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와 귀맞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것들..

by 봄비가을바람

여름을 알리는 빗소리에 <그래, 알았어.>, 여러 번 대답을 해 줬는데도 이틀째 후두둑 창문을 두드린다.

봄비처럼 비 온 뒤 서늘한 기운이 남지도 않고 경쾌하기까지 한 빗소리와 후덥지근한 가벼운 열기도 담았다.

가는 시간, 서로 자리를 바꾸는 계절의 부지런함에 <비 온다.>, 탓할 수도 없다.

겪어야 할 시간을 지나야 또 한 걸음을 걸을 테니.



우산을 쓰고 가방이 젖을세라 종종종 다녀온 휴일 수업은 부슬부슬 빗소리가 노곤한 낮잠을 불러온다.

<오늘은 낮잠이라도 자야 하는데.>.

하지만 누구나 꿈꾸는 비요일에 눈꺼풀 졸음을 쫓으며 무거운 책장에 연필을 굴리고 하얀 화이트보드에 집중하려고 하는데 초여름 열기 때문에 열어 놓은 창문 탓일까 빗소리와 귀맞춤해 버렸다.

그냥 빗소리가 아니라 일요일 늦잠을 유혹하는 달달한 자장가보다 달콤하다.

자꾸 감기는 눈꺼풀을 슬며시 화장실에서 깨우고 돌아오는 학생의 전투력이 고맙다.



"비 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면 무슨 음식이 생각나요?"

아직 한국어 수준이 초급이고 한국에서도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한국 사람의 비 오는 날 음식이 새롭다.




<출처/우리의식탁>



빗소리와 연관 있다는 전이 생각나서 기름내 폴폴 내며 빗소리를 음악 삼아 파전, 부추전, 애호박 전, 김치전 등.

뜨거운 김 호호 불어 먹는 맛이 좋을 것이다.




<출처/Pixabay>



기름내가 나는 전도 좋지만 칼국수와 수제비도 좋다.

어릴 적 여름 방학이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시골에 갔다.

이렇게 부슬부슬 비가 오면 할머니 키만큼 큰 홍두깨를 꺼내 밀가루 반죽을 밀어서 고른 간격으로 썰어 칼국수를 끓이셨다.

장독대 큰 항아리 뚜껑에 칼국수를 한가득 담고 호박과 부추나 쪽파를 고명으로 올리셨다.

양념장은 매워서 넣지 않고 후루룩 먹은 칼국수 맛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비 오는 날>, <항아리 뚜껑에 담긴 칼국수>, 그 운치만은 어린 나이에도 좋았나 보다.



수제비는 엄마의 음식이다.

멸치 육수에 호박을 썰고 부추나 파를 넣고 반죽을 얇게 떼어 끓였다.

뜨거운 불 앞에 한참 서서 반죽을 떼다 보니 엄마 일손을 도우면 먹을 때 여지없이 두꺼운 반죽 덩어리 몇 개는 밥상을 물릴 때 남기도 했다.

비 오는 소리에 귀맞춤하기 좋은 후루룩 수제비 먹는 소리가 제일 많이 생각나는데 더 생각이 꼬리를 물면 안 되겠다.

결국, 비 오는 날, 여기까지 와버렸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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