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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Jan 04. 2019

흘러가는 저 강물도 나이를 먹을까?

새해가 되니까 괜히 강물에 시비를 걸어보고 싶다.

모든 것은 흐른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흐른다. 세월이 흐르는 것들은 티가 나기 마련이다. 새 것이었던 건물은 조금씩 낡아가고, 유지보수할 것이 많아진다. 작은 묘목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두껍고 단단해져서 쉽게 부러지는 법을 모른다. 얇았던 새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빳빳한 종이의 질감에서 멀어지고 조금 더 통통해진다. 기능이 좋았던 노트북(지금의 내 노트북처럼)은 점점 느려지고, 배터리를 충전해도 1시간을 채 버티지 못하고 꺼진다. 작았던 아이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키가 크게 되고, 어릴 때 크게 느껴졌던 어른들은 점점 작아진다.


세월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처음과 다르게 변하게 된다. 변한다는 것. 지구에 있는 어느 곳에나 통용이 되는 만물의 법칙이다. 모두가 변하지 않고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영원한 것 같았던 모든 것들은 조금씩 조금씩 제 모습을 잃고 변하게 된다.



변하게 되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빌려서 이야기하자면,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 유전자들만이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즉,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면은 퇴화하고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섭지만, 와 닿지 않는 말인가. 변하기 싫지만 변화하는 것은 필연처럼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세월이 변해감을 알까. 우리는 세월 하나 더 살았다는 의미로 숫자 하나를 선물처럼 얹어준다. 12월 31일이 지나고 나면 내가 거부하건, 거부하지 않건 내 나이는 강제적으로 +1이 되고 만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린 시절에는 나이를 하루라도 더 빨리 먹고 싶었는데, 그때는 가수 별의 노래 12월 32일이 실감 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연도가 바뀌어 갈 때마다 씁쓸하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하루 차이일 뿐이지만 나는 갑자기 많이 늙어진 기분이 든다. 늙어서 자꾸 에너지가 떨어지게 되고 당이 떨어지게 되고, 어제와 겨우 하루 차이일 뿐인데도 그 하루가 나를 더욱 늙어 보이게 만든다.



새해가 되면, 한 살 더 나이를 먹게 되면서 이것저것 다짐을 하게 된다. 늘 하는 다짐들은 올해는 꾸준하게 다이어리를 써야지, 올해는 잊어버린 식스팩을 다시 만나봐야지,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많은 책을 읽어야지, 올해는 업무 관련된 자격증을 한번 따 봐야지 등등 거창한 1년의 목표가 생기게 된다. 어떤 것들은 오래가기는 하지만 어떤 목표들은 한 달을 채가지 못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출근하다가 아침햇살에 반짝거리는 한강을 만났다. 새해 목표를 다짐하면서 손에 책을 들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내게 잔잔하게 흐르는 한강이 보였다. 세월이 흐르면 다들 나이를 먹으면서 늙어가는데 저 강물은 어떨까 궁금했다. 


너도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니?


강물 마르지 않는 이상 매일 흐른다. 1초도 제자리에 있던 녀석은 없다.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저 강은 70년 넘게 흐르고 있다. 그럼 저 강물의 나이는 몇 살일까. 저기 흐르는 강물은 70년 전에 있던 강물이 아닌데, 저 강물은 매일매일 1살일까? 아니면 70년 이상의 나이를 가졌을까?


문득 부러웠다. 저 강물은 나이를 먹어도 주름도 생기지 않고, 체력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지나면 조금씩 낡아가는데 저 강물은 어제도 오늘도 새로운 물이 흐른다. 한강이라는 이름 안에 늘 새로운 녀석. 늘 젊은 녀석. 늘 어린 녀석. 부러웠다. 젊음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내게 주름이 하나씩 깊어지는 내게 나이를 먹어도 늘 신선한 저 강물이 부러웠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낡아가는 것에는 시간이 담겨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낡았다고 하는 것에는 기품이 담겨있고, 세월의 흔적들이 남겨져 있다. 우리는 늙고 조금씩 낡아가는 것일지 모르지만 각자의 몸에 역사를 남긴 사람들이다. 매일 흐르는 강물에게 우리는 세월의 흔적도 읽을 수 없고, 같은 시대를 거쳐온 끈끈한 유대감도 느낄 수 없다. 같이 살아가지만, 같은 방식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위안이 되었지만, 그래도 괜한 심술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음에 한강 가면 심통난 기분을 달래기 위해서 돌멩이 하나 던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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