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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모네이드가 필요할 때

속이 불탔다.

by 봄비가을바람


레모네이드가 필요할 때



가을 한낮 따끔한 햇살이 박히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

속 깊은 곳 우물이 마르고

바닥이 갈라져 육각형 기와를 구웠다.

샘을 파도 솟을 기미는 없고

목구멍을 타고 갈증이 기어올랐다.

가을에 오는 비는 한기를 재촉하고

계절의 순서를 바꾸고

속도 모르고 서늘한 뒷모습을 보이며

저만치 앞서갔다.

붙잡으려는 것은 늘 도망가고

머물기 바라는 것은 떠날 준비부터 했다.

계절 탓이라, 날씨 탓이라.

쓸데없는 핑계만 늘고

잴 수 없는 눈물에 서운함만 늘었다.

한낮 뜨거운 열기라도 재우면

좀 나을까.

투명한 유리잔 안에 노란 레몬을 비추고

이슬방울 따라 새콤한 방울방울

아주 잠시라도 가을을 멈추었다.

정해진 것이 아니고

정해놓은 것이 아닌데

가을이라 그립지 않을 것이 없다.

서늘해도 속은 뜨거워

그리움에 타고

서러움에 타고

그 얼굴이 내 안에 있어서 속이 탔다.



대문사진 by 봄비가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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