이 지키는 한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현이는 다음 주말까지 읽을 책을 집어 들고 계산대 앞으로 갔다.
"10,500원입니다."
책 세 권을 새 책 한 권 값도 안 되는 돈으로 치르고
큰 사장님께 인사하고 드르륵드르륵 나무 미닫이문을 열고 나왔다.
격자문 작은 네모로 큰 사장님을 한번 더 돌아보고 무언의 다음 주말 약속을 했다.
대문 사진 포함 <출처/Pixabay>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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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차 한국어 선생님이며, 등단 시인입니다.. <시간보다 느린 망각>시산문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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