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없다 생각했던 후배가, 예의 없다 무시했던 후배가, 운 좋다 여겼던 후배가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내 꿈은 전문 경영인, 즉, 대표이사다. 10여 년간의 임원경험, 지식, 인맥, 인싸이트를 가지고 1,000억~3,000억 규모 기업을 세 배로 성장시키고 싶다. 너무 작은 기업보다는 어느 정도 시스템과 조직이 갖춰진 기업에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랜 꿈이지만, 현실은 여전히 11년째 상무다. 무엇이 부족한 걸까? 어떤 점이 달랐을까? 후배들은 어떻게 저리 쉽게 대표이사가 되었을까?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오너를 대할 기회가 많았던 터라 더 아쉬웠다. 이런 후회와 경험을 담아 오너에게 사랑받는 법을 정리해 보았다.
오너에게는 삼심이 있다. 욕심, 의심, 변심이다. 욕심이 커 어떻게든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한 두해 지나 성과가 없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능력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사소한 것에 심기가 거슬리고 변심해서 바로 잘라 버린다. 아무리 온화한 오너라 해도 과정은 늘 똑같다. 얼마 전까지도 개인연락을 주고받으며 속얘기를 나누던 사이였는데, 어느 순간 차갑게 돌변한다. 영원히 예뻐하는 오너는 없다. 성과를 못 내서 밉고, 하라는 일만 해서 밉고, 책 내고 강의 다녀서 밉고, 걸음걸이가 이상해서 밉고, 이유 없이 그냥 밉다. 오너의 변심은 언제 올지 모르니 항상 긴장하고 대해야 한다.
오너는 편하고 만만한 사람을 좋아한다. 일 잘하는 사람, 똑똑한 사람은 널렸다. 편한 사람은 주장이 강하지 않고, 일 시킬 때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무슨 말을 해도, 누구 욕을 해도 비밀이 새나갈 염려가 없고, 감정변화가 얼굴에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예술, 문화, 역사에도 해박해서 어떤 분야를 얘기해도 대화가 되는 사람이다. 자격지심이 없어 무슨 말을 해도 꼬여서 듣지 않고, 심하게 챌린지를 받고 나서도 뒤끝이 없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부담 없이 대화가 통하는, 말 잘 듣고 아바타처럼 실행할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실패한 것 같다. 모든 사안에 늘 분명하게 답을 했고, 자기 주도적으로 업무를 추진했다. 너무 뚜렷한 '자기 확신'을 갖고 있었다. 맡은 일은 똑 부러지게 성과를 냈지만, 실행과정에서 갈등이 드러난 적도 있었다. '과연 전체를 아우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들게 했으리라. 적어도 '말 잘 듣는 아바타'는 결코 아니었다. 대표이사가 된 후배들은 모두 분명한 즉답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적이 만들어지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대처했다. 그 모습이 달랐다. 적이 생기든 말든 원하는 바를 정확히 얘기하는 CEO는 자칫 기업운영에 리스크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역지사지해보니 이해도 간다.
오너 앞에서는 말할 타이밍과 들을 타이밍을 잘 판단해야 한다. 오너들은 들고 싶어 할 때와 말하고 싶어 할 때가 명확하다. 듣고 싶어 할 때 말하고, 말하고 싶어 할 때 들어야 한다. '~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 때 우물쭈물 말을 못 하거나 추상적인 단어만 나열하면 안 된다. '내가 말이야~'하고 시작할 때 말을 끊거나 자기 생각과 경험을 보태서도 안된다. 오너는 직원의 개인사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니 오너와 자신의 공통점을 찾아내 엮으려 하지 말라. 침묵을 견뎌야 한다. 말없이 수 분이 흘러도 조급하게 말을 꺼내지 말고 오너가 생각할 시간을 주며 조용히 기다려라.
오너와의 관계는 이카루스 날개를 기억하라.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아버지인 다이달로스가 크레타섬을 탈출하기 위해 새의 날개에서 깃털을 모아 실로 엮고 밀랍을 발라 날개를 만들었고, 아들 이카루스도 함께 탈출을 계획하면서 비행연습을 시켰다. 그는 아들에게 '너무 높이 날면 태양열로 밀랍이 녹으니 너무 높이 날지 말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다의 물기로 날개가 무거워지니 항상 하늘과 바다의 중간으로만 날아라."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그럼에도, 탈출하는 날 이카루스는 너무 높이 날아 태양의 뜨거운 열에 깃털을 붙였던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오너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사이를 유지해야 한다. 높이 날 수 있다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면 타 죽게 되고, 안 보이는 게 차라리 안전하다고 너무 멀리 있으면 까맣게 잊혀 존재감이 없어진다.
오너 앞에서 신사업 보고를 할 때는 '돈이 얼마 드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신사업을 하게 되면 어떤 새로운 역량이 조직에 쌓이는지, 만약 실패했을 때는 본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니 '최초의 시도'를 부각시키기보다는 똑같진 않아도 비슷한 성공사례를 들며, 이를 어떻게 보강해 성공시킬 것인지를 설득하는 게 잘 먹힌다. 오너들은 굳이 '최초'로 신사업을 하는 리스크를 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너들은 변덕이 심하다. 작년 말과 올해 말이 다르고, 어제 말과 오늘 말이 다르다. 너무나 당연하다. 기억을 못 한다고? 놉! 아주 작은 것도 기억한다. 그런데도 말을 바꾸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 정보를 얻고, 얼마나 깊은 고민으로 잠을 못 이루겠는가?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고, 수백 배의 고민을 하고 나서 내린 결정인 것이다. 그러니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밖에... 오너의 결정이 이해가 안 되면 그냥 외워라. 내 돈 갖고 내 맘대로 사업하겠다는데, 직원이 옳다 그르다 판단해서는 안된다.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회사의 지시에 복종하겠다는 서약이기 때문이다.
전문경영인의 꿈을 달성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다. 책을 읽고, 어학을 배우고, 경영학을 공부한다. 부족한 것을 메우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게을리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꿈을 이루지 않겠는가? 여전히 오너를 대하는 것은 어렵고 조마조마하다. 항상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면담에 응한다. 그래도 그분들의 고뇌를 이해하려 애쓰며 가급적 지시에 충실하려 애쓰고 있다.
오너의 삼심, 잊지 말자.