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사는 카페 2

레몬 에이드

by 봄비가을바람

"레몬 에이드 나왔습니다."

선우는 여학생 앞에 레몬 에이드를 놓으며 말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유리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선우는 못 본 척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조금 후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숨죽여 우는 모습에 선우는 책을 집어 들었다.

<기억을 비우는 곳>.

책을 여학생한테 내밀고 그 앞에 앉았다.



"비가 이제 그치겠네요."

"네."

여학생은 테이블 위에 있는 냅킨을 집어 눈물 자국을 찍어냈다.

"죄송합니다."

"별말씀을요. 아니에요.

그냥 마음이 쓰였어요.

아까부터 이 앞을 왔다 갔다 해서요."

"네."

여학생은 선우를 가만히 고개를 들어 보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중단발을 반묶음 머리를 하고 하늘색 꽃무늬 원피스에 크림색 7부 카디건을 입은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마치 어디선가 마주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비가 오면 기억이 빗물처럼 눈물이 되기도 해요."

선우의 말에 여학생은 한번 더 눈물을 찍어냈다.

"오늘은 이상하게 아침부터 좋은 일이 많았어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왔고 수학 시간에 문제풀기도 잘 됐고, 학교 급식도 맛있었고 비가 오며 날씨도 많이 덥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 아이와 자주 마주쳤어요."



"정말 좋은 하루였네요."

"그런데 하굣길이 모든 걸 망쳐버렸어요."

"하굣길이?"

"유치원 때부터 친구가 있거든요.

중학교까지 계속 같은 학교에 다니다가 고등학교는 다른 학교로 갔어요.

가끔 주말에 만나거나 연락은 지금도 거의 매일 해요. 그런데.."

"그런데.."

"밖으로 나오는데 교문 앞에 그 친구가 와 있는 거예요.

저는 너무 반가워서 손을 흔들며 이름을 불렀는데 그 친구도 저를 봤어요.

여전히 제 쪽을 보고 웃는데 왠지 이상했어요.

조금 있다가 자전거를 탄 남자 애가 제 옆을 지나쳐 친구 앞에 섰어요.

그리고 친구를 뒷자리에 태우고 가버렸어요,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쟤네 사귄다고 웅성대는 소리를 들으며 친구는 저를 본 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서운했구나."

선우는 여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 하루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섣불리 여학생의 마음에 끼어들 수 없었다.

"아니요. 그냥 좀 슬펐어요. 오늘 아침부터 진짜 좋았는데 지금 이렇게 슬프기 전에 미리 위로를 한 것 같아서요."

"그럼. 이러면 어때요? 여기 이 책에 오늘 잊고 싶은 것을 적어 봐요. 그러면 혹시 내일은 다 잊어버리고 아무렇지 않을 지도 몰라."

의아하게 바라보는 여학생에게 선우는 책갈피를 끼워놓은 책장을 펼쳤다.

여학생은 필통에서 볼펜을 꺼내 들고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잠시 후, 뭔가를 적었다.

선우는 책갈피를 다음 장에 끼워 넣고 책을 덮었다.

여학생은 아까보다 밝은 얼굴로 레몬 에이드를 한 모금 마셨다.



며칠 후, 테이블을 정리하던 선우는 유리창 너머로 여학생 둘이 재잘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문을 뚫고 카페 안으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여학생 중 한 명은 선우가 아는 얼굴이었다.

카페 안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여학생이 힐끗 쳐다보다 이내 친구와 팔짱을 끼고 지나쳐갔다.

선우는 테이블을 마저 정리하고 책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책갈피가 끼워져 있는 앞 책장을 펼쳤다.





매일 나를 웃게 해 준 그 아이를 내 기억 속에서 지워 주세요.









<대문 사진 포함 출처/Pixabay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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