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이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다가 라디오 사연을 주워 들었다. 듣다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해서 관련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사연의 내용인즉 남자가 소개팅한 여자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가 고백을 했는데 여자 쪽의 반응이 남자가 생각한 반응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남자와 여자는 소개팅으로 처음 만났다. 둘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고, 남자는 자연스럽게 또 만날 것을 약속했다. 둘의 만남 횟수는 점점 더 늘어났고, 남자는 여자도 자신에게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드라이브도 가고 영화도 보고 저녁도 먹고 술도 한잔 하면서 관계가 깊어져 간다고 생각한 남자는 마음을 전달하기로 결심했다. 약속 장소를 잡고 평소와 같이 대화를 나누다가 남자는 여자에게 사귀자고 고백했다. 하지만, 여자는 조금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는 "조금 놀랐어요. 지금 바로 답을 드리지 못할 것 같아요. 생각할 시잔을 주세요."라면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남자는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보통 소개팅은 3번째에 고백을 하기 마련인데 둘의 관계는 그보다 더 진행이 되었기에 분명 여자도 마음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며칠 뒤 여자의 답장은 남자의 기대와는 달랐다.
미안해요. 아직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진 지 3개월밖에 안돼서요.
지금 누군가를 사귀기에는 조금 이른 거 같아요.
남자는 이게 거절인지, 더 기다려 달라는 것인지 헷갈린다고 사연을 보냈다. 자신이 더욱 어필해서 적극적으로 마음을 전달해야 하는지, 아니면 그녀가 누군가를 사귈 마음이 드는 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보냈다.
좋으면 이유가 없지만, 싫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이 말은 굉장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좋은 것에는 이유가 없다. 무엇을 해도 좋은 것이다. 아이폰이 왜 좋은지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여러 가지 답이 나온다. 편해서, 이뻐서, 획기적이어서 등등 하지만 아이폰에 대등할 수준의 여러 핸드폰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굳이 아이폰을 선택하는 것은 그냥 아이폰이 좋아서이다. 하지만 싫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라면 꽤나 구체적이다. 우리는 거절을 하기 위해서 변명거리를 만든다. 아이폰이 왜 싫은지를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상세하고 자세한 설명이 나올 것이다.
사람도 사랑도 이와 같다.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좋아하게 되는 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그냥 그 사람이 좋아서이다. 그 사람의 눈빛, 웃는 얼굴, 분위기 등등 그 모든 것들이 종합돼서 좋다. 무엇하나 "딱 이게 이래서 좋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들이 무지개를 좋아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빨강만 좋아할 수도, 파랑은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종합된 무지개는 좋다. 싫어하는 부분이 한 두 개 있어도 무지개는 좋아하는 것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전체를 보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하지만, 싫어하게 되면 이유가 생긴다. 헤어지는 이유, 거절하는 이유, 무언가가 마음에 안 들게 되면 우리의 뇌는 우리가 싫어하는 쪽으로 집중된다. 싫어하는 것일수록 더 자세하게 관찰하고,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서 원인을 만든다.
여기서 나는 불편한 진실을 전해주고 싶다. "전 애인과 헤어진 지 얼마 안돼서 시간이 더 필요해."는 거절이다. 어떤 스토리를 가져다 붙여도 그 사람은 결국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전 사람을 잊을 정도의 강렬한 임팩트를 당신이 주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끊임없이 마음을 어필하고 헌신적인 모습을 통해서 마음을 돌릴 수는 있지만, 지금 당장은 당신에게 큰 마음이 없다는 이야기다.
어반 자카파의 노래 중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노래가 있다. 노래는 굉장히 슬프고 절절하다. "...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내 마음 아프지가 않아.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 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다고 하지만 눈물 흘리는 모습에도 더는 아프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 굳이 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네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도 알잖아라고 묻는 잔인함. 거절당하는 누군가에게 사랑은 굉장히 잔인하다.
가수 양다일의 노래 중 "미안해"라는 노래도 있다. 이 노래 역시 잔인하게 슬프다. "... 누굴 만나 사랑한다는 게
너를 만나 내가 변해간단 게 이젠 없어 미안해 더는 널 사랑하지 않아 미안해 더는 나 후회하지 않아..." 미안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주변 친구들에게 연인 관계에 대한 상담을 해줄 때도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만 강해진다면 그만 하는 게 맞다."라고 말해준다. 내가 연애를 잘하는 고수는 아니지만, 많이 다쳐봤기에 또 그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반해서 사랑에 빠지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좋은 것에 대해 이유를 만드는 사람은 결국 좋은 것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마음이 떠나게 된다. 그는 당당하다. 헤어지는 이유는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왜냐면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더는 당신에게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개팅을 통해, 다른 만남을 통해서 관계가 지속되다가 고백했을 때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결국 "거절하는 이유를 생각할 시간을 달라."와 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에는 빠르게 마음을 접는 것이 어쩌면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몇 번의 만남에서 당신에게 반하지 않은 그 사람은, 결국 무슨 짓을 해도 당신에게 반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