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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회화나무에 꽃이 피지 않았다.

어긋난 시간

by 봄비가을바람

한여름, 7, 8월이면 회화나무에 흰 눈이 내렸다.

500년이 넘는 시간을 거르지 않고 흰 꽃이 활짝 피어 마치 눈 덮인 겨울나무 같았다.




https://brunch.co.kr/@xzhu638-msl147/159

<작년 여름에는 흰 눈이 소복소복 내렸다.>




가는 시간을 잡을 수 없지만 지나는 시간의 흔적으로 아쉬움과 후회를 달랬다.

고개 숙여 걷던 걸음을 멈추고 하늘 끝에 닿을 듯 뻗은 가지와 무성한 잎은 해를 가리고 하늘을 가렸다.

발자국마다 자박자박 흰 꽃 밟히는 소리가 사리지고 올 한 해 다가올 고단함에 철렁했다.

이미 큰 일을 겪으며 단련되지 않은 심장은 이유 모를 불안함에 쿵쿵거린다.



다 두고, 다 주고 떠난 누군가의 한일까.

서러움일까.

현상에 대한 풍경도 모두 내 뜻 내 마음대로 여기고 짐작해 버렸다.

뜨거운 여름에 고개 들어 나무를 몇 번이나 보겠는가.

다만, 문득 바라보고 있어야 할 것이 없으니 그제야 어디에든 탓을 한다.

내 가진 것을 혹시라도 빼앗길세라, 혹시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세라.

빗대어 원망할 것을 찾는 것일 게다.



회화나무는 예부터 마을을 지키고 한여름에 꽃을 피워 풍년을 빌고 길흉을 점쳤다고 한다.

잎과 줄기가 잘 자라 풍성한 풍채와 풍모로 보기도 믿음직하니 좋고 열매와 , 나무를 약재로 사용하기도 하여 온전히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나무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두고 꽃 한번 안 피웠다고 너무 앓는 소리를 했나 보다.

살고 견디는 일은 다 제 할 일에 달려 있는 것을..

올해는 좀 더 참아내는 해로 다지고 다져 앞일을 바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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