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콘 Dec 28. 2018

꼭 누군가에게 부합되어야 하나요?

리스팅 된 사랑

사랑에는 사실 답이 없다. 그 누구도 정의하지 못하는 게 사랑이라는 단어 아닌가? 누군가에겐 사랑이 뜨겁고 열정적인 것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차분하고 잔잔한 것일 수 있다. 사랑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아무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 다양하고 사랑을 믿는 방법 역시 가지각색이다.


저번에 한 선배가 내게 고민 상담을 한 적 있다. 새롭게 썸을 타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본인의 성향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었다. 새로운 상대는 자신의 생각과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이상형 리스트를 정의해놓았고, 그중 대부분을 선배가 부합하기 때문에 너무 좋다고 고백했다. 상대에게는 자신이 정해놓은 목록들을 하나씩 만족시키는 선배가 참 좋았겠지만, 선배는 그게 부담이라 말했다.


"넌 누가 좋을 때, 뭐가 좋고 싫은지 자세하게 이야기하는 편이니?"


이 질문을 들었을 때는 조금 고민했다. 내가 누군가를 좋다고 말할 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생각해보면 나는 크게 연인들에게 "내가 왜 좋아?"라고 물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딱히 궁금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다만, 내가 어떤 점이 좋은지 대답을 들었을 때 내가 생각하는 나와, 연인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굉장히 다를 수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묻지 않았다. 그리고 자세하게 어떤 점, 어떤 점이 좋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왠지 그 좋은 점에 맞추어 행동해야 될 것 같은 두려움(?)도 존재했다.



반대의 상황은 자주 일어났다. 연인이 "내 어디가 좋아?"라는 질문은 자주 받았다. 어떤 점이 좋은가 생각했을 때, 딱히 나는 답이 없었다. "그냥 너라서 좋아"가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답이었다. "예뻐서 좋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말리지 않아서 좋아."와 같은 대답은 상대에게 잠깐은 기쁨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예뻐서 좋다고 하면, 상대는 그 말에 사로잡혀서 예뻐지기 위해 노력할지 모른다. 더 예뻐져서 더 사랑받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도 있다. 혹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말리지 않아서 좋다는 말을 들었을 경우, 반대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순간적으로 말을 꺼내지 못하게 될 수 있다.


나는 언어의 힘을 믿는다. 사람의 말은 생각보다 강한 속박 능력이 있어서, 우리의 뇌는 주문처럼 그런 말들에 세뇌되고 사로잡히게 된다. 연인을 사랑하는 것은 복합적이다. 상대가 예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고, 상대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막아 세워도 사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은 목록화되지 않기 때문에 순서화된 가치로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선배의 고민으로 돌아가면, 선배는 상대의 이상형 부합 조건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대화가 잘 통해서 좋아.", "몸매가 예뻐서 좋아.",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어서 좋아." 등등 상대는 선배의 좋음점을 일목요연하게 말하면서 사랑에 빠짐을 어필(?)하였다. 그러나 선배한테는 상대의 그런 칭찬들이 협박처럼 들렸다.


"네가 나의 이상형 리스트에서 몇 가지라도 멀어지게 되면 나는 널 사랑하지 않을 거야."


누군가에겐 사랑하고 좋아하는 이유의 증거이지만, 누군가에겐 그 말이 협박처럼 들려서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선배는 스트레스를 토로하면서 어찌해야 할지를 물었다. 왜 단순히 "그냥 너라서 다 좋아"라는 말을 자세하게 설명해야 하는지도 물었다. 딱히 사랑에 답은 없기에 나는 "좋으면 만나고, 싫으면 그만두는 거죠 뭐"라고 말했다가 성의가 없다고 한 대 맞았다.


한 대 맞아서 아팠지만, 사랑은 참 재밌는 일이라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선명해야지 사랑이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은 선명하지 않은 구름 같은 것이어야 하나보다. 거기 있다고 믿는 것과, 거기 있다는 것을 눈으로 봐야 하는 것의 차이라고 할까? 사랑은 변덕스럽다. 누구랑 하느냐에 따라서 선명했으면 좋겠고, 흐릿하게 내 주변에 펼쳐져 있으면 좋겠고, 바다의 파도처럼 규칙이 없다. 그래서 다들 사랑이라는 놈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고생하나 보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사랑이 나쁘다고 할 수 없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