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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Jan 15. 2019

엄마도 알고 보면 여자더라

엄마를 "이쁜이"라고 불렀다. 반찬이 달라졌다.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운 말이 무엇이었을까? 정확한 답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엄마"가 아닐까.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은 엄마가 된 후 자신의 이름을 잊는다.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집에서 엄마라고 불리는 시간이 많아지고, 어디를 가도 XX 엄마의 호칭을 더 많이 받는다. 엄마에 대해서 따로 깊게 생각하기 전에 엄마의 삶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게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너무나 엄마였기 때문에, 엄마의 다른 삶 혹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살았던 삶에 대해서는 궁금해할 계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엄마들이 그렇겠지만, 우리 엄마 역시 참 억척스럽게 살았다. 6남매의 장녀로 어린 시절부터 집안일을 담당했어야 했고, 어린 동생들을 위해서 빨리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배 과수원을 하는 할아버지를 도와서 과일을 수확하는 계절에는 일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 또 배 수확 작업을 도와야만 했다. "아니요"라는 말을 하는 법을 몰랐던 엄마는 중매결혼을 통해 아빠를 만났고 두 아들을 키우게 되었다. 24,5살에 결혼을 한 엄마는 아직 세상을 제대로 모르는 순진한 여자였다. 전라도 나주에서 살던 엄마에게 가장 큰 도시는 광주였고, 시골 인심과 다르게 서울에서의 척박한 삶은 생각도 못했던 사람이었다.


울 엄마 아니다.

서울은 고향과 다르게 조금만 경계를 풀면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엄마는 두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강해져야만 했다. 본인이 강해지지 않으면 내 새끼들한테 따뜻한 밥 한 공기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엄마는 순박한 시골 처녀에서 억척스러운 엄마로 호칭을 변경했다.


두 아들이 너무나 괴롭혔는지 아니면 성장하는 서울이 차가웠는지 엄마는 단단했다. 아니 단단한 척을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무서웠다. 자주 혼났고, 자주 맞기도 했다. 쫓겨나는 것은 기본이고, 조개를 먹지 않는다고 밥상 앞에 6시간 앉혀놓기도 했다. 굳이 변명하자면 나는 자라고 있는 중이었기에, 엄마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냥 엄마는 내게 엄마였다. 엄마도 성장 중이라는 것을 나는 그 당시에 전혀 알지 못했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서 어느덧 두 아들은 대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엄마는 20년 넘게 엄마로 살다가 보니 자신의 삶을 잊었다. 두 아들이 성장하고 난 후의 시간에 대해서 엄마는 꽤나 방황하고 있었다. 자신의 역할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우울해 보이기도 했다. 대학교에 가고 여자 친구를 처음 사귀면서 나는 여자란 생물을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그전까지 내게 여자는 엄마, 친척 그리고 학교 선생님이 전부였다. 남중, 남고를 나오면서 또래의 여자는 내게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도 여전히 사랑받고 싶었는데..


여자 친구를 만나면서 엄마도 꽃을 좋아하고, 엄마도 아름답고 이뻐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서 훨씬 이뻤다. 아빠는 그런 것도 모르고 엄마를 무심하게 대했지만, 내가 본 엄마는 더욱더 대접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나는 엄마를 "이쁜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쁜이~~ 나 왔어"

"이쁜이~~ 오늘은 왜 또 이렇게 이뻐?"


처음 엄마는 "이쁜이"라는 호칭이 어색했나 보다. 딱히 반응도 없었고, 그냥 평소와 같은 모습을 일관했다. 변화는 엄마가 아닌 나부터 생겨났다. 언어가 가진 힘을 나는 몸소 느끼고 있었다. "말이 씨가 된다." "부정 탄다"와 같은 말에 대한 조언들이 있지만 내 나이에는 이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말에 영혼이 깃들어 있으며 불가사의한 힘이 존재한다는 '언령 신앙'에 대한 현상이 내게 일어났다. 여담이지만 언령 신앙은 일본에서 발전되어 온 것이라 한다. 일본에서는 '코토다마(言靈)'라고 부른다. 말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있어서 좋은 말을 하면 행복이 오고, 나쁜 말을 하면 불행이 온다고 믿었다.


엄마, 이렇게 잘생긴 아들이 아니라서 미안...


엄마를 "이쁜이"라고 부르자 엄마가 조금씩 이뻐지는 것 같았다. 아니 우리 엄마가 이렇게 이뻤나? 하고 다시 확인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엄마를 엄마로 대하기보다는 여자 친구처럼 대했다. 장난도 자주 쳤고, 평소에는 하지 않는 포옹도 자주 하게 되었다. 나는 엄마의 무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쁜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곧 엄마도 "이쁜이"라 불리는 게 익숙해졌나 보다.


"엄마, 좀 이쁘지?" 하고 묻는 날도 잦아졌고, "내 나이에 어디 가면 아가씨로 불려"라는 망언도 서슴지 않게 말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하면 유독 맛있는 반찬이 나왔고, 더욱 챙김 받는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엄마한테 제대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밥을 먹을 때도 엄마를 더욱 칭찬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고 했는데 무쇠 같은 엄마도 춤추게 하는 줄은 몰랐다. 밥을 먹을 때마다 "역시 우리 이쁜이 음식이 제일 맛있어!" "이쁜이, 우리 같이 식당 할까?"와 같은 농담들을 했고, 엄마는 다른 의미로 많이 웃는 것 같았다.


국민 엄마들은 늘 걱정이 많다.


어느 날 식탁에서 평소와 같이 "울 이쁜이는 언제부터 이리 요리를 잘했나"하면서 칭찬을 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영 거슬렸나 보다. "저 놈의 자식, 아주 잘 보이려고 별 수를 다 쓰네" 라면서 구박 아닌 구박을 했다. 엄마는 아빠의 말을 듣자마자 "너 나 잘해"라면서 단칼에 아빠의 말을 차단했다. 식탁에서 대장은 엄마였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밥을 다 먹은 후에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이런 나도 엄마를 이쁜이라 부르지 못하는 날이 있었다. 일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까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 모임 갔겠구나 싶었던 엄마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타났다. 연예인들도 쉽게 도전하지 않는다는 클레오파트라 머리를 도전한 엄마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머리 진짜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내 입과는 다르게 "어? 머리 했네? 이쁘게 잘됬네"라는 찬사를 뱉고 말았다. 이건 선의의 거짓말이야 라고 나를 타일렀지만, 진짜 내 평생 본 엄마 머리 중에 제일 어울리지 않는 머리였다.


엄마가 아무리 이뻐도 마틸다는 아니었다.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엄마를 "이쁜이"라 부르지 않았다. 차마 클레오파트라 머리를 한 엄마한테 이쁜이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엄마를 "이쁜이"라 부르지 않고 "엄마"라고 부르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내 무의식이 차마 이쁜이라고 부르는 것을 막았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밥을 먹다가 날 불렀다.


"아들~"


"응?" 나는 밥을 먹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약간 서운한 눈빛으로 "근데 왜 요즘 이쁜이라 안 불러? 나 안 이뻐?"라고 물었다. 나는 밥을 먹다가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무렇지 않아 했어도 엄마는 이쁜이라는 호칭이 좋았던 것이다. 남편도 이뻐해주지 않는데, 다 자란 아들이 이쁜이라 불러주니까 자신감도 많이 높아졌던 것 같다. 엄마라는 이름은 엄마의 진정한 이름이 아니었다. 우리 엄마도 자신의 이름으로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었던 거다. 엄마는 아무리 나이가 들고, 젊었을 때의 탱탱한 피부에서 주름진 피부로 바뀌었어도 예쁘게 보이고 싶은 여자였다. 엄마가 여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반성감이 들었다.


나는 밥과 함께 눈물도 꿀꺽 삼켜내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응? 내가? 울 이쁜이한테 내가?" 엄마는 머리를 자른 이후 이쁜이라고 불러주지 않음을 끄집어내면서 "이 머리 다음부터 하지 말까?"라고 물었다. 우리 엄마 꽤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응, 솔직히 다음부터 이 머리는 하지 말자"라고 말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는 "아니, 안 그래도 내가 원한 것은 이게 아니었는데. 그 아줌마가 어쩐지 너무 말이 많더라니까. 그래서 내가 빨리 끝내고 싶어서 대충 말했는데 이렇게 됐네. 그냥 머리 볶아달라니까 에잉"하면서 미용실 탓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나마 우울해하고 있을까 걱정했는데 금방 털어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엄마의 이름은 엄마가 아니다. 잊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엄마라는 이름 전에 꽃 같은 청춘이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은 여성이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는 엄마니까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제대로 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랑받는 방법은 쉽다. 커다란 선물 같은 것이나 대단히 많은 돈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작은 말부터 시작하면 된다. 엄마를 이쁜이라고 바뀐 후부터 엄마와 나의 관계는 예전보다 더 가깝고 돈독해졌다. 사랑받고 싶다면 먼저 사랑을 주면 된다. 오늘 집에 가서 엄마한테 이쁘다고 한 마디만 건네보아라. 앞에서 아닌척해도 엄마는 분명 거울을 한번 더 보면서 기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우리집 이쁜이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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