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쿠아맨>을 보고
나름 이것저것 영화들을 보면서 글을 써보았지만, 히어로물은 사실 이 글이 처음이다. 도대체, 히어로물은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유머스럽게 써야 하는가, 아니면 감성적으로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히어로물은 사실 어떤 감동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시원함과 통쾌함을 위해서가 아닌가? 히어로물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느꼈던 대로 한번 써보기로 생각했다.
영화 <아쿠아맨>은 홍보가 될 때부터 이런저런 흥미를 유발하는 카피라이터들이 많았다. "DC가 이를 갈았다." "DC가 제대로 된 히어로물을 가져왔다." "마블 나와라." 등등등. 하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의 평가는 애매했다. 뭐랄까, 팥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호빵을 먹었는데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을 때의 기분? 아니면 팥인 줄 알았는데 양갱이 들어있는 기분? (팥과 양갱이 다른가..?)
이런저런 애매한 평가들이 많았지만, 당시에 딱히 영화관에서 볼 선택지가 없어서 영화 <아쿠아맨>을 선택했다. 아쿠아맨은 왕좌의 게임에 나온 제이슨 모모아가 연기했다. <왕좌의 게임>에서 마초적인 남성의 연기를 보여주면서 이미지를 각인시킨 모모아는 이번 아쿠아맨에서도 터프하고도 야성적인 날것의 아쿠아맨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영화 <아쿠아맨>의 볼거리는 기가 막힌 연출력이었다. 컨저링, 분노의 질주, 더 넌 등의 굵직한 영화를 찍은 제임스 본이 감독을 맡으면서 연출력에서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아쿠아맨의 영웅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슴에 호승심을 일으키는 촬영과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음악들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어둑어둑했던 DC의 영화들과 다르게 밝은 색감으로 보는 동안 연출력에서 심심한 부분은 없었다. 웅장하게 만들고, 속도감 있게 만드는 등 여기저기 신경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뒤에 스토리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할 테지만, 속으로 '아니, 이런 개똥 같은 스토리라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영상을 보면서 "오~"하게 만들 정도였으니 히어로를 히어로처럼 보이게 한 연출력에서는 박수를 두 번 세 번 쳐도 아깝지가 않았다.
히어로물의 전형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과거 한국 소설 홍길동전이나 구운몽처럼 역경을 이겨내는 고진감래의 모습과 악당들을 물리치는 희열을 경험하는 권선징악의 무용담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웅심을 심어주는 것이 히어로물의 특징이라 생각한다.
영웅의 고난들, 태어난 태생이라던가 곤란한 상황에 처한 상태들에 같이 공감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가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아쿠아맨은 이런 모든 상황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첨가되었다. 인간인 아빠와 아틀란티스(인어족?)의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하이브리드인이라는 점과, 전설의 삼지창을 찾기 위해 고난에 빠지는 모든 것들이 메인 요리처럼 세팅되었다. 또한 진정한 왕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 이복동생 옴과 싸우고 자신을 쫓는 적과 싸워서 이기면서 악을 물리치는 정의로운 히어로까지 제대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공감하기는 힘든 부분들이 많았다. 인간 빌런의 경우 자신이 한 나쁜 짓은 생각도 안 하고 아버지의 복수라면서 아쿠아맨을 쫓아다니면서 귀찮게 한다. ET같이 생긴 첨단 기능의 전투복을 입고 다니는데, 복수의 당위성도 없고 비장하게 등장하는 것과 다르게 참 쉽게 처치가 된다.
아쿠아맨의 고난들 역시 심장이 흔들릴 정도의 감동 포인트는 찾을 수가 없었다. 하이브리드인이라고 하지만 아쿠아맨은 문제없이 지금 잘 살고 있기에 홍길동의 서자처럼 고통받는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또한 전설의 삼지창을 구하러 가는 길조차도 험난해 보이지 않았다. 초기 아틀란티스가 무너지고 사라진 삼지창을 아무도 찾지 못했는데,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인가도 싶었다. 삼지창을 찾으러 간 곳에서도 아무도 삼지창을 찾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곳에는 삼지창을 찾기 위해서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의 주검들이 난무한 것도 이해가 안 된다.
그래, 이렇게 하나하나 다 짚고 넘어가면 그 어떤 영화를 볼 수 있겠냐만은 갈등이 해소되는 요소들이나 역경을 이겨내는 상황들에 대한 공감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는 것은 관객의 입장에서 중요한 문제라 생각한다. 이 영화가 언제 끝나나 하면서도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던 이유는 영상의 연출력뿐이었다. 그리고 멋진 남자의 이상적인 몸을 가진 아쿠아맨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모든 적을 물리치고 나서 마지막 동생 옴과의 갈등 해소도 그렇고, 전쟁터에 나타난 엄마의 복장도 그렇고 세세한 부분에서 감정의 몰입도가 굉장히 떨어지는 아쿠아맨이었지만, 그래도 영상미 하나는 시원시원했다.
아, 히어로물에서는 역시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영웅에게는 그에 걸맞은 짝이 있는 법이니까. 아이언맨에서는 훌륭한 비서가 있고, 헐크에게는 블랙 위도우가 있고, 스파이더맨에게는 메리제인이 있으며, 해리포터에게는 위즐리 양이 존재하니까.
아쿠아맨에도 아쿠아맨을 사랑하는 메라(엠버 허드)가 존재한다. 근데, 이 사랑도 참 기승전결이 없다. 물론, 내가 저스티스 리그도 안 보고 슈퍼맨 vs배트맨도 안 봤지만 메라가 아쿠아맨을 돕고, 사랑에 빠지는 당위성이 해결되지 않는다. 아틀란티스의 새로운 왕 옴의 약혼녀로 잘 살고 있다가 왜 굳이 아쿠아맨을 따라다니면서 역경 속으로 빠지고 목숨이 위험한 상황으로 들어갔을까. 언제부터 알았다고, 언제부터 그렇게 챙겼다고 말이야... 첫눈에 반한 사랑 같은 것인가. 약혼을 했어도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니까? 영화를 보는 동안에 해결될 질문이라 생각했지만, 결국 답을 찾지 못했다.
그 마지막 전투씬에서 갑자기 키스하는 분위기 (갑분키)는 정말이지 아름다웠지만 그냥 보면서 "엥?" "왜?" "갑자기?" "진짜?" 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래도 아쿠아맨 2가 나온다면 볼 의향은 있다. 연출력에서 실망하지 않았으니 스토리를 더 채워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