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사람인건 알겠는데...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더 많이 알게 되는 것? 책임감을 배우는 것? 아니면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유롭지 않은 것? 후회의 무게를 아는 것?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이유도 있을 것이고 다양한 관점이 존재할 것이다. 사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느낌은 바로 연애이다.

 과거 송혜교와 현빈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그들이 사는 세상' 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아마, 현빈인가 송혜교의 어머니가 했던 말인데 "니들 나이엔 모든 게 새롭고 별일이지만, 자신의 나이가 되면 별일이 아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정확한 대사는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떤 사건을 겪게되고 별일 아니게 느껴질 때 마다 저 말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이제 내 나이는 별일 아니게 느끼게 된 걸까?' 하는 그런 씁쓸한 생각들. 사실, 별일이 아닌 것 중 제일 큰 부분은 새로운 이성을 만날 때 였다. 연애라는 것이 냉정하게 말하자면 결국, 상대만 바뀌는 부분이니까. 첫연애처럼 심장이 뛰지 않는 것은 아마도 이미 여러번 해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다 보니, 여러 사람들의 조언은 "일단 만나봐!"이다. 일단 뭐라도 시작을 해봐야 좋은 감정이 생기는지 더 깊어지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꺼 아닌가? 사실 일단 만나보는 것은 쉬운 일이라 생각할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나보고 몇 번 밥도 먹고 손도 잡고 그러다가 더 깊은 스킨십까지 갈 수 도 있다. 그런데 결국 아니라면? 그 사람이랑 무엇을 해도 좋아지지가 않으면? 그때가서 헤어지면된다는 무책임한 말이 성립이 될 수 있을까? 

 만약 상대도 나랑 같은 마음으로 만났는데, 그때가서 상대가 내가 좋아졌다면? 나는 아니라면? 혹은 그 반대라면? 아니면 둘다 아니라면? 좋아질거야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좋아지지가 않았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리 돌려도, 저리 돌려도 사람의 마음은 물컹하다. 강철처럼 단단하지가 않는 법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연애라도 헤어지는 기분은 좋지 않다. 상대에게 "죄송합니다. 여태 만나봤는데 제 심장이 뛰지 않아요." 라고 말하기도 참 애매한 부분이다.

   사실, 이렇게 연애를 못하게 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는 아마도 시간이다. 앞자리가 3이 넘어가면 더 이상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사회적으로 결혼적령기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우리는 데드라인이 있는 청춘들처럼 목표를 향해 달린다. 아무나 만나서 연애해보라고 하기엔 시간의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게 드는 것이다. 둘째, 아픔이다. 아마도 3이 넘어가는 사람은 사랑에 한번쯤 울어봤을 것이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마음에 다치는 상처는 왠만한 시간이 아니고서는 회복이 안되니까. 그래서 쉽게 시작을 못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이미 다 알아버린 것이다. 연애의 순서를 알고 진행방향을 알고 끝을 안다. 이미 다 알아버린 연애의 패턴은 결국 별일 아닌거 처럼 감흥이 없다. 두근거리지도 또 안달나지도 않는다. 무채색의 그림처럼 색이 조금은 바래진 것 처럼 느껴진다.

   분명 소개팅이나 미팅의 자리에는 좋은 사람이 나온다.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어느정도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또 학생처럼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배려라는 것을 배웠고, 상대가 말하기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 집착하지도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 유지시켜주는 것, 아마도 30대의 만남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더 딜레마에 빠진다. 내가 아는 누군가는 소개팅을 다녀오고 늘 이런말을 한다.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인것은 알겠는데... 끌리지가 않아." 좋은 사람인 것을 알지만, 좋은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다. 연애라는 것은 좋은 사람이랑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게 전부인 사람은 어딘가 불편하다. 그리고 끌리지가 않는 것이다. 인간은 한계를 극복하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애의 관계에서는 한계를 극복하면 매너리즘이 온다. 그래서 끌리지 않는다. 참 별일이 아닌데도, 참 별일이다. 좋은 사람인 것은 알겠는데, 좋아할 수 없는 우리다. 더 끌리는 사람이 나타날 때 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혼자 살거나. 인생이 조금 무뎌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