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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Aug 16. 2018

 전 애인이 결혼했다.

나는 아직 멀었는데 말이다.


어제 K는 우울했다. 집안의 제사라 전을 부치고 침대에 누워서 할 일 없이 SNS를 보는데 전 애인의 피드가 눈에 띈다. 과거 오래전에 만났다가 헤어진 애인이었는데, 새로운 사람과 결혼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름답게 청혼을 했고 전 애인의 부부가 되는 사람이 고맙다고 평생 잘 살자고 하는 글까지 읽는 순간 K는 멍해졌다. 한없는 과거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K는 전 애인과 연애했던 시간과 말들이 떠올랐다. "나랑 결혼하면 이렇게 저렇게 살자" 그 순간의 공기의 밀도도, 하늘거리던 하늘의 색깔도, 한없이 맑았던 눈동자도 분명 선명하게 떠올랐을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저 말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다. 물론 내 것이 안될 것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서로가 약속했던 먼 미래까지 같이 걸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헤어졌다. 각자의 행복을 축하하면서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 시간이 흐르는 거리만큼 멀어졌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서 막상 전 애인의 결혼을 마주하게 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때 조금 더 내가 잘했다면, 우리가 성숙했다면 지금 우리는 함께했을까 와 같은 상상들이 침대 위를 떠다녔을 것이다.

전 애인의 결혼 소식은 참 쉽지 않다. 아무리 욕을 하고 헤어지더라도, 서로 볼장 안볼장 다 보고 헤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결혼을 한다, 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면 참 기분이 맬랑꼴랑해진다. 어떤 놈이 너랑 결혼을 할까! 싶으면서도 그래도 그땐 참 좋았는데 하는 아름다운 미화된 상상들이 기억을 헤집고 다닐지도 모른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주말 오전, 축구를 하기 전에 아주 괘씸한 친구들이 내게 한가지 소식을 전해주었다. 바로 전 애인의 결혼 소식이었다. 그 사람 옆에 분명 내가 같이 있을 상상을 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아니 상상이 아니라 진짜로 내가 그 사람 옆에서 함께 웃던 날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평생 동반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진공상태에 빠진 것처럼 멍해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대화들은 귓속에 벌이 있듯이 윙윙 거렸고 나는 그날 멋지게 스트라이커의 역할을 충실하게 시행하면서 2골을 넣었다. 물론, 2골 모두 우리 팀 골대였다.



그날 축구가 다 끝나고 "괜찮아, 다들 그래"라면서 어깨를 두드리던 형님의 손길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지만, 뭐 그래 다들 그렇다. 그런 소식이라도 들으면 사실 감사하기도 하다. 우리가 서로에게 했었던 약속들이 이제는 지키지 못하는 공백이 되어 과거의 시간 한켠에 남아있지만, 그래도 그 공백을 채워줄 다른 이가 생겼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다. 


언젠가 나도 그 사람 못지않은 좋은 짝이 생겨서 평생을 약속하는 날이 올 때도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서로에게 더 잘했더라면,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지금 서로의 곁에서 여전히 환한 웃음을 짓고 있겠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나버렸다. 인연이었다면 어찌 되었든 간에 관계가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저 좋은 사람과 울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울 거면 행복에 겨운 울음을 내뱉으면 더 좋겠다. 그러면 남은 사람은 이제 어찌하냐고? 그건 나도 잘 모르지만, 사실 최고의 방법은 결혼을 하던 안 하던,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게 최선이다. 즉, 모르는 게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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