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설
아침 해 붉은 기운이 미처 차오르기 전
키만 한 마당비를 들고 나와
밤새 소리 없이 소복이 쌓인
포슬포슬 쌀가루 함박눈
눈사람으로 빚어 놓고
엄마 손으로 데운 새해 첫물에
깨끗이 씻었다.
색깔 고운 때때옷으로
갈아입고 복주머니
큰 칼 차듯 허리에 찼다.
웃어른 아침 기침에 문안 세배 드리고
떡국 밥상에 둘러앉았다.
한 그릇에 한 살 먹는 날
제법 두둑해진 복주머니 흔들며
이웃 어른 집 문을 두드렸다.
색동옷 고이 접어 세배 올리고
떡국 밥상 앞에 앉았다.
또 한 그릇에 또 한 살
앞 집 문을 삐꺽 열고 들어가
후딱 세배만 하고 나와야지.
두 손 곱게 모아 세배를 드리고
물러나 앉으니 떡국 상이 반겼다.
또 또 한 그릇에 또 또 한 살을
먹어버렸다
그리고 아직 열 손가락보다 더
세배가 남았다.
#대문 사진 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