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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의강 Dec 30. 2022

불갑산, 꽃 지고 그리움 남은

百山心論 8강 9장 80산 불갑산


어떤 결심도,


날 수 없고

이룰 수 없어


돌이킬 수 없는 

허황함 비하면


오히려

사치스러운 다짐



가을

갈테면 가라지


말은 없어도

다시 올 것

잘 알고 있으니



불갑산 단풍


불갑산(516m)을 다녀왔습니다.


늦가을조차

이지러진 날


고운 님 보내고

초록 그리움 흐드러진

꽃무릇 위


붉은 단풍

갈색 낙엽


푸른 하늘

흰 구름


살포시

내려앉아

함께 누었습니다.



함께 누운 풍경


멀고 먼 호남의 

왕복 10시간

전남 영광 불갑산


추운 겨울 지나

또다시 가을이 오고

출소한 그녀도 왔지만

만나자 약속했던

그는 정작 오지 못한

이만희 감독의 '晩秋'

마지막 장면


쓸쓸한 풍경 닮은


한때 상사화축제로

꽃무릇 붉은 물결 이루고


발 디딜 틈 없이 붐볐을

들머리 상가와 공원


잎 떨군 고목 위로

바람만 지나고 있습니다.



들머리


산 타기에는 딱 좋은 날씨,


불갑사와 '덫고개' 지나

능선 올라 여러 봉우리 오르내린 후


'노루목'과 정상 '연실봉' 거쳐

'구수재'로 내려 불갑사로 회귀하는

 환종주 코스 택했습니다.



등산 코스


불갑사 입구에서 정상까지

피처럼 붉은 꽃 모두 떨구고


이제는 푸른 잎만 남은 꽃무릇

퇴색될 수 없는 그리움인양

산 곳곳 물들입니다.



꽃무릇 잎


흔히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여

'화엽불견(花葉不見)'이라점에서

'꽃무릇'과 '상사화(相思花)'를 혼용하기도 하지만,


생물학적 분류는 같고 비슷해도 

엄연히 서로 다른 꽃이지요.


'상사화'는 수선화과에 속하고 한국이 원산지로

위도상사화, 제주상사화, 백양화 등이 있고

'봄에 잎이 먼저 피고 다 지고 난 후

여름에 대롱 하나 올라와 꽃을 피우고',


'꽃무릇'은 일본산으로 뿌리가 마늘처럼 생겨 돌마늘(석산:蒜)이라고도 불리는데

'8~9월 꽃이 먼저 피고 다 지고 난 후

잎이 나와 겨울을 보낸다'고 합니다.



상사화(위)와 꽃무릇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다는 애틋함 때문에

둘 다 속세를 떠난 스님과 관련된 전설을 담고 있고(그래서 절 주위에 많이 피어 '중꽃'이라고도 한답니다),


상사화는 '이룰 수 없는 사랑',

꽃무릇은 '참사랑' 혹은 꽃과 뿌리의 독성으로 인해

잘못 먹으면 세상을 하직한다는 뜻에서

'슬픈 추억, 피안화'라는 꽃말을 갖고 있답니다.


꽃무릇은 '꽃무더기'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옛날 이 꽃으로 죽을 만들 때 독성을 빼기 위해 한참을 끓여야 하는데 참지 못하고 그냥 먹어 탈이 났기에 '자발스런(행동이 가볍고 방정맞은) 귀신은 무릇 죽도 못 얻어먹는다'는 속담에서 나왔다고도 합니다.



잎만 남은 꽃무릇


그리 볼 때 불갑산에 핀 꽃은

상사화가 아니라 꽃무릇이라 불러야겠지만,


'비비추'와 '옥잠화'처럼 다르긴 해도

굳이 목숨 걸고 따질 일 아니기에,


두 꽃의 차이와 특성을 아는데서 만족하고

초록잎 지천인 꽃무릇 길 걸어갑니다.



꽃무릇 군락


천년고찰 불갑사와

앙상한 가지 드러낸 감나무


덫고개로 이어지는

작은 산길 하나


호젓함과 쓸쓸함

낙엽과 바람에 실려갑니다.



불갑사


불갑산은  전남 영광군과 함평군 경계에 있는 산입니다.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 침류왕 원년인 384년

이곳 포구를 통해 불교를 처음 들여와 사찰을 지었기에 60 갑자의 으뜸인 갑(甲)자와 합쳐 '불갑사'라 하였고, 모악산의 일부였던 산이름을 불갑산(佛甲山),

포구를 법성포()라 불렀다 합니다.

 

봄에는 벚꽃, 8월에는 백일홍이,

9월에는 꽃무릇이 만개하여

선운사, 용천사와 함께 국내 최대 꽃무릇 단지로

이름나 있습니다.(위키백과)



덫고개 오르는 길


잎 떨군 마른 가지

낙엽 일렁이는 오솔길

바람에 떠가는 가을 풍경


덫고개 올라

이 동네 마지막 호랑이 살던 굴 지나


능선길 접어드니

줄지어 도열하는 봉우리

노적봉, 법성봉, 감투봉, 장군봉

줄줄이 오르내립니다.



호랑이굴과 능선길


낙엽 가득

단풍 가득

꽃무릇 초록잎 가득


아늑하고 이쁜

정원 같은 능선길 이어집니다.



정원 같은 능선


노루목에서 정상 연실봉 가는 길

'어려운 길'과 '쉬운 길'로 갈립니다.


예습한 대로 어려운 길 택해

짧지만 짜릿한 암릉 오르니


손에 잡힐 듯 우뚝 솟은

삼각 연실봉


시야가 트이고

마을 품은 계곡과 산그리메

뿌옇게 펼쳐집니다.



연실봉 가는 암릉 길


마지막 108 계단 지나

비록 천천히지만

한 번도 안 쉬고 올라온 길


주위 산들이 연꽃 열매 닮은 봉우리

감싸고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연실봉

 

맑은 날은 서해 바다 보인다는

평지로 된 정상 한 귀퉁이

정상석 품고 있습니다.



정상 연실봉


'집에 있음 산이 자꾸 부르는 거 같아요,

 그래서 미친 사람처럼

 혼자라도 온다 아닙니까?'


'어머 그러세요, 저도 그런데,

 이리 오고 보니 정말 좋지 않나요?'


산객들 왁자지껄 대화에 미소 지으며

누군가 가져다 놓은 플라스틱 의자 앉아

따듯한 물과 도시락 즐깁니다.



정상 풍경


완만하게 내리는 길,


친절한 산지기가 나무마다 명패 달아놓아

서어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공부하며


마른 가지 사이 만발한 억새

멋진 암릉 감상하며

갈림길 구수재 도착합니다.



내리는 길


갈수록 평탄하고

가꾸어진 길 


흐르는 계곡 따라

낙엽이 떠가고

가을도 흐르고


불갑저수지에는

하나 가득

계절이 일렁입니다.



불갑저수지


공원길 따라

꽃무릇 초록초록


마지막 남은 잎새 하나

작은 희망인양

바람에 떨고 있습니다.



마지막 잎새


느릿느릿

가을 정취 만끽하며

주차장 향해 가는 길


어찌 알았는지

80산 등정 축하한다며

팔순잔치하자는 친구 톡이

 빵빵 돋아줍니다.



불갑사 주차장


*2022년 11월 23일 따듯하지만 바람 부는 날 산악회 버스 타고 혼등했습니다.

*불갑사~덫고개~노적봉~감투봉~장군봉~노루목~어려운길~연실봉정상~구수재~불갑사 총 8.8km 4시간 남짓 걸었습니다. 꽃무릇 축제 때 정했던 시간인지 넉넉히 5시간 반 주었지만 대부분 4시간여 만에 하산 30분 일찍 서울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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