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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반지하 15화

사라져

기도는 금물이야

by 짱강이


아니, 죽어 버려 그냥 다

영원히 내 눈에 띄지도 않게 사라저 버려 그냥

안 그러면, 내 힘으로 네게 죽음이라는 고결을 선물할 수밖엔..


다들 이런 날 보고 못돼 먹었대

무섭대

그러지 말래

그렇게 살지 말라고들 해.


왜?

너도 그러니? 너도 내가 절대악으로 보이니?

절대와 순수, 선과 악.

네 거울은 어느 쪽을 가리키고 있니?

지금 내가 객기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보복

그래 늘 받은 만큼 주고 산다는 생각을 했어.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근데 이제 모르겠다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다고

당최가 뭔지 알 수가 없다고

다들 영어로 나불거리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더라

Just leave me alone. It's not your fxxking business. so get the fxxk out.

어때? 있어 보이지?

니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있어 보이는 거, 나도 좀 해 본 것뿐이야.


너희를 어떻게든 죽이고 엉망으로 살 거야

어차피 나는 똑바로 살다가 모든 죄와 벌을 끌어안게 된 거고, 나 하나 삐딱하게 산다고 세상 안 망하거든.


그래. 니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그 말,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근데 재밌는 거 알려줄까?

그 왜, 아는 만큼 보인대잖아. 그래서 너는 모를 것 같아서.

이건 어떤 차원에서 보는지에 따라 해석이 완전히 달라지고, 틀어지고, 변형되고, 분해되고, 재조립되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와 마찬가지로 니 같은 거 하루만에 사라진다고 세상은 뒤집어지지 않는다는 거야.

왜? 놀랍니? 나는 그렇게 비웃어 놓고? 나한테 욕을 일삼아 놓고? 나를 아예 마녀라고 못박고 화형식을 치르던 날을 기억 못하는 거니? 아니면 혹시 안 하는 거니?


그럴 리 없다고 아무리 발악질을 해도 달라질 건 없어. 세상 모든 일이 그래. 다 의지로 되는 것 같지? 아니 전혀, 오히려 운으로 굴러가고 운으로 천지를 구분짓는 게 이곳이거든. 그러니 여기의 법을 불문율처럼 아로새기고 살아가야 하는 거야.



오늘도 마녀 화형식이 있겠지? 심지어 그 대상은 아직도 안 정해졌다지?

네 그 표정, 그대로 도려내서 박제해 놓고 싶을 만큼 재미있다. 다들 이런 느낌이었나 봐. 진작 나도 이렇게 해 볼 걸 그랬어. 왜 내가 모든 죄를 짊어진 마녀가 돼야 했지? 억울해서 이제라도 다시 태어나야겠어.

나를 만날 준비, 됐니?

흥미가 생길 참이었는데, 네 표정이 가관이다.

표정 풀어. 좋은 날이잖아.

뭐가 그렇게 분하니?


니 그 징그럽고 질척하고 물컹한 눈이 굴러갈 때마다 나는 생각을 해.

저 눈을 통째로 꺼내서 우리 집 주방 향신료 통에 집어치워 넣어 버리고 싶다.

그 눈은 절대 썩지 않을 거야. 준비는 다 내가 해뒀거든.

너는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무효한 약속의 새끼를 걸기로 하자.


너를 찾지 마.

너는 이미 내가

내가 말이지..



강 건너 성당에서 키우는 개들은 밤이 오면 깨어나 짖어대기 바쁘지.

그들이 그토록 경계하는 건 뭘까?

달?

아니면.. 달에 비친 진실?

답은 나도 몰라. 나는 신이 아니거든.

아, 어쩌면 신을 증오해 매일매일 부르짖는 영혼들일지 몰라.

그래서 그 강 건너 성당에는 볕이 안 든다고 그렇게도 정평이 나 있나 봐.

그래서 그 강 건너 성당에서는 성직자들에게 끼니마저 주지 못한다지? 그렇게 굶어 죽은 성직자만 몇 명이라지? 그것들을 다 개들의 먹잇감으로 던져 준다지? 그래서 그 개들의 입가와 눈은 늘 붉은 빛이라지?


그럼, 신은 없는 걸까?

아니면 신은 그 개들을 보고 뒷걸음질 친 걸지도.

그게 아니라면,


나도 정확히는 몰라.

다 들은 얘기거든.

옆집 사람, 윗집 사람, 옆 동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걸 진실인 것마냥 이어붙였을 뿐이거든.





아쉽게도 내 얘기는 여기까지야.

어서 빨리 오늘의 화형식을 준비해.

그 개들마저 굶어 죽으면, 진실을 아는 모든 영혼이 사라지게 돼.

그냥 그들이 굶어 죽지만 않게 도와 주면 돼. 그게 다야. 정말 쉽지?

그러니 어서 준비한 후에 네 그 가증스러운 선민의식으로 여기를 먹칠해 줘.

네가 늘 그랬듯이 말이야.

어때? 재미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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